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대학 등록금, 교과부 관료, 그리고 대학 개혁
김종엽 / 한신대 교수, 사회학
지난달 초순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는 〈'12학년도 정부재정지원제한 대학(하위 15%) 평가결과 및 학자금 대출제한 대학 명단 발표〉(9.6)라는 보도자료를, 이어서 〈대학생 등록금 부담 완화방안〉(9.8)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두 보도자료는 올해 상반기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반값 등록금' 논쟁이 어떤 정책적 귀결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준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에 들어 있었느니 없었느니 하는 논란을 거쳐 4·27 재보선 패배 후 집권당 신임 원내총무가 야권과 대중의 복지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다시 꺼내든 '반값 등록금 정책'은 결국 '등록금 부담 완화'로 변형되었다. 4대강사업에 수십조를 쏟아부은 정부가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대학생과 시민에게 마련한 재원이 고작 1조 5천억원에 불과한 것이다.
반값 등록금 대책의 이상한 귀결
교과부 관료는 이 초라한 돈을 레버리지로 대학을 쥐어짜기로 했다. 1조 5천억원 가운데 절반은 소득순위 하위 3분위 가구의 학생에게 차등 지원되지만, 나머지 절반은 대학의 등록금 동결 또는 인하 그리고 교내 장학금 확충을 유도하는 인쎈티브 자금으로 쓰인다. 이런 인쎈티브로 대학을 짜내면 등록금 경감 총액은 2조 2500억원 이상으로 불어날 것이라고 한다. 교과부는 이런 식의 '파생금융상품' 조성을 위해 명문대학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감사를 진행하고 열악한 대학에 대해서는 학자금 대출제한으로 압박을 가하고 나섰다.
이런 정책이 원하는 효과를 얼마나 낼지는 두고 보아야겠지만, 정책의 규범적 근거는 허술해 보인다. 대학에 대한 과도한 감사도 그렇지만, 성적이 모자라서 열악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의 경우 왜 자신이 갚을 학자금 대출조차 받지 못하게 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사실을 이렇게 입시 전에 알려줌으로써 고교 졸업자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경고해주기는 하지만, 그렇게 해서 학생들이 지원하지 않는다면 해당 대학은 자신을 개혁할 자원조차 박탈당하게 될 것이다. 대출이 제한된 대학이 여러모로 문제가 있는 곳이기는 해도 이런 식의 정책은 혁신을 유도하기보다는 혁신을 아예 봉쇄하는 징벌로 작동한다.
일이 이렇게 되는 것은 교과부의 핵심 구상이 애초에 등록금 부담 경감보다는 대학 구조개혁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과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대학의 부실의 범위와 정도에 따라 구조개혁 우선대상 대학을 '정부재정지원제한 대학→학자금대출제한 대학→경영부실 대학' 등의 단계로 체계화하였으며 (…) (그것이) 향후 대학구조개혁의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정부와 관료를 거치며 반값 등록금은 등록금 경감으로 오그라들고, 초라해진 등록금 경감의 효과를 확대하기 위한 조치는 대학 구조개혁 방안으로 변신한 것이다.
교육개혁 의제가 굴절되는 한 이유
사회적으로 쟁점화된 교육적 의제들은 이렇게 교과부 관료를 통과하면 언제나 특정한 방향으로 변경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료들의 기본 성향 그리고 그것이 교과부 안에서 투영되는 방식을 살필 필요가 있다. 필자가 보기에 지난달 중순 언론에 보도된 교육관료의 퇴직 후 행로가 그런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
〈한겨레〉에 의하면 교과부 고위관료는 재임중 영미권에 국비유학을 가 학위를 획득하고, 고용휴가제를 이용해 대학에 비전임교수로 임용되며, 퇴직 후에 대학교수, 학장, 총장으로 광범위하게 취임한다(기사 참조). 이런 전·현직 교과부 고위관료의 행로는 그들이 취임하는 대학이 비영리법인인 학교법인에 의해서 운영되기 때문에 공직자윤리법으로 통제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제외하면 다른 부처 고위공직자의 경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우리가 살펴봐야 할 점은 끊임없이 자기 부처의 업무범위를 넓히고 예산을 늘려 인사적체를 해소하며 가능하면 퇴임 후의 자리까지 확장하려는 관료들의 끈질긴 성향이 교과부의 대학정책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대학정책과 관련해서 언제나 읊조려진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적은 예산의 효율적 사용을 추구하는 듯 보이는 이 말에 의해 정당화된 정책이 교과부 관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바로 그 선택행위의 주도권이다. 즉 교과부 관료는 재분배 권한을 행사하고 그것을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할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같은 선상에서 왜 그토록 교과부가 대학에 대한 지원정책을 각종 '평가'와 매개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정책을 통해 평가의 권한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구체적 선택이나 평가는 여러 대학의 교수들이나 각계 전문가가 모인 위원회의 소관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도 평가항목, 그것과 연계된 정책방향, 그리고 위원의 선임과정에 교과부의 힘이 관철되며 그만큼 교과부 관료는 대학과 접촉면을 다양화하고 넓혀나간다.
그렇다고 해서 교과부 관료가 바로 그런 권력을 얻기 위해 '선택과 집중' 같은 담론을 고안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런 담론과 정책이 음모의 산물은 아니다. 단지 교과부 관료는 대안적인 여러 담론과 정책 가운데 특정한 것들과 친화력을 가질 뿐이다. 그들은 공적 대의와 관료적 이익이 편안히 동거할 수 있는 담론과 정책에 이끌리며, 양자가 충분히 조화로울 경우 그들의 업무 추진에는 ‘애국적 정열’마저 흐르게 되는 것이다.
국립대학 총장공모제 도입의 배경
이런 시각에서 보면 최근 '구조개혁 중점추진 국립대학' 선정에서도 왜 그렇게 국립대학의 총장직선제가 중심 의제가 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철밥통이라 불리는 국립대학 교수들의 작풍을 혁신하기 위해 거버넌스(governance)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쉽사리 수용될 수 있다. 하지만 대학의 거버넌스를 바꾸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며, 특정 제도 하나를 바꾸는 것으로 거버넌스가 개혁되는 것도 아니다. 총장직선제가 교수들조차 염증을 느낄 만큼 부끄럽게 운영된 경우가 꽤 많지만, 그것이 공모제로 바뀐다고 국립대학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미 교과부 차관 여럿이 사립대학 총장으로 취임했던 것을 생각하면 국립대학에 총장공모제를 도입하려는 정책 추진력의 출처를 짐작해볼 수 있다.
각종 사회적 개혁의제가 관료적 성향에 매개되어 변형되는 현상은 심각한 대가를 포함한다. 지금까지 논의된 대학정책과 관련해 말한다면, 그런 정책의 관료적 굴절은 퇴임 후 관료들이 대학에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넘어서 대학 개혁의 담론과 정책이 특정한 방향에 경사되어 다양한 대안이 검토되고 최적의 경로를 찾아나가는 것을 방해한다고 할 수 있다. 관료적 이익과 특정한 정책 담론의 결합은 그런 담론을 도그마로 만들고 관료를 일종의 정책 탈레반으로 둔갑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교과부 관료들은 아마 자신의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것을 특정한 인쎈티브 구조와 결합하려는 노력을 해왔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자신의 정책적 신념이 어떤 인쎈티브 구조에 의해 유도되는지 성찰해보기를 기대한다.
2011.10.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