창비주간논평
재판소원이 ‘보복’이 아닌 ‘개혁’이 되기 위한 조건들
임재성
재판소원이란 법원의 확정재판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 헌법재판소에 취소를 청구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의뢰인을 대리해 실무를 하는 변호사 입장에서, 필자는 재판소원 도입에 부정적이었다. 그 절차가 ‘헌법심’이든 ‘인용률이 높든 낮든’ 당사자들은 절박한 기대를 가지고 대법원 판결을 뒤집기 위해 헌재로 갈 것이고, 대다수는 결국 한줄 적혀 있지도 않은 각하결정문을 받을 것인데, 그것이 누구를 위한 사법개혁인가 물었다. 그러나 도입된 이상 이 제도가 어떻게 ‘개혁’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추동해야 한다.
예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헌법재판소의 성공
‘민주화의 열망을 담아 만들어진 헌법재판소’라는 통념은 허구다. 1987년 당시 민주화운동 세력 중 어떤 정파도 헌재 설립을 주장한 바는 없었으며, 여·야의 헌법개정안 어느 초안에도 관련 규정은 없었다. 1987년 당시 여당(민주정의당) 개헌특위에 참여했던 국회의원들은 헌재 도입에 전두환의 지시가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증언한 바 있다. “대법원이 정당해산을 심판하면 운동권이 만날 그 앞에서 데모할” 것이기에 별도 기구를 만들라는 것이 당시 전두환의 지시였다고 의원들은 기억한다(「“기울어진 헌재, 전두환 작품이었다.”」, 한겨레 2016.12.29). 헌재는 ‘개혁안’이 아닌 1948년 제헌헌법부터 존재해온 헌법재판제도를 기능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정치권의 타협”(장진호 『헌법재판과 한국 민주주의』, 한국학술정보 2015, 239면)으로 탄생했다.
그런데 헌재는 곧 예상을 깨고 활발히 작동했다. 헌재 설립 이전까지 40여년 동안 헌법위원회 및 대법원에서 이루어진 헌법재판은 18건에 불과했다. 반면 헌재는 설립 이후 1년이 남짓한 1989년 12월까지 총 215건의 헌법재판을 수행했고 13건의 위헌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다운 헌법재판’이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1기 헌법재판관들의 전략적 판단, 신설조직이자 대법원과의 경쟁구도 속 존재감 확보 필요성, 위헌 판단에 대한 정치권 등의 호의적인 태도, 민주화 이후 사회적 분위기 등이 극적인 변화를 만든 요인이다.
2004년 자의적 법논리로 행정수도 이전 관련 법률을 위헌이라 판단하는 등 흑역사도 적지 않지만, 헌재가 성공한 제도라는 점에는 높은 합의가 존재한다. “유례가 없을 정도로 짧은 기간 안에 성공적으로 헌법재판제도를 정착시켰다”(4대 헌재소장 이강국 취임사)거나 ‘우리나라 헌정체계 중 유일하게 수출할 수 있는 브랜드’ ‘아시아 신흥 민주화 국가 중 한국만이 헌법재판제도를 성공시킨 나라’ 등의 평가가 과하지 않다.
성공한 헌법재판소가 망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헌재가 개소 이래 가장 큰 변화를 맞았다. 2026년 3월 12일 도입된 재판소원을 단순히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법원의 재판’이라는 ‘예외’를 삭제한 것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는 ‘제2의 개소’라고 할 만한 중대한 변화다. 헌재에 접수되는 사건의 숫자가 대폭 증가할 것이고, 입법·행정·사법 중 사법은 물론 ‘행정’(행정재판)으로까지 통제범위를 확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나 국정과제 어디에도 명시된 바 없던 이러한 큰 변화는 ‘왜’ 이루어진 것일까? 이번 재판소원 도입 배경에 사법부(대법원)에 대한 국민의 불신, 그리고 이에 편승한 여당이 급조해낸 ‘사법개혁’ 입법 드라이브가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여당이 대법원에 대한 ‘보복’으로 추진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럼에도 제도가 도입된 이상,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순기능을 극대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전두환의 지시’라는 도입 맥락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성과를 만들어낸 것이 헌법재판소다. 성공한 헌법재판소를 이어가는 데 필요한 몇가지 제언을 정리하고자 한다.
1. 신속한 헌재 연구관 충원
“연간 1만건에서 1만 5000건 정도 접수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지난 3월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사무처장이 밝힌 재판소원 예상 건수다. 기존 연평균 접수 건수인 3500여건의 3~4배 수준이다. 이에 대비해 헌재가 밝힌, ‘유일하게’ 준비된 조치는 ‘법조경력 15년 이상의 연구관 8명으로 구성된 전담 사전심사부 신설’뿐이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다. 전체 60~70명 규모의 연구관 중 고참 8명이 ‘신건 검토조’로 빠지면 기존 사건들에 대한 검토를 축소된 인력이 감당해야 하고, 전체 심리의 부실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6년 임기의 헌법재판관들보다 훨씬 더 긴 시간 헌재를 지켜온 헌법재판 연구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기간 훈련된 헌법 전문가들이 오랜 시간을 들여 하나의 사건을 연구해 검토보고서를 충실히 작성할 수 있었고, 이는 곧 헌재 결정문의 높은 수준으로 이어졌다. 밀려오는 재판소원 판단에 연구관들이 휩쓸려가면 그간 쌓아온 기존 헌재의 기능과 성과도 흔들린다. 적어도 2배 이상의 연구관 인력 확충이 신속하게 필요하다.
2. 재판소원 사유를 명확하게
재심제도가 ‘4심’으로 운용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법률의 내용도 구체적이고, 증거의 ‘신규성’에 대한 법원의 기준도 분명하다. 패소한 판결에 불만이야 누구나 있지만, 명확한 기준으로 인해 당사자에게 무작정 재심을 해볼까 하는 ‘희망고문’의 유혹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현재 재판소원이 가능한 경우로 법률이 규정한 내용은 극히 추상적이다. “법원의 재판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함으로써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 명백한 경우”(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3항 제3호)가 특히 그렇다. 이 조항을 근거로 재판소원으로 끌고 오지 못할 재판은 없다.
헌재는 올해 내에, 첫 재판소원 본안 판단을 통해서 위 조항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한다. 기준의 모호함은 권한의 막대함을 의미한다. 지금의 추상적 규정으로 헌재는 ‘판단하고 싶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권한과 권능’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 학계와 언론은 기준을 좁히고 구체화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입법부는 재판소원이 가능한 경우에 대해 앞서 언급한 제3호에만 “명백한 경우”라는 표현을 특별히 넣었다. 헌재는 입법자의 이 ‘제한적’ 의도를 존중하여 ‘명백’이 무엇인지 분명한 기준을 신속히 밝혀야 한다. 이를 통해 시민들은 ‘재판소원 인용 가능성’을 냉정하게 예상하고 분쟁의 장기화나 과다한 소송비용 부담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제안은, 제도 시행 초기에는 헌재가 ‘절차적 측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역시 재판소원 인용의 상당수가 “절차적 기본권이 중대하게 위반된 경우”를 사유로 하는데, 이를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3. 기소유예에 대한 불복은 이제 법원으로
앞서 언급한 것처럼 헌재는 강력한 사회적 요구 속에서 출범한 것은 아니었기에, 출범 직후에는 사건 부재에 시달렸다. 이러다가 조직 망하겠다 생각한 1기 헌법재판관들은 적극적인 사건 유치를 고민했는데, 그중 하나가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에 대한 판단을 헌재가 해주는 것이었다. 기소유예 처분에 대한 마땅한 불복절차가 없었는데 이를 헌재가 판단해주겠다 선언하니 사건이 밀려들었고, 헌재는 조직을 이어가며 ‘큰 사건’을 해볼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인공호흡’ 맥락으로 시작한 기소유예 사건은 지금도 헌재 사건 중 10% 정도를 차지한다. 인용률도 15% 전후이기에 결정문을 쓰는 부담도 상당하다. 형식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헌재에 어울리지 않는 사건 유형이고, 재판소원으로 증가하는 업무부담을 고려할 때 이제는 그만할 때가 되었다. 기소유예에 대해 법원의 판단을 받는 방식의 법률개정이 필요하다.
헌재가 재판소원을 통해 사법부를 긴장시키고, 빛나는 위헌판단을 만들어내길 바란다. 동시에 헌재는 분명한 기준으로 절박한 소송당사자들이 ‘4심제 희망고문’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초기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 사건 등에 소극적인 판단을 이어가자 국회에서는 ‘헌재 폐지’ 논의가 등장했다. 재판소원 역시 그럴 수 있다. 헌재로서는 꿈에 그리던 재판소원을 손에 넣었지만, 그것이 시민과 사회에도 좋은 제도라는 점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임재성 / 변호사, 연세대 사회학과 겸임교수
2026.3.17.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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