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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국정원의 민주주의 파괴, 어떻게 심판할까

이호중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정원의 정치개입 사건에 대하여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국가정보원법상 정치관여죄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이 사건의 축소·은폐 수사를 지시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게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여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일단 수사를 마무리한 모양새다. 다만 인터넷 게시글 달기 외에 트위터상의 정치개입에 대한 수사는 계속될 전망이다. 국정원 직원의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트위터 계정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정치개입활동을 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어 이에 관한 검찰의 보강수사는 불가피하다.

 

이 사건의 본질은 분명 국정원의 '정치개입'이다. 지난 연말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국정원 직원의 댓글달기가 폭로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이미 '젊은층 우군화 전략' 등 원세훈 전 국정원의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이라는 것을 통해 국정원 조직 차원에서 치밀하고 광범위하게 정치개입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진 바 있다.

 

노골적이고 조직적인 '정치개입'

 

국가정보원법은 국정원장 및 직원의 정치개입을 금지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국정원법의 규정은 이러하다. "그 직위를 이용하여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지지 또는 반대의견을 유포하거나 그러한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하여 찬양하거나 비방하는 내용의 의견 또는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 이번 사건은 이 규정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전형적인 정치개입 범죄에 해당한다. 대통령 선거기간 중에 조직적으로 행해졌기 때문에 여기에 선거법 위반 혐의가 추가된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국정원의 정치개입은 비단 대통령선거 기간에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이미 '박원순 제압 문건' 등에서 드러난 것처럼, 인터넷상에서 국정원 직원들의 노골적인 정치개입은 지난 수년간 훨씬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른바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이라는 문건은 2010년의 것이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심리정보단을 2011년 11월에 심리정보국으로 확대·개편하였다.

 

2012년 12월 국정원 직원의 댓글달기 사건이 드러났을 때 국정원은 "대북심리전의 일환으로서 정상적인 업무수행"이라는 공식입장을 내놓았다. 야당 정치인이나 정부에 비판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이른바 '종북'으로 몰아세우면서 비방하는 것을 두고 대북심리전 운운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국민을 양분하여 진보진영과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제압하려는 국정원의 행태는 바로 국정원법이 금지하는 정치관여 범죄인데, 이것을 정상적인 업무라고 강변하는 태도가 국정원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중대한 권력형범죄, 전 국정원장 기소로 그칠 문제인가

 

과거 국정원의 정치개입이 주로 정치적 반대진영의 유력정치인을 사찰하고 조작사건을 만들어내 올가미를 씌우는 식의 행태를 보였던 반면에, 이번 사건은 아예 심리정보국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국정원이 정치적 여론몰이의 선봉에 나선 것이라는 점에 특징이 있다. 그야말로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중대한 권력형범죄다. 심리정보국은 그 존재 자체가 국정원법이 금지하는 범죄행위를 하기 위하여 조직된 일종의 범죄단체이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그 수괴일 테다.

 

이렇게 보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기소로 이 사건이 마무리되었다고 볼 수 없다. 국정원의 정치개입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파괴한 중대한 권력형범죄이기 때문에, 그것은 반드시 '청산'되어야 한다. 청산은 이제 시작이다. 두가지가 필요하다.

 

철저한 국정조사와 '비밀권력' 통제 강화 있어야

 

첫째, 무엇보다 국정원의 정치개입의 전모를 분명하게 밝히는 일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의 댓글달기뿐 아니라 그 이전부터 국정원이 저지른 여론공작의 실체를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 국민은 국정원이 심리정보국이라는 조직을 통해서 도대체 어떻게 여론조작을 일삼아왔는지 알 권리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정원의 정치개입공작 전반에 관한 국정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뼈를 깎는 심정으로 국정원의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국정원의 정치개입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명백한 범죄행위인 국정원의 정치개입이 반복되는 것은 국정원의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한편으로 국정원의 업무에 관한 민주적 통제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수사권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국외정보와 국내보안정보의 수집권한을 갖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정보기관이 수사권한까지 갖는 일은 거의 없다. 비밀첩보기관의 권력남용을 경험한 독일의 경우 정보기관을 나누어 해외정보를 다루는 기관과 국내보안정보를 다루는 기관을 분리해두고 있다. 이에 비하면 국정원의 권한은 지나치게 비대하다. 국정원의 수사권한을 폐지하고 정보수집권한도 분산시켜야 한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국정원에 대한 국회의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국정원이 '감히' 조직적으로 정치개입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국정원의 예산이나 조직, 업무 등에 대하여 국회의 통제를 거의 받지 않기 때문이다.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통제받지 않는 비밀권력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가 여실히 드러났다. 국정원 개혁은 민주주의의 파괴를 청산하기 위한 필수과제이다.

 

2013.6.19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