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의 실현 가능성 높이려면
장수명 /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 안이 진보정당들의 수용을 넘어 2013년 집권 가능성을 엿보는 민주통합당의 대선 공약으로 다듬어지는 가운데 후폭풍 수준은 아니지만 반론들이 나오고 있다. 서울대 폐지론이다, 하향평준화를 추구한다, 2부 리그로 전락하여 서열완화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등이 그것이다. 또한 예상되는 강한 저항을 고려하여 서울대를 통합네트워크에서 제외하자는 주장(김종엽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에서 서울대를 빼버리자>, 2012.7.4)도 이 지면을 통해 소개되어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네트워크 안은 국가 수준의 장기적 계획과 안정적이고 대폭적인 재정지원 아래 국립대학을 중심으로 대학들이 서로 연계하고 협력하여 공공성과 경쟁력이 높은 대학체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 안은 기존 체제와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우려와 불안으로 저항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미래란 모두에게 불확실하고 모든 기득권은 어느정도 정당성이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네트워크 안의 목적에 동의하면서도 동시에 명문대학 입학경쟁을 게임의 공정한 규칙으로 받아들인다. 정책 실현을 위해 더 중요한 것은 권력 엘리트의 용인보다 투표권을 행사할 시민들의 복잡한 마음이다. 이 점을 고려하여 필자는 이 안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이미 다양하게 논의되는 방안을 좀더 진척시키고자 한다.
네트워크 안, 동의와 의구심의 공존
네트워크 안은 체제 차원의 혁신이라는 큰 그림에 집중하여 현존하는 대학들과 학생들의 다양한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고 대학의 자율과 개인의 선택을 등한시했다. 또 제도 변화가 가져올 결과의 의미만 부각시켰을 뿐 민주적 혁신과정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런 관점에서 이 글은 네트워크 체제 내부의 대학부문별 역할 차이, 공동입학과 공동학위의 문제, 그리고 혁신과정의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민주적 장치에 초점을 맞추었다.
네트워크 안의 한 특징은 참여하는 모든 대학에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면서 대학별 특성화를 꾀한다는 것이다.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대학 진학률이 낮아 입학생의 자질이 상대적으로 동질적인 유럽 시스템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학 진학률이 매우 높은 우리의 경우 적절할 수 없다. 대학을 그룹별로 나누고 그에 따라 다른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부문별 특성화가 필요하다.
대학의 균등한 발전을 추구해온 유럽에서도 학부교육을 겸하면서 석·박사과정과 연구에 집중하는 일반대학 그룹과, 연구도 수행하지만 직업과 교육에 집중하는 폴리테크닉 등 응용과학대학으로 불리는 그룹으로 나뉜다. 취학률이 높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연구거점인 캘리포니아 대학들, 교육과 직업 중심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들, 개방적 지역사회대학들이 각기 다른 리그들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의 네트워크 안도 연구와 대학원에 방점을 두는 10여개의 연구거점 대학들과, 직업교육과 학부에 방점을 두는 교육중심 대학들로 구분해 각각 역할을 명확하게 분담해야 한다. 이같은 그룹별 특성화로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는 값싸고 양질의 대학교육에 접근기회를 갖게 될 것이기 때문에 환영할 것이다.
공동입학·공동학위 제도의 적실성
네트워크 안의 공동입학·공동학위 제도는 또다른 특징이다. 서울대를 포함한 모든 네트워크 대학이 함께 선발하고 재배치하고 동일한 졸업장을 주자는 것이다. 이 내용은 대학서열을 완화하는 장점이 있지만 반론에는 매우 취약하다. 진학률이 낮은 나라들의 시스템을 진학률이 유난히 높은 우리 현실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자격기준은 그 내용과 관계없이 위에서 언급한 대학그룹별로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잠재적 학습역량이 있는 대상자를 모두 수용하는 것은 타당한 근거와 사례도 있지만 자격기준을 전제로 학생들을 임의로 지명해서 배치하는 것은 무리다. 특히 초기 단계에서는 대학별 교육 및 연구 여건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공동입학과 공동학위에 대한 저항이 대학뿐 아니라 학생들로부터도 나올 수 있다. 단계별 접근을 하되 대학별로 학생들의 선택과 대학의 자율도 일정한 규칙을 갖고 허용해야 한다.
공동학위도 마찬가지다. 네트워크 안의 대학들이 공동으로 입학생(전학생) 자격을 관리하고 공동으로 교육과 학위의 자격과 질을 관리하는 수준으로 공동입학과 공동학위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점차 대학의 여건과 대학(캠퍼스)에 대한 선호가 유사해졌을 때 이를 전면 시도할 수 있다. 현단계에서 시도를 고려해볼 만한 영역은 입학생의 수학능력 수준이 비슷하고 교육시스템이 유사한 교육대학, 의과대학 및 법학전문대학원 정도다.
‘국립대학위원회’를 제안한다
네트워크 안은 그 복잡한 체제와 혁신과정을 운영할 시스템, 즉 거버넌스와 평가기구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체제 전반의 발전을 계획하고 집행할 거버넌스 구조와 대학의 질적 변화를 지원할 전문적 평가기구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대학사회의 대표자, 시민사회의 대표자, 정부 대표자 및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국립대학위원회’ 같은 협치구조가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와 주장들을 검토하고 조정해야 한다. 또한 대학 질적 변화를 지원하고 조력할 평가기구를 만들어 대학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음을 투명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캘리포니아도 체제 전체를 다루는 이사회가 있어 총괄적 발전계획을 수립해서 집행하고, 핀란드의 경우는 대학위원회가 그 역할을 수행한다.
한편, 지역의 시민사회와 대학들은 네트워크 안이 지역에 현존하는 대학들에게 어떤 의의를 갖는지 매우 궁금해하고 있다. 권역 내부의 연구거점 대학과 교육중심 대학의 관계, 동일 그룹 내의 전국 다른 대학들과의 관계, 사립대학과의 관계 등을 선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특성화를 위한 학과 간 빅딜를 통한 교수진의 집중 외에는 아직 그 의미가 분명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이미 소개되고 있는 다양한 국제적 사례들을 참조해서 이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대학 취학률은 우리와 유사하지만 좋은 대학들이 많은 사례들이 있다. 인구가 우리보다 천만명 이상 적은 미국 캘리포니아주나 캐나다도 15개 정도의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대학들과 매우 많은 양질의 교육중심대학들이 공립 위주로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시민 누구나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평생학습을 할 수 있는 공립의 개방적인 지역사회대학이 곳곳에 존재한다. 이런 사실들을 명심해서 소수의 세계적 대학만을 위한 대학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우리도 대학의 경쟁력과 품질도 높이면서, 대학체제의 불균형과 역진성을 극복할 시점이다. 네트워크 안의 큰 의미를 정치권이 진정성을 갖고 수용하길 희망해본다.
2012.8.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