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종편채널,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정윤수 / 문화평론가
이런저런 일로 여의도 방송가에 더러 나가게 되는데, 꽤 오랜 방송 경험이 있는 방송사 관계자들이 특정한 프로그램의 질을 타박할 때 쓰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거, 뭐 너무 케이블스럽지 않아?" 하는 표현이다. 냉소적인 이 말을 들은 당사자는 매우 자조적인 상태에 빠져들게 된다. 사실 '케이블스럽다'는 것은, 최근 <슈퍼스타 K>를 필두로 한 몇편의 화제작이나 스포츠 전문채널의 인상적인 장면을 떠올리면 결코 적절한 표현은 아니지만, 아무튼 조금은 성급하게, 조잡하게, 싼 티 나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종합편성채널(종편) 4사 개국에 맞춰 경향신문, 한국일보, 한겨레 등 일간지에서 백지광고를 게재하고 트위터를 중심으로 '종편채널 삭제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지난 며칠 동안 4개의 종편채널을 써핑했는데, 정말 케이블채널이 얼마나 저비용으로 그토록 순도높은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거 완전 종편스럽잖아"라는 말이 나올 수 있을 만큼, 종편채널의 뉴스, 토론, 교양, 오락 등의 프로그램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기본적인 카메라워킹도 안되어 있고 프레임과 컷의 자연스러운 변화도 전혀 느끼기 어려웠다. 어수선했다.
실망스러운 프로그램 질과 저조한 시청률
우선 극히 저조한 시청률이 이를 입증한다. 지난 5일 시청률 조사기관 AGB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JTBC(중앙), MBN(매일경제), TV조선(조선), 채널A(동아) 등 종편 4사의 4일 주말 시청률은 평균 0.4∼0.5%대에 그쳤다. 개국 당일을 포함하여 그 전후의 조사 역시 엇비슷한 수치다.
이는 현 정부가 종편채널을 위하여, 기존 케이블채널과는 달리 유료방송 가입가구에 대한 의무 재전송이라는 정책적 특혜를 강력하게 부여한 것을 무색하게 하는 수치다. 더욱이 '인지도=채널번호'라는 확신에 의거하여 개국 이전부터 종편 4사는 지상파 채널번호에 인접한 '연(連)번호' 확보를 위해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를 강하게 압박했고, 비록 연번호를 얻지는 못했으나 14에서 20번의 '골든 넘버'를 확보했음에도 시청률은 저조했다.
이 정부가 종편 4사에 베푼 은전은 방송관계법으로 보나 기존의 방송계 '상거래 도의'로 보나 극단적인 수준의 지원이었다. 무엇보다 편성·제작과 관련한 규제가 기존 지상파 3사에 비해 매우 헐겁다. 지상파는 분기별 전체 방송시간의 60~80%에 국내제작 프로그램을 편성해야 하지만 종편은 20~50%면 충분하다. 지상파의 숙원이었던 '중간광고'도 종편은 가능하다. 전체 광고 분량 또한 지상파가 프로그램 시간의 10% 한도 이내인 것에 비해 종편은 12%까지 가능하다. 공익광고 또한 지상파는 전체 방송시간의 0.2% 이상이 의무조항이지만 종편은 0.05%의 생색만 내면 된다.
재탕 연속과 지나친 광고시간
그리하여 어떤 결과가 벌어졌는가. 이 정부와 '조·중·동·매'로 요약되는 종편 사업자들이 줄기차게 강변한 대로 '방송산업 다각화'와 '방송문화 다양성'이 이뤄졌는가. '방송산업 다각화'는 일주일 안팎으로는 분별하기 어려운 것이므로 훗날의 일로 미룬다 해도, '방송문화 다양성'은 충분히 검토해볼 수 있다.
계량적으로 볼 때, 다양성은 둘째치고 종편사업이 졸속으로 발행된 다급한 어음임이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 5일 CBS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채널A는 4일 방송시간 전체 20시간 50분 가운데 8시간 20분(41%)을 재방송으로 때웠다. 그 전날인 3일에는 전체 19시간 20분 가운데 8시간(41%)을, 5일에는 전체 21시간 40분 가운데 7시간 30분(35%)을 재방송 프로그램으로 배치했다.
케이블채널을 돌릴 때마다 '보고 또 보고' 하던, 그래서 '이건 뭐 너무 케이블스럽잖아' 하던 냉소가 이제 막 출범한 종편채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JTBC는 5일 전체 18시간 방송시간 가운데 7시간 45분(42%)을 재방송으로 채웠고 MBN은 3일 13시간 10분(54%), 평일인 5일에는 9시간 30분(40%)을 재방송으로 메웠고, 4일에는 무려 17시간 20분을 재방송 릴레이로 이어붙여서 70%가 넘는 사상 초유의 '개국 즉시 거의 온종일 재방송'을 선보였다. 그런 재방의 연속에서도 지상파에 웃도는 광고시간을 할애하며 중간광고가 연신 끼어들었고, 그 광고단가 또한 각 채널의 직접영업이라는 방송계 최대 현안을 낳았다.
무엇이 방송문화 다양성인가
이렇게 '재방'의 연속인 종편채널을 두고 '방송문화 다양성'을 언급한다는 것은, 문제 설정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문제를 푸는 일과 같다. 그럼에도 한두마디 하자면, '방송문화 다양성'은 크게 두 축의 개념을 갖는다. 먼저 중요한 것은 '의견의 다양성'이다. 태생적 한계가 분명한 종편채널이라 해도 그것이 '방송'인 한 기본적으로 사회적 공기(公器)이며, 따라서 최소한 '의견의 다양성이나 출연진의 균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조건에 해당한다. 이 정부 들어서 노골적으로 친정부 편향의 보도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기존 지상파 3사도 적어도 간판 토론 프로그램이나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는 '의견의 다양성과 출연진의 균형'을 맞춘다. 그러나 현재 종편채널은 대부분 이 '의견의 다양성'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 극히 편향적인 편성을 보이며 극히 일방적인 보수적 주장이 행렬을 주도한다.
다음으로는 '콘텐츠의 다양성'이다. 물론 확보한(혹은 상상한) 콘텐츠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도 넓은 의미의 콘텐츠지만 일단 '물건'이 있는지 살펴보자. 앞서 '의견의 다양성'은 프로그램 성격을 미세조정하거나 출연진의 기계적 균형이라도 맞추면 어느정도 구색은 맞출 수 있다.
그러나 '콘텐츠 다양성'은 설령 종편채널이 확고한 의욕으로 밀어붙인다 해도 당장 실현되기 어려운, 오래 누적된 문화적 역량과 다양성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부분이다. 그동안 지상파 3사가 주도한 연예오락 프로그램조차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겨우 낙제점을 면한 수준이었는데, 그 문화적 기반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체적으로 7개 채널이 파이를 나눠먹어야 하는 상황이다. 표면적으로는 먼저 '연예인 겹치기 출연'이 나타날 것이고 전혀 차별성을 느낄 수 없는 연예오락 프로그램 및 밀도와 긴장을 조금도 느낄 수 없는 진부하고 관습적인 교양 프로그램(종편 4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고향을 찾고 맛집을 찾는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의 무차별한 난무가 예상되는데, 이미 현재 그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 점은 쉽게 개선될 수 없는 영역이다. 문화 다양성이란 신인가수 몇명이 더 등장하고 유재석이나 강호동 같은 천재적인 진행자가 한두명 더 있다고 해서 실현되진 않는다. 그 사회의 집합적 열정의 온도, 문화적 열망에 대한 존중, 개인의 정치적․성적․문화적 취향에 대한 열린 태도, 극단적인 문화 스타일을 수용해낼 수 있는 건강한 생산력 등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순탄치 않은 종편채널 앞날
이 정부 들어 우리는 몇몇 연예인에 대한 출연 금지와 일부 노랫말에 대한 방송 금지라는 사태를 지켜본 바 있다. 이른바 '순수예술'에서 벌어진 가히 폭력적인 문화 철거 또한 생생한 기억이며, SNS 검열안도 강행되는 실정이다. 이런 정도의 천박하고 폭력적인 인식이 현재의 문화적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지배세력의 이념이며 취향이고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종편채널이 몇개 더 생겼다고 해서 결코 건강한 의미의 '다양성'이 확보될 리 없는 것이다.
개국부터 잦은 방송사고와 저조한 시청률로 위기에 처한 종편채널은, 오히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더욱 공세적인 보도의 편향성과 더욱 선정적인 연예오락 프로그램의 도발성으로 우선 채널확보 전쟁에 돌입할 것으로 예측되는바, 바로 이런 점 때문에라도 '의견의 다양성'과 '문화의 다양성'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종편 개국을 거의 국정과제처럼 밀어붙였던 이 정부의 방송정책이 파행을 맞는 원인이 될 것이며, 그 행렬에 악착같이 달려들어 과실을 취하고자 했던 종편채널에 닥칠 위기의 진앙지가 될 것이다. 앞으로 방송가의 새 유행어로 "이거 너무 종편스럽잖아"가 등장할 날이 멀지 않았다.
2011.12.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