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인권문제를 두고 남북한이 협력하는 길
이대훈 /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 평화학
북한과 같은 다른 사회의 인권문제에 견해를 갖고 접근하는 것은 신중을 요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개입하지 못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 내정간섭에 해당된다는 주장은 낙후하다. 국가주권 위에 인간의 주권 즉 인권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뿐 아니라 한국에도 적용된다. 인권을 위한 인권적 개입, 한국이건 북한이건 환영되어야 한다. 어떤 체제와 발전모델을 선택하는가는 그 나라와 민중의 고유한 인권이라는 점도 전제하고 개입하는 것이 인권적 개입이다. 문제는 속셈이 다른 데 있는 반인권적 인권개입이다. 무력충돌을 유도하기 위해서 인권을 이용하는 것은 절대악이다. 좋은 질문은 '어떻게?' 이다. 더 좋은 질문은 '어떻게 평화 지향으로 인권개입을 할 것인가?'이다.
인권을 거론하는 순간 최고의 관심사는 피해자, 약자, 소수자의 보호다. 그 다음이 예방·재발방지며, 그 다음이 인권 증진이다. 이 인도주의적 관심이 최우선이다. 그 외의 목적이 부각되면 이는 인권을 위한 개입이 아니다. 또 이렇게 볼 때 '인권문제'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없다. 어느 나라의 인권이 더 심각한 상황인지 서열을 매기는 것은 전쟁 좋아하는 국가에서나 하는 일이다. 약자, 소수자의 피해에 서열이 어디 있겠는가. 권력에 의해 단 한사람이 부당하게 당해도, 권력이 그 책임을 회피할 때 그 사회는 총체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이는 남북한 모두 적용되는 인권 원리다.
실질적인 인권개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북한은 전쟁과 분단, 적대의 거울로 서로를 쳐다본다. 그래서 북한과 남한의 인권 상황은 사실 별개가 아니다. 예를 들어 고도의 군비경쟁과 적대체제는 인권보장에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옥죈다. 남한도 예외가 아니다. 군사적 충돌의 긴장 속에서 국가권력은 시민을 통제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군사적 위협은 부풀려지며 공포가 조성된다. 양쪽 체제 모두 시민의 생각과 마음을 훔쳐보고 조이고 벌하는 법체제와 국가기구를 갖고 있다. 한쪽의 기아와 가난, 고도의 통제체제와 다른 쪽의 심각한 불평등은 동전의 양면이다. 양쪽의 반인권적 시민통제는 방식이 다를 뿐 국가의 전면적인 통제체제가 견제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한쪽의 노골적인 정치적 억압과 약자에 대한 다른 쪽의 배제와 차별, 그리고 체제폭력 역시 동전의 양면이다.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하지 않기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어느 한쪽이 자부심을 가질 수준은 못된다. 권력 세습은 양쪽 모두 서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한반도 내부의 대립구조,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대립구조는 남북한 인권상황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쳐왔다. 그래서 남북한 사이의 인권 공방 역시, 서로 손가락질 하는 방식보다는 함께 손을 잡는 방식으로 푸는 것이 더 낫다. 이를 '남북한 인권협력'의 개념으로 정식화할 수 있다. 막대한 낭비를 초래해온 군사적 대립과 과잉경쟁을 생각하면, '남북한 인권협력'의 접근이 체제대립을 위한 인권개입보다 우월하지 않을까? 목소리 높이는 인권개입에서 실질적인 인권개선으로 옮겨가자는 것이다.
'남북한 인권협력 방안'은 분단체제와 인권문제를 연결시켜서 판단해 그 해결책을 찾자는 제안이다. 그 첫 단추로, 윤리적 기준을 갖추어 일관성 있게 인권활동을 전개해온 한국 인권단체들의 남북한 인권협력-대화 구상 포럼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남북한 간의 포괄적 인권대화, 남북한 인권사상과 체제의 이해를 시도하고, 다음 남북한의 서로 다른 인권론에 대한 대화와 학술적 교류 등으로 남북한 간의 협력을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포럼에서 북한 당국이 '협력'의 전망으로 수용할 수 있는 인권대화 및 협력의 정신을 '남북한 인권대화 협력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인권외교의 영역을 개척하자
남북한 인권협력은 양국 간의 인권외교이기도 하다. 그래서 남북한 인권협력을 위한 인권대사 제도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그런데 현대 인권외교는 정부만 하는 것이 아니다. 유엔 인권기구와 협력해서 하기도 하고 시민사회가 직접 하는 것도 장점이 많다. 한때 정부에서 인권대사, 여성인권대사를 두고 성과를 낸 적도 있으니, 이 분야에서도 유엔과 미국의 특별보고관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인권협력 외교기구를 두면 좋을 듯하다. 정부 수준의 남북한 인권협력 대사, 그리고 시민사회의 인권협력 대사, 이렇게 2인 대사로 가면 좋겠다. 남북한 여성대화, 여성인권에 대한 북한의 개방적 태도 등을 생각하면 남녀로 대사가 구성되면 더 좋겠다.
인권협력 대사는 우선 분단과 긴밀한 연관성을 가진 남북한 인권을 모두 다룬다. 그리고 정부와 시민사회의 관심을 동시에 다룬다. 긴장이 상대적으로 낮은 아동인권, 여성인권, 복지관련 인권 등으로 시작할 수 있다. 인권협력 대사는 시민사회에서 만든 '남북한 인권대화 협력 가이드라인'을 기초로 북한과 인권분야 협력을 전문적으로 추진하는 외교를 북한과 주변국, 그리고 국제기구에서 펼친다.
이를 통해 남북한 정부와 인권지향적 인권단체들은 남북간 인권대화를 정례화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이를 남북한 대화무드에 연동시키려고 노력한다. 그 시작으로서 먼저 남북한의 인권학자들이 남북한 인권상황과 인권정책, 국제인권규범과 남북한의 인권 격차, 남한의 인권론과 북한의 인권론 등을 주제로 학술회의를 여러번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인권협력대사는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과 같은 유엔인권기구와 협력해서 남북한의 인권증진을 위한 유엔의 전문적 협력써비스를 가동시킬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 별도의 전문적인 자문기구를 두면 그 자체로 남북한 인권협력을 위한 국제외교를 시작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유네스코, 남북한 정부, 국가인권기구 국제기구, 한국국가인권위회가 공동주관하는 'Korea 인권교육 증진방안 워크숍'을 개최해서, 남북한 인권교육 정책담당자, 인권교육학자/연구자, 인권교육가, 남북한 및 국제 인권단체, 주최기관 등이 교류하며 서로 훈련을 받는 교육협력도 가능하다.
현재 북한 인권 논란은 거울 저 건너편에만 인권침해가 있는 것 같은, 그 거울에 대한 손가락질이나 공격 이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은 착각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상생적이고 평화주의적 인권협력은 가능하고 현실적이다. 오히려 인권개선에 더 실용적이다. 국제 여론의 지지도 더 높을 것이다. 한국에서 못해본 새로운 외교 영역을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접근이 실현되어 정례화되면 아래처럼 남북한 인권분야에서 새로운 협력과 화해의 구조를 만들게 될 것이다.
2012.6.1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