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빠리의 난민: 시리아에서 빠리까지
11월 13일 밤, ‘장밋빛 인생’의 도시가 핏빛으로 변했다. 빠리지앵(parisien, 빠리 사람)의 일상적인 기쁨의 순간들이 폭력으로 짓밟혔다. 이 테러 만행은 IS(Islamic State, 이슬람국가) 소행으로 드러나고 있다. 시리아 내 IS 대원의 테러로 많은 시리아 난민이 발생했다면 이제 시리아의 종교적·정치적 갈등으로부터 프랑스의 평범한 사람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 시리아 내부에서 시리아인을 괴롭히던 동일한 세력이 프랑스인의 일상적 삶의 행복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빠리지앵은 폭력을 피해서 도망 온 시리아 난민과 빠리 한복판에서 조우하게 되었고 시리아 내전은 빠리에 준전시상황을 만들었다. 그런데 테러 용의자중 일부가 난민 출신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폭력세력과 난민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의혹이 증폭되면서 난민에 대한 시각을 교란하는 이야기가 난무하고 있다. 9·11사태 직후 『르몽드』 사설에서 사용된 “우리 모두가 미국 사람이다”라는 표현은 이번 빠리 테러 이후 “우리 모두는 빠리지앵”으로 조응되었다. 나아가 사람들은 자유·평등·박애의 공화주의 정신을 대표하는 빠리가 자유로울 수 없다면 그 어떤 곳에서도 자유가 있을 수 없다는 말로 프랑스의 슬픔에 동참하기도 한다.
테러 이후 프랑스-유럽 난민정책의 향방은?
하지만 다시금 평범한 빠리지앵이 삶의 기쁨을 되찾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인다. 그리고 그 고민은 “우리 모두는 빠리지앵”이라는, 전세계인이 보내주는 응원으로 해결될 수 없다. 진정한 해결은 강대국의 이권 다툼의 결과로 빚어진 시리아 내전의 심각성에 이제라도 책임의식을 갖고 “우리 모두는 시리아인”이라는 진심어린 연대감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 보인다. 하지만 빠리 테러 이후의 정국은 시리아 난민들에게 더욱 어려운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난민이 테러리스트로 둔갑할 수도 있다는 교란적 이야기가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 프랑스 난민정책의 기조가 한층 강경하게 전환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유럽은, 최악의 난민 유입 사태를 맞아 ‘열린 문’(open-door)이라고 상징적으로 명명된 정책을 논의했다. 무슬림 난민의 대거 유입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독일 메르켈 총리가 주도하는 인도적 난민 수용의 대의에 뜻을 같이했다. 프랑스가 수용하기로 결정한 난민의 수가 2만 4천명밖에 되지 않아 수십만명에 이르는 전체 난민에 비해 지나치게 적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샤를리 엡도』 신문사 테러가 일어난 지 불과 몇달 후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또한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말부터 프랑스에 망명 요청을 한 사람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기 시작했으며 이라크전쟁의 여파로 2003년 59,770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2005년도에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난민이 프랑스에 망명 요청을 하기도 했다. 2006년에는 망명 신청자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어 3만 5천명이었는데 이같은 급격한 감소는 무엇보다 유럽국경관리청(FRONTEX)의 설립으로 인해 유럽연합의 국경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빠리는 이번 테러 이후 급기야 국경을 폐쇄하는 조치를 내렸다. 결국 지난여름 2년에 걸쳐 2만 4천명의 난민을 수용하겠다는 올랑드 대통령의 결정은 이행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난민의 대거 유입으로 헝가리와 슬로베니아는 국경에 철조망을 치기 시작했다. 유럽연합의 대전제가 네가지 요소(상품, 사람, 자본,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이라는 점에서 국경폐쇄, 곧 국가 간 통행에 제한을 두지 않기로 한 솅겐(Schengen)조약의 균열은 유럽연합의 향방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이번 테러로 그간 유럽의 난민사태에 대해 철조망이 답이라고 얘기했던 국가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는 국경폐쇄와 국가안보 강화를 주장하는 극우정당의 논리에 부합한다. 프랑스의 극우민족주의 정당인 국민전선은 반(反)이민정서를 자양분으로 성장해온 만큼 이번 테러를 통해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킬 전망이다.
근본적 해결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만 벽 밖에서 절망하는 사람들의 진입을 막는 것이 답이 될 수 있을까? 공화주의 삼색기의 정신은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인 것이다. 시리아 알 아사드 정권의 자국민 대량학살에도 불구하고 2011년과 2012년 시리아의 평화적 정권이양을 촉구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이 무산된 것은 유엔의 한계인 동시에 강대국이 자국민의 편협한 이익을 우선시한 결과다. 2011년 리비아 카다피 정권이 유엔의 보호책임 규범(R2P)으로 붕괴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치·경제·종교적으로 복잡한 시리아 사태의 원인을 강대국의 이권 다툼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 빠리를 위시한 국제사회가 절망한 난민의 진입을 막는 정책보다는 시리아 사태에 대한 해결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이제 우리는 모두 빠리지앵인 것처럼 우리는 모두 시리아 사람이기 때문이다.
박선희 / 서울대 국제대학원 EU센터 연구위원
2015.11.1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