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재정건전성과 경기활성화의 역설
정창수 / 나라살림연구소장,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전 세계에서 전쟁의 위협 도중에도 자국민이 여행을 다니고 일상생활을 하는 나라가 두 나라 있다고 한다. 바로 이스라엘과 한국이다. 지금 남북문제가 폭풍전야다. 연일 개성공단을 폐쇄하느니 미사일을 발사하느니 하면서 위협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경제는 돌아가는 것을 보면 한국은 역시 역동적인 국가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안보위기에 마냥 무심하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이 가져오는 문제 중 하나는 불안정한 상황 떄문인지 길게 보는 시각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대통령이나 관료도 마찬가지다.
단기적 시야에 길을 잃은 정권
5년 단임 대통령에 주로 1년마다 바뀌는 관료, 하루하루의 이슈에 함몰된 정치권과 언론은 현안에 대해 단기적인 대응밖에 할 수 없어서, 국가의 중장기 계획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스티븐 코비(Stephen Covey)는 중요한 일은 급하지 않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지만 급한 일을 처리하느라고 중요한 일을 놓치게 된다고 갈파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재정문제다. 북한문제는 정치적 결단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라도 있지만 재정은 한번 구조가 망가지면 회복하기 힘들다. 이것이 재정의 지속가능성이다.
정부는 최근 최대 20조원 규모의 추경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성장률이 저하되어 세입감소가 불가피해, 이를 채울 국채를 발행하겠다고 한다. 동일한 관료들이 세운 세수계획이 불가 석달 만에 뒤바뀐 것이다. 올해 균형재정목표는 공식적으로 폐기되었고, 5%의 세입 증가를 예상하고 짜여진 이명박정권의 예산안도 전면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해 말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기침체란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상황에서 규정된다고 말하며, 대부분의 민간기관이 2%대의 경제성장률을 예상할 때 3%대의 성장을 낙관했다. 그런데 불가 몇달 사이에 정부는 경제성장률 예상을 2.3%로 낮추고 그나마도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허풍과 엄살이 교차하는 상황이다.
단기적 처방 부채증가를 우려한다
문제는 이러한 단기적인 현실인식과 대처가 단순히 성장률 수치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채가 증가하고 있다. 부채문제에 대해 한가지 분명히할 것은 많은 사람들은 부채가 나쁘긴 하지만 현재의 재정문제를 다음 세대로 넘겨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생각이 부채 증가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부채가 증가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첫째, 부채 원금보다 이자가 더 큰 문제다. 개인부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자 문제가 아니라면 가계부채는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2012년 현재 우리의 국가재무재표상 국가부채는 902.4조원이다. 물론 총자산은 1581조원이며 순자산은 678조원이다. 그러니 정부는 안심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계산방식에 따라 국가부채의 차이가 너무도 크게 벌어진다. 최대 1200조원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 한편, 작게 보아도 국가부채무가 443조원, 여기에 8대 공기업의 부채 324조원를 합하면 767조원이 넘는다. 이율 4%로 계산해도 연간 이자만 30조원이 넘는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이자를 감당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러나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는 차치하더라도, 국방예산이 34조원이고 보건복지부의 예산이 41조원인 상황에서 이자로 소모되는 재정만 줄여도 정부는 복지정책을 포함해 다른 많은 공익적 정책을 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이 이자가 역진적이라는 것이다. 국가부채의 이자는 전국민이 골고루 부담해야 한다. 전체 재정에서 기계적으로 지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이자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주로 금융 및 채권소유자들에게 지급된다. 즉, 부유한 사람들에게 지출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세금이 부유한 사람들의 이자수입이 되어 그들을 더욱 부유하게 해주게 되는 것이다.
셋째, 현재 우리 정부의 문제는 감세를 통해 줄어든 세입을 국채발행으로 메꾸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부동산 대책은 그나마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위축된 소수의 부유계층을 도와주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감세효과가 경제성장에 도움을 준다는 ‘낙수효과’를 아직도 믿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기득권 세력의 마지막 보루 부동산을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마지막 노력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효과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빚을 내 부동산을 살 수 있는 사람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루그먼(P. Krugman)은 감세로 낙수효과를 거두었다는 어떠한 실증연구도 없다고 한 바 있다.
지속가능한 재정건전성 추구가 해법
결론적으로, 한국의 재정문제는 국채를 확대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으며, 이를 통해 해결하려고 해서도 안된다. 재정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너무 적은 세입, 즉 재정구조에 있다. 최소한 비슷한 경제규모의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의 재정규모를 만들어 정부가 경제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럼에도 오히려 작은 재정규모를 더 작게 해 결과적으로 복지를 증대하겠다는 발상은 억지일 뿐이다. 재정규모 확대 계획 속에서 일시적으로 국채를 발행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당장의 위기를 넘기기 위한 땜질식 국채발행은 매우 위험하다. 자칫 현정권 내내 국채발행이 일상화 될 수도 있다.
증세 없이 재정지출을 늘려간 무책임한 재정운용의 문제점은 일본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반대의 사례는 스웨덴 같은 나라일 것이다. 스웨덴은 재정위기가 닥쳐오자 국민적 합의 속에서 증세를 통한 재정규모 확대를 이뤄내 복지국가의 초석을 쌓았다.
‘재정건전성의 역설’이라는 말이 있다.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정권일수록, 재원대책 없이 경기부양 효과만 강조하고, 단기적으로 이를 감당하지 못해 국채를 발행하여 오히려 재정건정성을 해치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과정이 일상화되면 재 정구조는 분명 망가진다. 중장기적인 고려가 없는 단기해법은 병을 깊게 만들 뿐이다.
증세 없는 복지와 경기부양을 계속 고집한다면, 이것이 ‘한국병’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단기적인 시야에 갇힌 정치인과 관료는 이미 그런 병에 걸려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국민이라도 길게 보는 눈을 가져 우리의 미래를 지키고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2013.4.1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