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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그리고 진보정치의 미래

김민웅 /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

 

통합진보당 사태가 2012년 한국의 진보정치에 막대한 타격을 주고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최소한 세가지를 알게 되었다. 첫째, 옛 당권파의 헌신 대상은 진보정치가 아니라 자기 정파라는 점, 둘째, 이들은 대중적 진보정당을 지향한다고 하면서 막상 문제가 생기니까 대중과의 관계설정보다는 당원 우선을 내세우는 자기모순에 빠졌으며, 셋째, 이들은 현실에 대한 예상, 책임, 국면전환에 필요한 정치력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경선관리 부실이라는 사건이 정당의 절차적 정당성과 민주적 운영체계에 심각한 균열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질 생각은 않고 법리적 접근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여겼다면, 이는 기본적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정치를 할 능력이 없다는 이야기다. 이정희 전 공동대표와 그를 둘러싼 세력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매우 치명적인 결격사유를 스스로 노출했다.

 

게다가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이석기, 김재연 두사람은 자신이 억울한 것만 생각하지 진보정치 전체가 억울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진보정치에 대한 헌신이 이들의 정치적 목표가 아니었다는 점이 드러난 셈이다. 애초에는 책임의 차원에서 사퇴가 거론되었으나, 지금은 진보정치의 진로가 막힌 상태에서 자신들의 사퇴가 진보정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인데 그걸 마다하고 있다. 이들은 국회개원이 되면서 '의원'이 된 모습으로 대중들 앞에 나타났지만, 보수세력이 진보정치를 공격하는, '걸어다니는 표적'이기를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진보진영 전체에 지속적인 누를 끼치고 있다. 이건 두사람의 개인적 의지만이 아니라 문제가 된 정파의 조직적 독단의 결과이다.

 

통합진보당 사태, 원인은 무엇인가

 

왜 이렇게 된 것일까? 통합진보당은 진보세력의 양적 확대를 통해 대중적 기반을 더 키워보자는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양적 확대는 반드시 질적 결합과 진화를 요청한다. 따라서 그에 걸맞는 자세와 의식, 그리고 지향점이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일단 대중의 판단을 존중하고 이와 소통하려는 노력, 민주적 절차에 대한 확고한 책임의식, 진보정치 전체의 맥락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태도가 결여된 탓이다.

 

초기대응과 관련해서는, 신속한 정치적 대응과 정밀한 진상조사를 통한 정국 돌파가 필요했다. 공동대표들이 그 권한을 위임했다고 해서 진상조사위의 결론이 자동적으로 모두에게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반론이 제기되면 이에 대한 경청과 검증을 통해 조사위의 결론이 정당성을 확고히 얻을 수 있는 절차가 필요했다. 이 점에서는 옛 당권파의 항변이 옳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적어도 부정이 아닌 부실은 여전히 부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통렬한 정치적 책임을 지는 모습이 우선되어야 했다.

 

이러한 틀 속에서 상대적으로 시간이 걸리는 진상조사의 정밀한 검토가 뒤따랐을 때, 상황은 매우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진보정치의 발전을 위한 논의와 이에 기반을 둔 국면전환이 가능했을 것이다.

 

'종북주의'라는 프레임에 또다시 갇힐 것인가

 

옛 당권파의 중앙위 폭력사태에 대한 인식도 참담하다. 유발된 폭력이라는 관점으로는 사태의 본질이 보이지 않고, 폭력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사죄와 책임의식은 실종되어 있다. 기본이 안되어 있는 것이다. 민주적 논의구조를 집단적 물리력으로 파괴하는 행위는 그 어떤 이유를 들어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아직도 단 한마디의 사죄표명이 없다.

 

이런 판국에 '종북주의 논란'은 집권세력의 대선정국 운영전략과 연결되어 진보정당만이 아니라 야권 전체를 향한 정치적 포문이 열린 상황이 되고 있다. 변형된 북풍공세다. 최근 새누리당이 민주당까지 종북세력으로 몰아가면서 대선을 공안사건화시키고, 이명박정권의 비리부패를 비롯해서 민주주의의 회복과 사회경제적 모순을 일체 덮고 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그런 식으로 대선승리를 도모하는 것은 산적한 현안들을 종북주의 논란 하나로 피해가면서 권력쟁취에만 몰두하는,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집단의 처사로 신랄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다 하더라도, 현재의 단계에서 대중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대북관이나 대북정책에 대한 진보정치의 관점과 주장이 절실한 상태다. 북한의 핵무장은 미국의 적대정책에 대한 자기방어적 정당성이 있다 해도 참담한 공멸을 가져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무장체제라는 점, 북한의 3대 세습은 북한사회의 외적 환경과 내적 요구에 따른 특수한 정치라 해도 민주주의의 보편적 발전사와는 일치되기 어렵다는 점, 북한의 인권상황은 그 해법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탈북자의 증가현상만 보더라도 열악한 수준임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정리해야 한다.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거듭나기를

 

이런 전제 위에서, 북한의 핵무장 문제는 북에 대한 비난보다는 동북아시아 평화체제를 구축해나가는 과정에서 더 현실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북한의 인권문제에도 남북의 평화적 교류에 따른 긴장완화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점, 그리고 북한의 3대 세습 문제 역시 이러한 상황의 전반적인 변화와 함께 북한 내부의 새로운 정치적 고민과 대응에 따라 변모의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라는 점 등을 아울러 언급하는 방식을 취하면 어떻겠는가? 대북정책은 전략적·정책적 신중성이 반드시 필요한 사안이라는 점에 누구나 공감한다.

 

따라서 통합진보당 사태의 해결에는 두가지가 필요하다. 대중적 진보정당으로서의 당내 민주주의를 복원하고, 한반도 미래에 대한 대중적 설득력을 갖춘 논리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엄격한 결단이 요구된다. 진보정치의 본령으로 돌아가, 부당하게 고통받는 이들의 삶을 위해 헌신하는 시간을 하루라도 앞당겨야 한다.

 

2012.6.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