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대학체제, 어떻게 개편할 것인가: 차기정부의 교육정책 수립과 관련하여
윤지관 / 덕성여대 영문학과 교수
차기정부의 교육개혁을 위한 방안으로 대학체제 개편이 핵심안건으로 떠올랐다. 입시 과열경쟁과 사교육 팽창으로 공교육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그 근원이라고 할 학교간 서열화를 비롯한 대학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반값등록금 의제도 대학교육의 비용을 과도하게 개인이나 가계에 부담시켜온 우리 교육의 관행을 혁파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힘을 얻게 되었다. 대학체제 개편 요구는 진작부터 있어왔지만 지금 국면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반값등록금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도 현재의 구조를 개혁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반값등록금 정책은 대학에 국가재정을 대폭 투입하는 일이므로 단순히 장학금을 증액하는 차원을 넘어서 대학교육의 공공성을 높이는 과정과 병행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민주통합당과 진보정의당이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입법상정 중인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의 취지만 보더라도 고액등록금에 의존해서 운영해온 사립대학들의 비리 및 부실운영을 그대로 두고 국가재정을 지원할 수 없음을 분명히하고 있다. 따라서 차기정부에서 기금 투여를 조건으로 대학운영의 공공성을 높이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차기정부의 대학개혁 과제
현재 한국대학은 사립이 80%를 차지할 정도로 과도하게 팽창했을 뿐 아니라 족벌경영 등 해묵은 문제가 온존하는 한편으로, 출산율 저하에 따라 많은 사학들이 정리되거나 축소될 수밖에 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 앞으로 10년 안에 현 대학정원이 3분의 2로 줄어들고 그 이후에도 이 추세가 지속되기 때문에, 구조조정은 필연이고 다만 방법이 문제다. 그런데 현 정부가 학생충원율과 취업률 등 경쟁중심의 성과지표를 퇴출기준으로 강요하는 탓에 대학들이 지표를 높이기 위해 편법을 마다하지 않는 생존투쟁에 매달려 대학교육의 목적부터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위기는 대처하기에 따라 현재의 왜곡된 대학편성 비율을 정상화하고 대학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어차피 정리대상 대학이 사립에 집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과도한 사학의존 비율은 자연스럽게 완화될 것이다. 아울러 반값등록금 지원 등을 매개로 사학의 전근대적 지배구조를 민주화하고 공교육 기능을 살려나감으로써 고등교육의 선진화를 이룩할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현재 20대 80의 비율인 국공립과 사립을 임기 중에 50대 50, 장기적으로 70대 30까지 조정하겠다거나, 사립대 상당수를 형태는 사학이나 정부가 운영을 관리하는 ‘정부책임형’으로 전환시키겠다는 공약이 나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처럼 대학교육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가운데 최근 진보학계는 그간의 대학체제 개편 논의를 종합하여 '대학통합네트워크' 체제를 내놓았다. 이 구상은 기존의 '국립대학통합네트워크' 안과 '국립교양대학' 안을 결합한 것으로, 전국의 국립대학들을 하나로 묶어서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이 통합국립대를 중심으로 권역별로 원하는 사립대까지 포함하는 대학통합네트워크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전국에 걸친 국립교양대학을 설치하여 대입자격고사를 통과한 학생들이 자기 지역의 이 공통과정에 입학한 후 1~2년의 교양과정을 거쳐서 각 캠퍼스와 전공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전자를 통해서 대학서열구조가 완화되고 후자를 통해서 입시를 철폐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구상의 취지다.
진보학계 논의의 종합판, '대학통합네트워크'
아주 새로운 발상은 아니지만 실행된다면 대학체제를 완전히 재편하는 획기적인 방안이 될 수 있고, 사교육으로 병든 한국 교육을 단번에 혁신하는 근본처방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실성뿐 아니라 이념적인 차원에서도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서울대 폐지론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어온 전자도 반발이 예상되거니와 같은 지방의 국립대들 사이의 통합작업조차 난항을 겪어온 그간의 현실도 고려해야겠지만, 후자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국립교양대학을 설립하여 모든 학생에게 교양과정 이수를 무상에 가까운 의무로 한다는데, 전문대 진학자의 경우는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다양한 수준의 지역 학생들이 그 지역 캠퍼스의 통합교양과정에 기꺼이 입학할지부터가 불분명하다. 무엇보다 이 경우 교양과목 학점이 중요한 진학지표가 되면서 교양의 본래적 의미가 살아나기보다 학생들은 높은 학점에 지금보다 더 목을 맬 것이 뻔하다.
그렇지만 더 본원적인 문제는 국가가 교양교육 전체를 관장한다는 발상 자체에서 엿보이는 국가주의적 요소다. 교양이란 이념상으로는 근대사회에서 개인의 완성과 성숙을 뜻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국가의 이념에 합당한 국민으로 훈련되는 과정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시민양성의 성격을 가지긴 해도 교양을 획득하는 일에는 자유로운 의식과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 국가가 정도 이상으로 개입하는 것은 교양의 목적에 위배된다. 각 대학별로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교양교육을 한 기관으로 통합하여 국가가 일률적으로 관리한다는 발상은 매우 위험스러운 것이다. 교육에서의 공공성이란 국가가 책임을 지되 교육주체들의 자율성을 보장할 때 제대로 실현되는 것이지, 국가의 목적을 위해 직접 그 내용을 통제하고 관리하게 되면 오히려 진정한 공공성을 해치게 된다.
대학운영의 공공성 높이되 교육 자율성 보장해야
진보학계의 제안 가운데 하나인 국립대통합네트워크 안은 민주당 후보진영에서도 수용원칙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안이 실현된다 해서 대학서열화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약화될 수는 있기 때문에 국립대의 통합운영 방안은 앞으로 그 가능성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안철수 후보진영에서 이 문제의식을 살린 ‘거점국립대학’과 ‘특성화 혁신대학’의 연합체를 강조했던 점도 참조할 만하다. 그렇지만 이 네트워크 안이 현재로서는 국립교양대학의 설립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과연 이 자체만으로 시행이 가능한지부터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처럼 다가온 대학체제 개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만큼 이 모색은 지속되어야 할 터이다. 다만 차기정부에서 먼저 수행해야 하고 현실성도 있는 대학체제 개편은 과도한 사학비중을 줄이고 국공립비율을 높임으로써 대학교육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방향이다.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학통합네트워크 안을 구체화할 전망도 자연스럽게 생겨날 것이다.
2012.12.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