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세월호’와 문학의 자리
4월 10일, 세교연구소 주관으로 ‘세월호 시대의 문학’이란 이름의 공개 심포지엄(발표 함성호 함돈균 심보선 남상욱)이 열렸다. 심포지엄의 기획에 참여하고 사회까지 맡게 된 처지라 청중이 적으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120석 객석이 부족해 수십석의 보조석을 마련해야 했다. 오후 2시에 시작된 심포지엄은 6시를 넘겨 끝났다. 마지막 종합토론 시간에 객석에서 한 시인이 심포지엄의 제목을 두고 매서운 질문을 던졌다. ‘세월호 시대’라는 호명의 자의성도 그렇지만, 거기 ‘문학’을 나란히 세운 근거가 무언지 따져 묻는 질문이었다. 물론 단순한 힐난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세월호참사가 국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절망적인 확인을 넘어, 그 국가가 부추겨온 물신과 증오의 세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쪽으로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기 부끄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사후 수습 과정에서 정부가 어떤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도 지켜냈어야 할 도덕의 최저선은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위로와 보호여야 했다. 적어도 보상을 둘러싼 이야기가 유가족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은 철저하게 차단했어야 했다.
도덕의 최저선마저 외면한 잔인한 국가
발설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는 것이고, 그건 문명사회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근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드러났듯 정부와 여당은 바로 그 말들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는 지점으로 상황을 몰아갔고, 문제의 회피와 미봉이 자신들의 목표임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경기침체와 세월호 ‘피로감’을 연결짓는 예의 거짓 논리를 계속 지피는 것으로도 모자라다고 생각했던 걸까. 세월호 인양 요구와 특별법 정부 시행령에 대한 문제제기가 터져나오는 시점에서 정부는 담당 관료의 기자회견 형식을 통해 보상금 액수를 시시콜콜 밝히며 다시 한번 유족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아이들을 꽉 채운 채 침몰하는 배의 영상을 한달 넘게 바라보며 스스로를 조금이라도 가해자의 자리에 놓아보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분향소를 메우고, 팽목항을 찾고, 유가족의 단식농성과 도보행진에 함께한 이들의 마음은 무엇보다 그 죄스러움이었을 테다. 혹 그런 자리에 시간을 내지 못한 이들이라 하더라도 마음은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정부는 다시 한번 그런 이들을 이중의 가해의 자리로 내몰고 있다. 우리는 죄의식을 비롯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우리 자신의 공감이나 연민의 감정이 그다지 견고하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가족이라는 좁은 울타리, 자신의 이해와 직접 관련되지 않은 테두리 밖에서 공감은 능력이기보다 무능력으로 잔인한 진실을 드러낼 때가 많다. 경쟁과 생존에 대한 강박이 날로 증대하는 세상 또한 그런 감정의 동력을 쉽게 앗아간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라도 한 사회는 공감과 연민에 바탕한 가냘픈 선의와 예의를 존중하고 증대시킬 수 있도록 서로를 격려해야 한다. ‘세월호 1년’은 정확히 그 반대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움직여온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정말 끔찍한 사태다. 우리는 지금 ‘잔인한 국가’의 세월을 살고 있다.
다시,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나?
‘세월호 시대의 문학’이란 명명에 대한 한 시인의 문제제기는 아마도 이런 끔찍한 시절을 살아야 하는 자괴와 환멸의 실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또한 문학하는 사람이 갖는 무력감의 역설적 토로였는지도 모른다. 그이는 반문했다. 누가 ‘세월호 시대의 바느질’을 이야기하느냐고. 그러니까 그이의 말은 ‘무언가를 자처하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믿는 문학의 자리’에서 이제 그만 내려오라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동의한다. 그날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에 참여했던 작가 김순천씨가(그 결과물이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인 『금요일에 돌아오렴』이다) 객석에서 들려준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작가는 부모님들의 고통을 숨죽여 지켜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에 대해 들려주었다. 침묵은 기록할 수 없는 것이었다. 터져나온 것은 울부짖음이었고, 그 또한 기록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처음에 차라리 짐승의 말, 괴물의 말처럼 들렸다고 했다(이날 심보선 시인은 ‘국가폭력과 말’이란 발표에서 그이들의 말이 울부짖음의 상태로부터 국가가 갖고 있지 못한 진실과 이성의 말로 거듭나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이들의 울부짖음은 근본적으로 사랑의 말이었고, 그 말들이 타인에 대한 사랑, 역사 속 또다른 고통들로 확대되는 것을 보았다고 김순천 작가는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세월호 시대 문학의 자리’는 여기에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그이들의 말을 듣고 받아 적어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그러나 그날 ‘타인의 고통과 만나는 문학의 자리’에 대해 발표한 함성호 시인이나 토론자로 나온 김행숙 시인이 힘들게 이야기한 것처럼 ‘고통’과의 거리를 앓는 일 또한 문학의 몫일 테다. 문학의 능력을 과장할 이유야 전혀 없는 것이지만, ‘증언할 수 없는 것을 증언해야 한다는 아포리아’는 언제든 문학의 시련이자 도전이었다. 그 시련 앞에서 더 많은 무능의 고백과 실패가 있어도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작년, 한 작가는 장편 원고를 마무리하는 중에 세월호참사 소식을 듣고 작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몇달 뒤 나온 책에는 아주 짧은 ‘작가의 말’이 실려 있었다. 이미 읽은 이들도 많겠지만, 여기 그 말을 다시 옮겨본다.
“현실의 쓰나미는 소설이 세상을 향해 세워둔 둑을 너무도 쉽게 넘어들어왔다. 아니, 그 둑이 그렇게 낮고 허술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만들었다.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 함께 느끼고 있다고,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써서 보여줄 뿐.”(성석제 장편소설 『투명인간』 ‘작가의 말’ 중)
정홍수 / 문학평론가
2015.4.1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