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너무도 간단한 정의: 밀양 이야기
정홍수 / 문학평론가
오늘 아침 신문을 보고 '전원(電源)개발촉진법'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다. 유신 말기인 1978년에 만들어진 이 법은 이름에서부터 개발독재시대의 냄새를 짙게 풍기는데, 산자부(당시 상공부) 장관에게 전력개발 사업에 관해 거의 전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 법은 한전이 주민들의 토지를 강제로 수용할 수 있는 근거도 제공한다. 산자부 장관의 승인만 받으면 도로법·하천법·수도법·농지법 등 19개 법령에서 다루는 인허가사항을 모두 거친 것으로 본다고 하니, 전력개발 사업이 주민생활에 끼치는 영향과 문제점을 여러 측면에서 검토할 수 있는 길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는 셈이다.
한전은 내부에 '입지선정자문위원회'를 둔다지만, 위원회의 결정에는 법적 강제력이 없다. 심지어 위원회 설치를 생략할 수도 있다. 보상 또한 법적 근거 없이 한전의 내부규정에 따라 임의적으로 행해지면서 찬반 주민의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수단이나 공사 강행의 비열한 '미끼'가 되어왔다. 한마디로 국가 주요 에너지 사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한전의 전력개발 사업에 거의 무소불위의 법적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송전탑 강행 뒤엔 '유신 악법' 전원개발촉진법 있다」, 한겨레 2013.10.15 참조)
공론화되지 못한 그들만의 고통
누구나 알 수 있듯, 이 법은 사업이 시행되는 지역 주민의 권리와 의사를 '법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아마도 이 법의 입안자들과 이 법의 비호 아래 송전탑 공사를 비롯해 전력개발 사업을 해당 주민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밀어붙여온 정책 집행자들의 머릿속에는 언제든 쉽게 떠올렸다 지워버릴 수 있는 '추상적이고 거창한 국민'만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더 놀랐던 것은 이러한 권위주의 시대의 법이 지난 35년 동안 국회든 어디든 공론의 장으로 나온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문제를 제기한 이들이 있었겠지만 묻혀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나 자신, 이번 밀양 노인분들의 안타까운 항변과 눈물겨운 싸움이 보도되기 전에 '송전탑'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 간혹 찾은 시골에서 송전탑을 본 기억은 있다. 그러나 송전탑 건설로 그 지역 주민들이 입었을 피해와 고통에 생각이 미친 적은 없었다. 거창하게 이야기할 것도 없겠다. 정작 전기를 펑펑 쓰고 사는 사람은 수도권 대도시 주민인 나인데, 왜 그 전력의 공급을 이유로 살던 땅을 빼앗기고 암의 공포에 시달리며 이웃 간 원수가 되는 날벼락 같은 재난을 뒤집어쓰는 사람들은 밀양이며 횡성의 그 시골 주민들인가. 이 간단한 정의(正義)의 문제가 왜 내 머릿속에서는 제기되지 않았던 것일까. 문학평론을 한답시고 틈만 나면 가져다 쓴 말이 타자의 고통이니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과 연민의 윤리니 하는 근사한 구절들이었으면서 말이다.
추악한 이분법의 허상 "누가 내부이고 누가 외부인가?"
15년 전 송전탑 건설로 고통을 겪은 횡성 유동리 주민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한겨레21』 기사(2013년 10월 21일, 제982호)의 제목은 '그때 우리는 국민이 아니었다'이다. 며칠 전 트위터를 보다가 경남지사 명의의 성명서가 신문에 실린 걸 알게 되었다. 링크된 성명서를 읽어보니 역시 '외부세력' 운운이다. 경남지사는(트윗을 올린 분의 말마따나 왜 경남지사는 자신의 이름을 거기 밝히지 않았을까?) 뜬금없이 평택 대추리, 제주 강정마을, 한진중공업 사태를 열거한 뒤, 굵은 글씨체로 비장하게 호소한다. "밀양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밀양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더이상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추악한 이분법을 잠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정말 이 문제에서 누가 내부이고 누가 외부인가? 작년 1월 16일 새벽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 주민인 일흔네살 이치우 씨의 논에 50여명의 용역 직원과 한전 직원들이 굴착기를 앞세우고 들이닥쳤다. 이치우 씨와 주민들은 맨몸으로 맞섰다. 분을 이기지 못한 이치우 씨는 그날 저녁 휘발유를 몸에 붓고 불을 붙였다.
이치우 씨의 죽음은 밀양 송전탑 문제를 세상에 알리면서 현재의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가 꾸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치우 씨의 동생 이상우 씨는 말한다. "외부세력은 무신. 딴 데 사람들 아니면 우리가 막아낼 수 있나. 4공구(금곡 헬기장) 근처에 우리 마을이랑 골안마을 사람들이랑 해봤자 나올 수 있는 사람들이 30명도 안된다. 노인들 30명이서 경찰들이랑 일하는 사람들 우예 막노. 도시에 전기가 필요하면 도시에다가 철탑을 세워가 전기를 쓰든지 해야지, 와 시골에 철탑을 세울라카노, 세울라카긴. 못난 놈의 시골 사람들 잡아 죽일라카는 기지 뭐."(「도시에 필요한 전기 쓸라고, 와 시골에 철탑 세울라카노」, 한겨레 2013.10.13)
내 고향 부산과 밀양은 가깝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교련복 차림으로 친구들과 밀양 송림에 놀러 갔던 사진은 지금도 가끔 꺼내 본다. 나는 그 '외부세력'이 아닌 게 부끄럽다. 그 세대 어른들이 대개 그렇듯 노모는 거의 전등을 켜지 않는다. 저녁에 현관문을 열면 집 안이 깜깜할 때가 많다. 나는 가끔 그런 노모에게 짜증을 낸다. 그러고 보니 전기 아깝다, 전기 닳는다는 말을 참 많이도 들으며 자란 것 같다.
2013.10.16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