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국립대 구조조정 어디로 가야 하는가
정병호 /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명박정부는 2008년 10월부터 대학구조조정을 10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다. 교과부는 2009년부터 작년까지 경영 부실 대학 18개교를 선정하였고, 작년 7월에는 장관의 자문기구로 대학구조개혁위원회를 급조하더니 이를 앞세워 대학구조조정을 밀어붙였다. 그리하여 이 위원회는 작년 9월 사립대에 대해서는 총 43개교를 정부재정지원제한 대학과 학자금대출제한 대학으로 선정하고, 특히 작년 12월 중대 부정비리가 밝혀진 두 대학에 대해 폐쇄명령을 내렸으며, 국립대에 대해서는 강원대와 충북대 등 5개교를 구조개혁 중점추진 대학으로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교과부가 추진하는 대학구조조정은 대학평가 결과가 좋지 않은 대학에게 창피를 주는 대단히 비교육적인 방식이다. 대학평가지표도 취업률, 재학생 충원률, 국제화 정도, (국립대의 경우) 총장직선제 폐지 등 교육·연구와 무관한 것이 많아서 설득력이 없다. 이런 지표조차도 평가에 있어서는 왜곡되기 일쑤이다. 벌써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졸업생들을 무더기로 임시 채용하는 대학이 늘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교수들의 연구성과는 아예 평가항목에서 제외되어, 무엇을 위한 구조조정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을 위한 대학구조조정인가
특히 국립대 구조조정은 절차와 내용에 문제가 많아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는 국립대의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고 마치 군사작전 하듯 밀실에서 구조조정을 기획하여 집행하고 있다. 교과부는 국립대 구조조정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다루는 구조개혁위원회를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설치하였고, 그마저도 전문성과 독립성이 없다. 위원회 구성원의 다수를 기업과 시장을 대표하는 이들로 채웠고, 심지어 국립대 분과위원장에는 재벌기업의 CEO를 지낸 인사를 앉혔다.
게다가 교과부는 총장직선제 폐지를 국립대 구조조정 여부와 연계시켰다. 교과부의 겁박으로 인해 해당 대학 대부분은 총장직선제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과부는 총장직선제를 고수하는 국립대들이 오래 버티기 힘들도록 평가씨스템을 고안했다(총장 직선제를 폐지하면 항목 만점, 고수하면 항목 0점). 총장직선제는 법률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그 폐지를 위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또 이처럼 무리하게 총장직선제 폐지를 강행하는 것은 결국 지방 국립대의 법인화를 위한 길닦이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살 만하다.
다음으로 국립대를 통·폐합하고 학과 및 입학정원을 축소하는 것은 형평성과 고등교육의 공공성에 반한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학구조조정은 사립대와 국립대를 나누어 평가한 뒤 각각 하위 몇% 안에 드는 대학을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결국 부실 비리 사립대의 구조조정의 책임을 멀쩡한 국립대에 전가하는 꼴이다. 부실·비리 사립대가 만연하게 된 데에는 1995년 5월 대학설립준칙주의를 도입한 교과부의 책임이 가장 큼에도, 교과부 관료 중 누군가 책임을 졌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교육의 공공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길로 나아가길
교과부가 내세우는 국립대 구조조정의 이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공립대가 사립대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교과부는 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국공립대에 대한 예산지원이 사립대보다 훨씬 많은 것은 국공립대의 설립목적에 비추어 볼 때 지극히 합당한 것이다. 또 국공립대를 상위 몇% 내에 있는 사립대와 비교하는 것은 수도권이 모든 자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현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처사다. 오히려 객관적인 통계는 전체 교비 대비 성과 면에서 국공립대의 경쟁력이 사립대에 비해 낫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립대 구조조정으로 인해 고등교육의 공공성이 더욱 훼손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최근의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국공립대의 비율은 겨우 18%, 국공립대의 학생비율도 23%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OECD의 주요국과 비교할 때 형편없는 수준이다. 국공립대의 학생비율은 독일 95%, 프랑스 86%, 이탈리아 93%고 사립대학이 많은 미국조차도 72%에 달한다. 최근에 사회적 이슈가 된 살인적인 등록금 문제의 구조적인 원인은 국공립대 비율이 지나치게 낮다는 데에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공립대 비율을 늘릴 생각은 않고, 오히려 국공립대를 구조조정하려고 한다.
교과부가 선전하는 대로 국립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먼저 국립대에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정으로 국립대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교과부 장관이 대학을 지도하도록 되어 있는 고등교육법부터 고칠 일이다. 대학의 자율성을 뿌리채 흔들 수 있는 학장·학과장 공모제는 도입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대학구조조정에서는 무엇보다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선적으로 부실·비리 사립대 재단을 퇴출시키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대학을 국공립대로 통합하는 조치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대학과 학생 수를 줄이는 데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학문간 융·복합, 지역간 균형, 기초학문 강화 등을 감안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진행해야 할 것이다.
2012.2.1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