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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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선거법의 벽을 부수자

류제성 / 변호사, 민변 사무차장

 

'죽은 오세훈이 산 곽노현 친다' '오세훈의 저주'라는 말이 들린다. 박명기 교수에게 후보단일화의 댓가로 2억원을 준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곽노현 교육감이 선거 범죄로 당선무효형이 확정되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로부터 지원받은 선거비용 35억원을 반환해야 한다. 오세훈 전 시장이 국회의원이던 2004년 주도하여 통과시킨 이른바 ‘오세훈 선거법’에 따른 결과다.

 

보수언론들은 곽교육감이 얼마나 거액의 돈을 반환해야 하는지 선정적으로 보도하면서 위와 같은 제목을 붙인다. 그리고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따른 오 전 시장의 시장직 사퇴를 '승부수'라고 표현하면서 오세훈 선거법이 돈 안 드는 깨끗한 선거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과연 그런가?

 

오세훈 선거법으로 선거가 깨끗해졌나

 

먼저 주목할 점은 이 선거법으로 인해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선거의 제 기능을 잃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남과 다른 생각과 사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자유,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반대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정치적 반대파의 목소리가 알려지고 토론과 소통이 이루어지며 그 결과가 국정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래야 모든 사람의 인권이 존중되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한편 현대 민주국가는 대의제를 원칙으로 하면서 일부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추가하고 있는데, 대의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선거다. 선거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국민주권의 원리를 실현하는 수단이다. 따라서 선거의 자유와 공정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비록 정기적으로 선거를 치른다 하더라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사회라 부를 수 없다.

 

선거가 국민주권의 실현 수단으로, 민주주의의 꽃으로,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장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선거에 나서는 정당과 후보자에 대한 모든 정보가 공개되어야 한다. 또한 정당·후보자들 간에, 정당·후보자와 유권자 간에, 유권자들 간에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이 가능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유권자가 선택한 정당과 후보자, 그들이 만드는 법과 제도라야 진정으로 민의를 대변하고 정치적 책임을 질 수 있다. 단지 투표를 강제당하지 않을 자유, 특정 정당·후보자에게 투표할 것을 강제당하지 않을 자유만으로는 선거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할 수 없다.

 

표현의 자유와 정치기본권의 억압

 

그런데 오 전 시장의 업적으로 거론되는 이 선거법은 유권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선거의 자유를 침해함으로써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이 점이 극명하게 나타난 사례가 바로 2010년 6·2 지방선거다. 당시 선관위는 전면 무상급식 실시 여부와 4대강사업의 찬반이 '선거 쟁점'이므로 그에 관한 서명운동, 집회, 현수막 게시 등 일체의 활동이 선거법에 위반된다고 했고, 실제로 많은 시민이 기소되어 재판중에 있다. 선거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선거운동이 허용되는 기간은 한달이 채 되지 않는다. 그 이전의 선거운동은 모두 사전선거운동으로 보고 금지·처벌된다. 선거운동이 제한되는 기간이 지나치게 길 뿐 아니라 선거운동의 개념이라는 것도 모호해서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패러디나 정책 비판도 모두 선거운동으로 해석되고 있다.

 

게다가 선거 180일 전부터는 선거운동이 아니라도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행위가 거의 다 금지된다. 인터넷 게시판이나 트위터 등 온라인상의 표현도 마찬가지다. 총선, 대선, 지방선거, 보궐선거가 수시로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연중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며 유권자의 자발적 선거참여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당이나 후보자 입장에서도 획일적이고 규제 일변도인 선거법 탓에 자신의 정책을 유권자에게 알리는 수단이 극히 제한된다. 유권자로서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도 못하고,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해보지도 못한 채 그저 입 다물고 투표만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선거를 어찌 국민주권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또 하나 묵과할 수 없는 선거법의 위헌성은 바로 교사·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에 대한 과잉제한이다. 선거법과 함께 정당법,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은 교사·공무원의 정당가입과 정치활동을 광범위하게 금지하고 있다. 물론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도 헌법이 직접 규정한 중요한 가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헌법이 정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교육이 왜곡되거나 특정 정치세력의 홍보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이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은 국가정책에 대한 공무원의 독단적 반대나 직업공무원을 집권당의 당파적 이익을 위해 동원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의미에 불과할 뿐 교사·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포괄적으로 제한할 근거는 되지 않는다.

 

정당을 통해 유권자의 의사가 반영되는 정당국가의 현실에서 교사·공무원의 정당가입을 일절 금지하는 것은 지나친 제약이며, 정치적 기본권에 대한 포괄적인 제한도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교사·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특별히 중립이 요구되는 직무와 직위에 한정해서, 예를 들어 경찰과 같은 공안직의 5급 이상 공무원에 한해서 구체적·예외적으로 금지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타당하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정치자금법

 

한편 정당후원회를 폐지한 오세훈 정치자금법 규정은 진보정당에 소액의 후원을 해온 교사·공무원은 물론 진보정당에 대한 탄압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가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매년 수백억원의 국고보조금을 받는 거대정당과 달리 노동자, 서민의 소액기부금으로 정치활동을 해야 하는 진보정당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보정치의 실현을 바라는 보통사람들이 순수한 동기에서 하는 소액후원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른바 청목회 사건을 계기로, 법인·단체의 정치자금은 물론 법인·단체와 관련된 정치자금의 기부를 전면금지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특정 집단, 특히 기업의 정치권에 대한 과도한 영향력을 차단할 필요가 있고 이 규정의 긍정적 기능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치자금법은 1인당 후원금 상한액을 1천만원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기업이 아닌 일반인이 이 상한액을 채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후원금 상한액을 하향조정하고 일정한 제한 조건을 두어--예를 들어 비영리법인에 한하여 적절한 기부액 상한을 설정하고 모금총액을 제한하며 그 내역을 공개하는 등--단체의 기부금지 제한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고비용 저효율의 정당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지구당을 강제로 폐지한 것도 논란거리다. 지구당 폐지는 정당조직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정당이 유권자와 소통할 수 있는 공식적인 통로를 차단함으로써 정당정치가 후퇴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과거 지구당 같은 역할을 하는 당원협의회는 활동내역과 회계내역이 선관위의 감독대상이 되지 않아 편법운영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선거법으로 위협에 처한 헌법과 인권

 

물론 이 모든 불합리의 책임을 모두 오 전 시장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선거관련법의 각종 금지와 규제는 역사적으로 금권, 관권, 폭력이 난무하던 과거 선거의 부정적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선거의 공정, 정치자금의 투명성, 교육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보장이라는 나름의 명분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명분으로 정치참여를 포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헌법정신에 맞지 않는다. 선거관련법의 심각한 위헌성과 폐해는 지적하지 않은 채 오세훈 선거법을 그의 공적으로만 칭송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선거관련법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의 책임이 일차적으로 국회에 있음은 분명하지만 선관위, 검찰, 법원, 헌법재판소 역시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해야 한다. 단지 실정법에 규정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선거관련법의 과도한 적용과 무차별적 기소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모든 국가기관은 헌법을 준수할 의무와 인권을 침해하지 않고 보호하며 증진할 의무가 있다. 인권 보장과 헌법 수호의 보루인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물론 공익의 대변자라 자처하는 검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모든 국가기관이 이 책임을 방기하는 와중에 한국의 민주주의는 위협받고 있다. 선거법의 벽을 넘는, 아니 그 벽을 부수기 위한 행동이 필요한 때다.


2011.9.2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