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무상‧반값’과 체제개혁
이일영 / 한신대 교수, 경제학
2012년은 중요한 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거쳐 MB정부가 물러나면서 부분적으로든 전면적으로든 집권세력의 교체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에 대해 백낙청 교수는 '2013년체제'(바로가기)의 큰 그림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찍부터 정치공학에 몰입하기보다 큰 원(願)을 세우고 그 실행에 골몰하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감이다. 현재의 정세는 '무상'과 '반값'이라는 복지 의제의 폭풍 속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폭풍의 정세는 격변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시점에서 ‘큰 그림’ ‘큰 원(願)’으로 연결되는 경제체제에 대한 논의가 절실하다.
작년 6·2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논의가 확산된 데 이어 올해는 '반값 등록금'이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대학등록금은 중산층 가계에도 큰 부담이 되고 있어서 대중적 반향이 큰 사안이다. 대중의 생활상의 고통이 심한 현재의 국면에서는 분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대중 동원에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이해당사자들 간의 분배투쟁은 성과를 내기가 쉽지는 않아서, 열망과 실망의 싸이클이 반복될 수 있다.
복지에는 정교한 설계도와 실행력이 필요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 등록금은 정교한 계획과 실행능력이 필요한 정책들이다. 써비스의 가격을 낮추면 잠재된 수요와 가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써비스 공급량이 늘어나면서 그에 들어가는 한계비용은 급증할 수밖에 없다. '무상'과 '반값'은 복지 확대의 방향을 나타낸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하지만, 적정가격을 찾지 못한 채 재정투입이 이루어질 경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낭비하게 된다. 그 비용부담이 대중에게 귀착될 경우 대중은 다시 좌절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다. 그때 떼르미도르 반동의 시기가 찾아온다.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복지나 고등교육의 대부분을 민간공급자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무상'과 '반값'을 실시하려면 가격과 진입량을 규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급속히 팽창하는 복지·교육 써비스에 대한 욕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역대 정부는 진입장벽을 낮추어 민간공급자를 대거 유입시켜왔다. 민간공급자가 주도하는 시장에서는 정부의 가격통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정부가 상당정도의 공급량을 통제할 수 있어야 가격통제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무상'과 '반값'의 방향은 결국 '국유화'라는 체제개혁의 과제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매우 정교한 설계와 장기적인 실행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국유화'가 무작정 좋은 것은 아니며 '적절한' 정도의 국유화가 바람직하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기업이 무한정 규모를 확대할 수 없는 것처럼 정부의 규모에도 한계가 있다. 정부도 기업처럼 위계를 형성하여 명령에 의해 자원을 배분하는 조직·제도의 일종이다. 정부조직을 확대하여 추가 거래를 행하는 비용이 시장을 이용하거나 다른 조직을 만들어 동일한 거래를 수행하는 비용보다 커지면 정부는 사회의 부담이 되고 만다.
공공성 높이되 획일적 국가조직 확대는 곤란
공공성의 제고는 올바른 방향이지만 전면적이고 획일적인 국유화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어떤 경우는 시장체제를 정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현재 사실상 사적 이윤을 추구하고 있는 민간보험, 병원, 노인요양시설, 보육시설을 국가가 모두 인수할 수는 없다. 이런 영역에서는 점진적으로 국가시설을 늘려가면서 완전경쟁시장의 조건을 만들어줌으로써 써비스 가격이 지나치게 상승하는 것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그간 폭발하는 교육수요를 사립대학의 확대로 대응해온 것이 현재의 대학등록금 문제를 가져왔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립대학을 국공립화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세칭 'SKY' 대학처럼 일반 국민이 입학과 졸업에 대해 높은 지불의사가 있는 데까지 무차별하게 '반값'과 국유화를 추진하는 것도 사회적 낭비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역량을 모아 수도권 밖의 '지역' 거점들에 여러개의 KAIST 같은 학교를 만드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민간업자 일변도의 체제가 문제가 많은 것처럼, 중앙의 보건복지부와 교육과학기술부가 강화되고 비대해지는 것도 좋지 않다. 보다 대안적인 체제는 '지역'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역'은 네트워크와 지역자치에 의해 구성되는 일종의 경제체제다. 네트워크란 독립적인 실체들이 순환적으로 계약적 연계를 맺는 쎄트를 의미한다. 네트워크에서는 각 단위들이 독립성을 유지하고 신뢰와 협력의 구축에서 강점을 보인다. 복지나 교육 부문에서는 소규모 공동체가 더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지역'에 주목한 창조적 공공성을
'지역'은 시장·기업·국가와 한편으로는 병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관계에 있다. 따라서 조직이 장기적으로 존속하려면 조직의 틀을 제도화해서 일정한 정도는 위계화된 형식을 갖춰야 한다. 지역자치체가 그러한 조직형식이다. 이는 지역주민과의 관계가 비교적 직접적이고 주민이 조직의 통제에 미치는 영향력의 정도가 높은 편이다. 확대된 복지·교육재정은 지역자치체가 활용하도록 하여 ‘지역’이라는 새로운 씨스템을 활성화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좋겠다. 예를 들면 재정을 지렛대로 하여 사립대학 이사회에 지역자치체가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면 지역에 봉사하고 지역을 활성화하는 새로운 형태의 교육거버넌스를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지역'은 국내 지역에 한정되는 영토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를 넘어 점과 점으로 연결되는 세계적 네트워크다. 네트워크를 통해 국내 지역은 세계 지역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지역'이 활성화되면 창의적인 젊은이들에게는 신세계가 열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국가나 대기업 체제는 이미 포화상태에 있다. 복지·교육부문에서의 분배투쟁이 혁신적인 공간과 거버넌스를 만드는 데로 발전하지 않으면, 지대추구행위와 경직된 낡은 습관은 극복되지 않는다.
'무상'과 '반값'이라는 분배적 목표에만 매달리면 어떤 체제가 바람직한가 하는 '큰 그림'을 놓치기 쉽다. 자칫 매우 낡은 형태의 국가가 돌연 확대되거나 그 틈새에서 시장근본주의가 완전히 고착될 수도 있다. 독점, 지대추구, 안주, 과잉팽창의 유혹을 경계하고 경쟁, 도전, 혁신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에는 기회의 시기가 있다. 엄중한 시기에 창조적인 공공성을 추구하려는 '큰 원(願)'을 놓치지 말아야 하겠다.
2011.6.2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