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폭염과 원자력 그리고 전력난: 한가지 문제의 세가지 측면
이유진 /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기록적인 폭염에 전력대란이 본격화되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연일 폭염 사망자와 온열질환 환자수를 발표하면서 대책 마련에 고심이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력예비율 관리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올여름 전력위기를 초래한 원자력 비리는 전 지식경제부 차관까지 연루된 정황이 나오고 있다. 후꾸시마 원전의 방사능 수증기와 계속된 오염수 누출 소식은 걱정스럽기만 하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아슬아슬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울산 기온이 40도를 넘었다. 여름에 더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이번 이상고온 현상은 유럽, 러시아, 중국, 한국 등 북반구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지구 기상 체계에서 해류순환 펌프 역할을 하는 북극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북극 해빙 면적이 30년 전보다 무려 55%나 줄었다. 지구 평균온도 상승은 석유, 석탄, 가스 같은 화석연료 소비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결국 기후변화는 에너지 문제다.
기후변화는 곧 에너지 문제
5년 전 이명박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표방하며 원전확대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제1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원자력을 두배 가까이 높이고, 전력 중 원전 비중을 30% 수준에서 2030년 59%까지 높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후꾸시마 사고로 원전 안전에 대한 신화가 무너졌다. 지난해 2월 고리1호기 주전원 상실사고 은폐, 11월 영광 5,6호기 품질검증서 위조사건, 올해 5월 원전 3기에 대한 핵심부품 시험성적서 조작까지 각종 비리가 발생하면서 원전에 대한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박근혜정부는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2035년까지 어떤 에너지를 얼마나 사용할지 에너지원별 비중을 결정하는 일이다. 전력부문은 어떤 선택도 쉽지 않다. 기후변화 위기에 석탄화력 발전을 늘릴 수는 없다. 대형 방사능 오염사고를 일으키는 원전은 더이상 선택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전력난은 현실이다. 어떻게든 전기를 생산해야 하는데 기저발전(基底發電, 전기생산의 근간이 되는 발전으로 24시간 가동함)이 무엇이 될지, 석탄 화력발전소인지 원전인지 논쟁이 치열하다.
그런데 정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일까? 사실 폭염, 원자력, 전력난은 한가지 문제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 것이다. 세가지 현상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 활동을 지탱하는 에너지 소비다. 따라서 해법을 찾는 일은 에너지 소비 자체를 깊숙이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전기를 써야 하니 어떤 방식으로든 생산해서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석탄이든 원자력이든 에너지원을 선택하기 전에 우리가 전기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제대로 쓰고 있는지, 왜 전력난이 발생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값싼' 전기가 원전 집착 부른다
우리는 세계에서 10번째로 전기를 많이 사용하고, 원자력 소비는 미국, 프랑스, 러시아에 이어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전력의 30%가량을 원전으로 생산하고, 23개의 원전이 있으며 2027년까지 11기의 원전을 추가로 지을 계획이다. 전기요금이 유류에 비해 싸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전력화(電力化)가 진행되고 있다. 1인당 전력소비량은 우리보다 GDP가 높은 일본, 프랑스, 독일, 이딸리아, 영국보다 많다.
그중에서도 산업계가 전체 전력의 55%를 소비하고, 산업계 전기요금은 원가 이하로 제공된다. 산업계가 사용하는 전력의 절반은 유류나 가스로 대체 가능한 가열과 건조 공정에 쓰인다. 고급 에너지인 전기를 열원으로 사용하면서 소비량이 급증하고, 급증하는 전력량을 감당하기 위해 원자력, 석탄, 가스, 태양, 풍력, 조력 등 모든 에너지원을 총동원해 전력을 생산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사회는 매우 빠른 속도로 탈석유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것은 유류가 비정상적으로 전기로 대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기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원전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결국 전력화를 막고 에너지 수요를 관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따라서 "폭염에 전기가 부족하다니!"가 아니라 "전기를 이렇게 엉망으로 쓰고 있다니!"라는 문제 인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산업계가 열원으로 사용하는 전기를 유류나 가스로 전환하면 전력난도 해결하고 에너지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미 좁은 국토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발전소를 지을 곳도 송전탑을 지을 곳도 마땅치 않다. 전기의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는 생산의 한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에너지 저소비사회를 향한 급선회 시급
우리는 여전히 발전소를 더 짓고, 전기를 많이 생산하는 것이 경제에 이롭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와 피크오일, 후꾸시마 이후 세계는 에너지를 적게 쓰고, 재생가능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에서 일자리와 경제를 일구고 있다. 이미 영국과 이딸리아에서는 2005년을 기점으로 1인당 전력소비량이 줄어들고 있다. 그 결과 에너지 고효율 산업, 단열성능이 높은 주택과 빌딩, 에너지절약 전문기업, 재생가능 에너지 산업이 부상하고 있다. 에너지 저소비사회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시민도 성장을 위해 '값싼'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낡은 생각을 버려야 한다. 산업계, 농업, 교육에 저렴한 전기요금을 유지하는 일이 당장 부담을 덜 수는 있지만 우리나라 전체의 에너지 비효율을 심화시키고, 결국 폭발적인 발전소 증가와 환경사회적 갈등 심화, 만성적인 전력난으로 나타나고 있다.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전기라는 자원에 대해 형평성과 정의를 고려한 제값을 지불하자는 것이다. 왜곡된 에너지 가격과 세금체계를 바로 잡는 일이 시급하다. 우리가 문제를 회피하면 이 모든 위기는 더 광폭한 형태로 우리 세대는 물론 다음 세대를 향해 폭주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에너지체제를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2013.8.1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