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2013년체제와 사학 문제
윤지관 / 덕성여대 영문과 교수
군부독재체제를 종식시킨 1987년 시민혁명 이후 우리 사회는 정치를 비롯한 각 영역에서 민주화가 큰 흐름을 이루었다. 특히 선거에 의해 정권교체를 실현한 1998년을 기점으로 민주주의의 기본질서가 교육이나 문화의 차원으로까지 확산되는 진전이 있었다. 한국 교육에서 고질적인 병폐의 하나로 지목되어온 사학비리와 부패가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떠오르며 많은 사학들에서 분규가 발생하였고, 그 결과 대부분의 경우 비리를 저지르거나 장기간 절대권력을 행사하며 전횡으로 물의를 일으킨 재단이사장과 그 족벌들이 퇴출되고 관선이사가 파견되었다. 상지대를 비롯하여 덕성여대 동덕여대 세종대 광운대 경기대 대구대 조선대 영남대 등 전국에 걸친 분규사학들은 구성원의 의견을 반영한 관선이사 제도를 통해 안정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그 안정은 정착되지 못하고 대학들은 다시 혼돈에 빠지게 된다. 1987년체제가 사회민주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과제로 한 행보를 시작했다면,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며 등장한 이명박정권은 그 모든 성과와 흐름에 역행하는 정책으로 6월 시민혁명의 정신을 훼손했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퇴행과 그로 인한 갈등이 발생하였지만, 직격탄을 맞은 곳이 바로 이 사학들이다. 3년 전 주로 친정부적 인사들로 구성된 제2기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는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정상화'라는 미명 하에 비리 등으로 퇴출되었던 구(舊)재단을 차례로 복귀시켜 상지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학들에서 분규당사자들이 다시 대학운영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교수와 학생 등 대학구성원들은 교육시민단체들과 연대해 '사학비리척결을 위한 국민행동'을 결성해 이에 항의해왔고, 여러 대학에서 점거농성이 이루어지는 등 갈등이 재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학 문제는 '일부'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 뿌리깊은 사학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과거 각 대학은 참혹한 학내분규 끝에 구재단을 축출할 수 있었지만, 교육현장에서 그 악몽을 되풀이되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 현 정부의 레임덕이 깊어감에 따라 사분위의 막무가내식 구재단 편들기가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고 이미 구재단이 복귀한 곳에서는 과거의 전횡이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면서 심각한 분규가 예상되는 곳들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 새 정권의 창출과 더불어 시작될 '2013년체제'가 1987년체제의 복원이나 개선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의미의 변화를 이룩하려면 사학 문제에서도 발본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문제는 흔히 오해하듯이 '일부' 사학만이 아니라 한국 교육 전체의 핵심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작년 한해 동안 구재단 복귀대학들의 혼란이 사회문제가 되었음에도 교육의 다른 현안, 즉 '반값 등록금' 운동과 교육부가 강력하게 추진한 대학구조조정이라는 이슈에 가려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였다. 여기에는 사학 문제는 일부의 '특수한' 현상이고 이에 비해 후자들은 모든 교육주체에 관련된 '보편적' 사안이라는 이분법이 깔려 있다. 사실인 점도 있으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 '일부' 사학의 문제가 전체 사학, 나아가 한국 교육 전반의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징후이며, 이를 치유하는 작업은 교육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데 필수적인 계기임을 알 수 있다.
반값등록금과 올바른 대학구조조정을 위해 풀어야 할 과제
주지하다시피 사학은 한국 대학의 80퍼센트에 육박하며 이는 구미에서 사학 비중이 대개 20~30퍼센트에 머무는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반값 등록금 문제는 대학교육이 보편화된 현실에서 국민복지의 주요항목으로 떠올랐는데, 따지고 보면 그 중심이 되는 것은 '사립대학'의 등록금이다. 국공립의 경우도 최근 수년간 가파르게 상승했지만 사립대학 등록금의 56퍼센트에 머무르고 있으므로, 사학과 비교하면 국공립은 이미 명목상으로 '반값'을 거의 실현한 셈이기 때문이다. 대학의 구조조정 문제도 주로 사학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취학연령층의 감소로 10년 후에는 대학입학자 수가 지금의 3분의 2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 예상된다. 대학수를 줄이거나 정원을 줄이는 것이 구조조정의 피치 못할 경로라면, 우선 과도하게 팽창한 사학들이 주된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현재 교육계의 두 화두라고 할 수 있는 반값 등록금과 대학구조조정은 사학 문제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고, 이 문제의 해결 없이 제대로 된 방향을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무현정부에서도 부패사학을 근절하기 위한 사립학교법 개정이 4대 개혁입법 가운데 하나로 추진되었지만, 사학재단을 옹호하는 보수기득권 세력이 총궐기하다시피 하고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를 중심으로 격렬한 장외투쟁이 벌어지면서 좌절되었다. 2007년 정권말기에 사분위 설치가 규정된 현재의 사립학교법이 여야타협의 산물로 발효됨으로써 그 여파가 지금에 이른 것이다.
2013년체제와 교육개혁
이처럼 사학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들은 기득권 세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현 집권당의 박근혜 비대위원장이나 나경원 전 서울시장후보를 비롯한 많은 권력자들이 사학재단 '소유자'거나 그 집안 출신이라는 사실을 환기해보자.) 이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반값등록금의 실현이나 올바른 방향의 대학구조조정도 있기 어렵다. 그렇지만 그 해결이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정치싸움의 차원에 머물러서도 안된다. '2013년체제'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권리라는 국민의 기본권 확보가 문제해결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학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평생토록 혹은 대를 물려가며 전권을 휘두르는 족벌재단이 존속하는 한, 그리고 그런 폐습을 가능하게 하는 정책이나 운영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대학교육은 왜곡되고 학생들은 응당한 교육권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반값 등록금과 대학구조조정이라는 당면과제는 역으로 이제 더이상 사학의 개인적 지배가 용납되기 힘든 상황으로 우리 현실이 바뀌어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개인 지배의 족벌체제로는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으므로 앞으로 비리사학 운영자 퇴출은 하나의 흐름을 이루게 될 것이다. 또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려면 공공기금이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학운영에도 공적인 영역이 더욱 확장될 것이다. 결국 한국 교육에서도 사립대학들의 상당수를 공립에 준하는 대학으로 개편하는 등 구미의 경우처럼 고등교육의 공적기능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그 같은 방향의 교육개혁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2013년체제'의 과업 중 하나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문제사학이라는 우리 교육현장의 징후는 도려내어야 할 환부이자 교육 전반을 개혁하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라고 본다. 2013년이 사회민주화를 질적으로 심화시키는 원년이 되려면 사학 문제의 해결이 그 한 지표일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2012.1.1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