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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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헌재 정당해산 결정의 문제점과 교훈

 

김종철

김종철

헌재가 통합진보당을 전격적으로 해산하고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을 박탈함으로써 퇴행의 위기에 선 한국 민주주의에 또다른 일격을 가했다. 전후 모범적 민주화의 사례로 칭송받던 한국 민주주의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현대 민주주의론이 축적해온 정당해산에 관한 국제규범, 예컨대 베니스위원회의 정당해산지침이나 유럽인권재판소의 정당해산에 관한 법원칙은 비교적 명확하다. 이번 사건에서 헌재도 이러한 법원칙을 보편적인 것으로 수용하고 있다. 첫째로 정당해산은 민주체제 수호를 위한 최후수단이어야 하고 다른 대안이 없을 때 행사되어야 할 보충적 극약처방이므로 실질적 해악이 구체적 위험으로 확인된 경우라야 한다. 둘째로 폭력을 사용하여 민주적 기본질서를 전복하려는 목적이나 활동이 확인된 경우라야 한다. 셋째로 당원 일부의 행위가 아니라 당 전체의 조직적이고, 계획적이며, 적극적인 행위를 해산여부 판단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로 정당해산은 ‘긴절한 사회적 필요성’(pressing social needs)에 대응하기 위해서만 행사되어야지 참새를 잡기 위해 대포를 쏘는 식으로 과잉대응해서는 안된다.

 

법치주의의 보편적 원칙을 스스로 폐기한 헌법재판소

 

헌재는 통합진보당을 북한추종세력이 중심이 된 자주파의 주도하에 북한식 사회주의체제를 위해 폭력혁명을 추구할 목적으로 활동한 정당으로 단정하였다. 이같은 엄청난 결론에 이르기 위해서는 스스로도 밝혔듯이 공정한 절차에 따라 엄정하게 채택된 증거에 기초해서 법원칙을 엄격히 적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견은 스스로가 설정한 법원칙마저 자의적으로 적용하였다. 강령이나 추진했던 정책과 같이 당의 행위로 드러나 있는 행위를 중심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법원칙의 핵심요소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기도 하였다. 그 범위가 특정되지도 않는 소위 주도세력의 드러나 있지 않은 ‘숨은’ 의도를 과거의 전력을 중심으로 짜깁기한 다음 판단의 대상으로 삼는 방법으로는 중세 마녀사냥식 ‘관심법(觀心法)’ 혹은 ‘독심술(讀心術)’ 결정이라는 비아냥을 면할 수 없다.

 

실체도 불분명한 주도세력의 어떤 구체적 행위들이 어떤 사회적 위해를 초래하였는지도 분명하지 않은데 정당의 공식적인 조직을 통한 계획적이고 적극적인 반민주적 활동을 확인하는 것도 기상천외하다. 통일전선전술이라는 틀로 모든 인간의 행위를 오로지 북한 관련성 여부만으로 판단함으로써 헌법이나 자율적 개인의 양심이 아니라 북한에 가치판단의 전권을 내주어버렸다. 소속 의원들 개개인의 구체적인 활동에 대한 충분한 검증 없이 독단적 결론인 정당의 위헌성만을 이유로 의원직을 박탈하였다. 심지어는 이런 중요한 기본권 박탈을 법률적 근거도 없이 정당해산 제도로부터 직접 정당화된다고 하였다. 법치주의에 근거하여 도입된 헌법재판이 법치주의의 근간인 법률에 의한 국가권력의 발동이라는 원칙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헌재의 다수의견은 정당해산에 관한 보편적 원칙을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특수성이라는 현실적 고려를 들어 사실상 폐기하였다. 국가보안법이나 선거법, 정당법 등 정치적 자유를 과도하게 규제하는 법체계만으로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보위하는 데 불충분하다고 보았다. 다원적 정치질서가 요구하는 주권자 국민의 자율적 정치역량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관용을 거부한 것이다. 이런 체제야말로 한국적 특수성을 낳은 북한체제의 정치통제질서와 판박이가 된다. 극좌망동주의를 극우극단주의의 처방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헌재가 강변한 이념대결이 종식되기는커녕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매카시즘적 사상검증이 일상화되고 자기검열에 의해 민주적 정책결정의 선택지는 극단적으로 좁혀질 뿐이다.

 

민주주의 퇴행에 맞설 과제

 

민주주의의 퇴행을 상징하는 이번 헌재결정은 몇가지 교훈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다. 첫째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으로 착각했던 안이한 현실인식을 점검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정치의 자유를 과도하게 억압하는 선거법 등 정치관계법을 국민의 대표선택권과 여론형성권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혁할 필요가 있다. 한마다로 제2의 민주화운동을 통해 더 강한 민주주의를 만들지 않는다면 사법권에까지 노골화된 민주주의의 퇴행을 되돌릴 수 없다.

 

둘째로 이번 사건을 통해 헌재나 대법원과 같이 정치권력과 독립된 국가기관의 구성을 더욱 민주적으로 만들기 위한 제도개선이 선거 못지않게 중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헌재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하나 이는 단견이다. 헌재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기준으로 정치권력을 심판할 소중한 공간이므로 그 존재 자체가 주권자인 국민에게 유리한 것이다. 한번의 재판만으로 일희일비하기보다는 모든 재판이 헌법정신에 맞게 되도록 개선책을 고민하는 것이 바른 대응책이다. 우선 재판관의 자격을 소송실무 외의 영역에서 법적 전문성을 배양한 사람들에게도 확대하는 한편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과 확고한 신념을 가졌는지를 선발의 준거로 삼아야 한다. 외관상 분립적으로 보이는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의 헌재구성권에 대한 국민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권력통제의 역할을 하는 독립기관의 구성에는 국민의 참여를 강화하고 단순다수가 아닌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도록 해야 한다. 국회의 선출 몫에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요건으로 해서 소수파도 수긍할 수 있는 사람을 뽑도록 해야 한다. 대법원장 지명 몫에는 판사회의 혹은 대법관회의에서 인준권을 가지거나 추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셋째로 시민정치교육의 중요성이다. 이처럼 문제투성이인 결정에 대해 국민이 오로지 정치적 결과에만 관심을 두고 해산결정을 지지하는 여론이 많은 것처럼 보도되고 있는 것은 우려스럽다. 경제에만 매몰된 사고체계는 국민을 탈정치화시켜 민주주의의 기초를 흔든다.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을 통해 현대사회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에 우리의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김종철 /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4.12.2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