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국정원 불법 선거개입 의혹, 특검으로 해결해야
이유정 /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회장
영화에 나오는 국가정보기관의 직원들은 세계 각국과의 정보망을 통해 북한의 불법무기 거래를 알아내고 북한의 신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총을 쏘고 몸을 날리며 사투를 벌이기도 한다. 체력과 지력을 겸비하고 정보기술은 물론 무기 사용에도 능숙한 사람들, 아무도 모르게 비밀스런 업무를 수행하면서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는 범죄에 대처하는 요원들의 모습은 대단히 근사하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물론 비슷한 점도 있다. 한국의 국가정보원 직원들도 컴퓨터와 트위터라는 무기에는 능숙하다. 그리고 오피스텔 같은 곳을 빌려서 비밀스럽게 업무를 수행한다. 다른 점은 그 업무가 국가의 안보와는 무관하게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상대방 후보를 비난하는 행위라는 것이고, 총싸움이 아니라 인터넷 댓글과 트위터 맨션을 통해 상대방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들과 사투를 벌인다는 점이다.
낯 뜨거운 변명은 이제 그만
국가정보원은 그러한 행위가 ‘대북심리전’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모양이지만, “북한 나팔수 문재인, 종북 넘어 간첩” “대선후보 기호 1번 대한민국, 기호 2번 북조선인민공화국” “대통령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다. 찰스나 재인이가 할 바에 차라리 개나 소를 시키세요” 같은 유치찬란한 글에 ‘대북심리전’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갖다 붙인다는 것은 낯 뜨거운 변명이다.
더욱 한심한 일은 국정원 직원들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 정도로 중대한 선거범죄를 저질렀는데도 검찰 수뇌부가 나서서 수사를 축소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지난주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팀이 국정원 직원들이 트위터를 통해 선거에 개입한 사실을 밝혀내고 이들을 체포하자, 조영관 서울중앙지검장은 수사팀장인 윤석열 검사를 보직에서 해임했다. 명분은 ‘중요사건에서의 지시 불이행과 보고절차 누락’이라는 것이지만, 많은 국민들은 국정원 수사개입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기 위함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국정원이 인터넷 싸이트에 댓글을 단 행위나 트위터에 상대방 후보를 비방한 행위는 결코 가볍지 않다. 국가정보원의 업무는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작성 및 배포’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선거에서 여론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인터넷이나 트위터에 글을 쓴 행위는 국정원의 업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업무범위를 벗어난 위법한 행위다.
정치적 사안 아니라 실정법 위반일 뿐
또한 공직선거법은 “공무원은 그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공무원이 선거에 개입하거나 특정 정당 및 후보를 지지하는 행위로 처벌 받은 사례는 무수히 많다.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는 발언이 위 규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소추 되었던 사건과 비교해보면, 이번 국정원의 선거개입 행위가 얼마나 중대하고 심각한 범죄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범죄가 밝혀졌다는 보고를 받고도 지검장이 “야당 도와줄 일 있냐. 정 체포하려면 내가 사표내거든 하라”는 발언을 했다는 것은 검찰 수뇌부가 국정원 수사개입 사건을 범죄가 아닌 정치적인 문제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누구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를 고려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결정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범죄혐의가 있으면 수사를 하고 혐의가 밝혀지면 기소를 하는 기관이다. 그 결과가 정치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고려대상이 될 수 없다. ‘여당에게 도움이 되는 수사’는 진행하고 ‘야당에게 도움이 되는 수사’는 하지 않는 기관이라면 더이상 국가기관이라고 할 수 없다.
이렇게 권력의 눈치를 보며 수사결과가 대통령 또는 여당에 무슨 나쁜 영향이라도 미칠까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이 검찰 수뇌부에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는 더이상 검찰이 국정원 불법 선거개입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특별검사를 임명해서 공정하고 정치적인 외압에 휘둘리지 않는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내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공정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다음 선거에서도 이러한 위법행위는 되풀이될 것이다.
특검으로 명확한 실체 조속히 규명해야
10월 28일, 국무총리가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에 대해 실체를 밝히고 책임을 묻겠다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의 도움도 받지 않았고, 댓글(따위) 때문에 당선된 것도 아니며, 모두 지난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니 아무 책임이 없다는 입장인 듯하다.
그렇다면 거리낄 것이 뭐가 있나? 아무 관련도 없고 지난 정부의 책임이라면 더욱 철저히 밝힐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여당은 언제까지 대통령 눈치만 보고 있을 것인가? 더 늦기 전에 특검법을 제정해서 진상을 규명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범죄행위를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국정원 불법 선거개입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이번 정부의 남은 임기도 여당의 앞길도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2013.10.3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