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천안함참사 3주기를 맞으며
이태호 / 참여연대 사무처장
어제로 천안함참사 3주기를 맞았다. 천안함 침몰 원인을 둘러싼 논란과 비밀을 간직한 채 서해는 매서운 칼바람 속에 말이 없다.
이명박정부는 북한 소형잠수정이 중어뢰를 발사하여 천안함을 침몰시킨 것으로 이 충격적인 사건을 결론 내리고 6·2 지방선거 기간 중에 강력한 대북 군사·경제 제재조치(5․24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핵심증거와 논거는 민간 전문가와 시민사회, 언론에 의해 과학적으로 부인되거나 의문시되었다. 2010년 7월 서울대·갤럽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약 70%가 정부의 천안함 침몰 관련 발표를 믿지 않거나 반신반의한다고 응답했다.
최종보고서 발표 후에는 심지어 보수언론조차 정부 조사결과에 대한 국회의 검증을 촉구하기도 했다. 중국과 러시아 등 일부 주변국도 우리 정부의 발표에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논란이 있었으나, 이는 남한의 주장과 북한의 반론을 병기하는 방식의 의장성명 발표로 일단락되었다. 우리 정부가 시도했던 대북 제재조치 결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침몰’이라고 하면 종북주의자?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천안함이 폭침되었다는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적지 않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지난 3년 동안 정부나 국방부로부터 새로운 정보나 증거가 제시되어서도 아니다. 다만, 지속적으로 악화되어온 남북관계와 군사적 갈등이 ‘폭침’이라는 심증을 강화하는 환경으로 작용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과학적 합리성과 민주주의적 절차는 지금과 같이 복잡한 갈등의 상황에서 실수와 오류를 면하고 진실을 밝히며 정의를 세우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따라서 ‘침몰’이라는 중립적 표현을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종북주의자’라는 맹렬한 비난에 직면하곤 하는 지금이야말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관계와 의문점을 분명히해두는 작업이 절실한 시점이다.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논란이 일어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천안함 침몰사건 전후의 기초적인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관련 정보들이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천안함사건 관련 정보는 대부분 군 기밀이란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다. 심지어 정확한 침몰지점과 수심층도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국회가 제기한 각종 정보공개청구는 거부되었고, 해외조사단의 조사내용에 대해서는 해당 정부들과 정보비공개 각서를 체결하여 공개하지 못하도록 했다. 주한 미국 대사를 역임한 동북아 정보전문가 도널드 그레그(Donald Gregg)는 2010년 9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정부는 보고서 내용을 완전히 공개하지 않는다. 그래서 객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한국정부가) ‘합조단 보고서는 기밀이다. 우리는 이를 말할 수 없다’는 방식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다. 그 경우, 진실은 우리를 교묘히 피한다”며 한국정부의 발표에 강한 의구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합리적 의문 제기에 묵살로 일관하는 정부
천안함 침몰 원인 논란의 또다른 요인은 정부의 최종 분석에 대해 설득력있는 과학적 반론이 제기됨에도 정부가 이에 대해 과학적인 방식으로 답하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과 정부는 백령도 인근 해역에서 발견된 어뢰추진체와 천안함 함체에서 동일하게 발견된 백색물질이 폭발로 형성된 ‘알루미늄 산화물’이기 때문에 수중폭발이 있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나아가 모의폭발실험 결과 동일한 백색물질이 검출되었다면서, 이 세가지 물질의 분석 데이터가 동일한 것은 수중폭발을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천안함과 어뢰추진체에서 발견되었다는 백색분말은 버블붕괴와 함께 고속으로 선체에 흡착되었다는 군과 정부의 설명과는 달리 주로 철과 알루미늄 부품에서만 발견되고 있어 과연 폭발물질이 외부에서 고속으로 흡착되었다면 왜 유독 철과 알루미늄에서만 발견되는지, 혹시 철과 알루미늄 부품이 폭발이 아니라 바닷물과의 화학적 반응에 의해 변형된 것은 아닌지 하는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어뢰부품과 천안함 본체에서 정부가 발견했다는 백색물질이 폭발재(산화알루미늄)가 아니라 침전물(알루미늄황산수화물)에 불과하다는 과학적 반론이 잇달아 제기되어왔다.
게다가 일부 과학자들의 지적에 따르면, 정부가 모의폭발실험으로 생성된 폭발재(산화알루미늄)의 성분분석(EDS) 결과라고 주장하는 그래프를 살펴보니 폭발재의 성분분석 그래프가 아니라 도리어 침전물(황산염알루미늄수화물)의 성분분석 그래프와 유사한데,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천안함과 어뢰추진체에서 수거한 물질이 침전물질이 아닌 폭발재라고 결론내리기 위해 모의폭발실험을 통해 실제로 생성된 폭발재의 분석데이터 대신 침전물의 분석데이터를 제시함으로써, 마치 모의폭발실험을 통해 천안함에서 수거된 백색물질을 과학적으로 재연한 것처럼 꾸민 것 같다는 의혹이다.
그러나 정부와 군은 이를 재확인하고 과학적 증거에 기초해 반박한 것이 아니라, 이미 해외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과학적 검증이 끝난 사항이라며 검증요구 자체를 외면해왔다. 재미 과학자 이승헌 교수 등은 이 데이터가 조작된 것이 아니라면 같은 실험을 반복하여 동일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 터이니 모의폭발실험을 다시 해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정부는 과학적 분석이 이미 끝났으므로 논쟁을 위한 논쟁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실험을 통한 재연 가능성은 과학적 입증의 기초라 할 수 있다. 만약 정부가 모의폭발실험을 재실시하여 분석 데이터를 재연한다면 정부의 조사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예산도 크게 소요되지 않는다. 다만 정부 스스로 최종보고서의 미비점을 인정하는 것이 마뜩치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천안함 의혹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비용을 감안하면 그 정도의 혼란은 감수할 만하지 않은가? 천안함사건 조사결과를 둘러싼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박근혜정부가 검증작업에 좀더 능동적으로 나서기를 촉구한다.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 노력 필요
정부가 자발적으로 나서기 힘들다면 국회가 도울 수 있다. 진작부터 시민사회단체와 언론은 19대 국회에 초정파적인 천안함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해왔다. 사실 18대 국회는 국민을 대신해 정부 조사결과를 검증할 책무를 게을리했다. 18대 국회에 구성된 천안함특위는 정략적 이유에서 부실하고 무책임하게 운영되었고, 그나마도 여당의 비협조로 단 두차례만 열린 채 정부 측 최종보고서도 제시되기 전인 2010년 6월 27일 시한이 마감되고 말았다. 천안함사건 3주년을 맞아 국내외의 의혹을 해소하고 진실을 찾는 노력이 국회를 중심으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정부는 투명한 정보공개로 국회의 진상규명 노력에 적극 협조하고, 국회는 국민 모두가 신뢰할 만한 검증작업으로 천안함사건의 전모를 밝혀야 한다.
마지막으로 야당의 모호한 태도도 지적하고자 한다. 2010년 지방선거 기간 중 천안함사건에 대해 정부가 허점투성이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여 북한 소행으로 단정하고 5․24조치를 발표했을 때 야당은 앞장서서 정부의 정략적 행보를 규탄하고 의혹 규명과 정보공개를 촉구했다. 당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의 제안으로 개최된 각계 인사 기자회견에 필자도 참석했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민주통합당은 진실규명을 위한 구체적 노력을 보여주지 않았다. 또한 “천안함사건에 대한 정부의 발표는 신뢰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는 민주통합당 추천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국가관이 분명한지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여당에 의해 거부될 때조차 자신들이 추천한 후보자를 지켜주지 못했다.
천안함 문제와 관련해선 지금까지 법정에서 진실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재판 중인 사안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고 밝힌 법률가에게 흡사 신앙고백을 강요하는 듯한 여당의 태도를 수수방관한 것이다. 결국 민주통합당은 대선에서 천안함사건을 ‘폭침사건’이라고 명명함으로써 그 이전의 태도에 대해 아무런 설명 없이 정부의 조사결과를 수용하고 말았다. 만약 민주통합당이 국회를 통해 의혹을 규명하려 했으나 정부의 결론에서 결정적 허점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이해의 여지가 있겠으나, 민주통합당이 그런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의문이다. 제1야당이 마녀사냥식 비난이 두려워 명분 없이 입장을 뒤바꾼다면 우리 사회에 합리적 지성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는 당명으로 내걸기만 한다고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2013.3.2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