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이명박 심판과 국민경선, 정당개혁의 끝인가?
김남근 / 변호사, 참여연대 부운영위원장
4월 총선의 정치적 화두는 아무래도 이명박정부의 실정에 대한 심판으로 모아지고 있다. PD수첩 등 정부비판 언론이 탄압을 받고 많은 집회·시위 참가자들이 형사처벌을 받는 등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위축되었고 용산참사에서 보이듯 공권력을 전면에 내세우는 통치스타일로 인권이 크게 후퇴하였다.
그러나 이명박정부의 실정에 대한 국민적 분노의 진원은 비단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통계조작이 없었다면 2011년 사실상 5% 상승률에 달했던 물가대란, 2009~2011년 불과 2년 사이에 전셋값이 20~30%나 오른 전세대란, 1,000조에 육박하는 가계부채 대란 등 민생대란이 이명박정부 심판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의 근저에 깔려 있다. 게다가 비정규직 850만명, 실질실업자 400만명, 청년실업자 110만명 등의 통계가 보여주듯이 사회양극화의 극심화와 2030세대의 절망이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정권교체에 대한 절박함으로 나타나고 있다.
참여정부에 대한 '향수'로 그칠 것인가
국민들은 이명박정부에서 벌어진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 남북관계의 경색과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증대 등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정치개혁과 남북관계 개선에 앞장섰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명박정부에 의하여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비하되었던 참여정부의 비서관, 보좌관 들과 관료들이 이명박 심판을 외치며 일제히 출격하는 모습에서는 남다른 각오를 읽을 수 있고 여기에는 국민적 공감대도 상당히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명박정부에서 위기로 치닫고 있는 민생대란, 중산층 붕괴와 신빈곤층 증가, 청년들의 암울한 미래 등 민생과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상당부분 책임이 있고 과연 그 한계를 현재의 야당이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많은 불안과 의구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30세대에 좌절을 안기고 있는 천정부지의 집값, 비정규직 등 불안한 일자리, 가계부채의 위기, 중소기업․중소상인 보호를 위한 고유(적합)업종 보호제도 폐지 등 사회양극화 심화의 많은 원인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단초가 마련되었다. 야당이 애써 외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로부터 정치개혁, 민주주의와 인권의 신장, 남북관계의 개선 등의 정책은 계승해야 하겠지만, 과거 권위주의정권 시대의 관치경제를 벗어난다는 명목으로 서민과 중산층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 규제까지 철폐하는 등 호민관의 역할을 방임하며 시장방임적인 경제운용을 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한계는 극복되어야 한다. 아마도 민주당과 시민정치운동 '혁신과 통합'이 통합할 때의 그 '혁신'이란 이러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나 통합은 있되 혁신은 없다. 민주통합당 내부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열띤 정책논의와 새로운 정당으로의 탈바꿈에 대한 열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들이 열망하는 정권교체의 역사적 사명을 담당하는 정당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정책논쟁은 꺼내지도 못하는 정체된 모습이 아니라 치열한 정책논쟁도 있지만 끝내 이를 바탕으로 한발짝 변화해나가는 역동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이 정당개혁의 끝은 아니다
야당은 국민경선과 같은 절차적 민주주의 보장이 마치 정당․공천 개혁의 완성인 것처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국민경선이 만병통치약이 아니고 국민경선과 같은 절차적 민주주의도 야당이 요구받고 있는 시대정신이나 국민적 기대와 결합되지 않으면 지역에서 열심히 조직과 인맥을 다지는 데 주력한 노회한 정치인들의 패권정치로 흐를 우려도 크다.
재벌개혁을 주도한 인물, 노동개혁을 주도할 인물, 보편적복지정책을 주도할 인물, 주거․서민금융․교육 등 민생개혁을 주도할 인물들이 경쟁적으로 나서서 치열한 정책논쟁을 벌이고 그 결과가 공천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런 과정은 시대정신과 국민적 기대가 정당에 반영되는 진정한 정치적 프로세스일 것이다. 특히 총선과 달리 대선은 과거의 심판이 아니고 미래의 선택인데, 이명박정부 심판론에 기대어 미래의 대안에 대한 정책논쟁과 새로운 정책, 노선을 주도할 공천개혁이 뒷전으로 흐른다면 국민적 열망인 정권교체가 자칫 좌절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2012.2.1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