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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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2016년 예산,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정창수

정창수

재정의 역할을 포기한 2016예산

 

국회는 박근혜정부의 2016년 예산 386조 4천억원을 통과시켰다. 지난 9월 정부는 본예산(375.4조원)보다 11.3조원(3.0%) 증가한 386.7조원 규모의 ‘2016년도 예산안’을 제출했고, 국회는 이 중 3천억원을 순삭감하여 의결한 것이다.

 

예산증가율 3.0%는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대응예산으로 감액추경한 것을 제외하고는 지난 수십년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더 복잡하다. 올해 추경(384.7조원) 기준으로는 2조원(0.5%) 증가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동안 내년도 예산은 “재정건전성이 크게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재정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편성하겠다고 누누이 밝혀왔다. 그런데 예산증가율 3%는 정부가 전망하고 있는 경상성장률 4.2%(실질성장률 3.3%)보다도 낮은 긴축예산이다. 본예산 대비 11.3조원, 추경 대비 2조원밖에 증가하지 않은 내년도 예산안으로는 ‘법적·의무지출 증가 소요’도 충당하기 벅찰 뿐 아니라 정부가 목표로 하는 ‘경제활력 제고’는 실현이 불가능할 것이다.

 

역대 최저 수준의 예산증가율,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재정건전성은 박근혜정부 재정운용의 총체적 실패를 그대로 보여준다. 급격한 저성장 기조로 전화되고 있는 우리 경제현실을 고려할 때, 민간투자의 부족분을 재정이 메워주고, 내수확대, 일자리 창출 등 경기활성화를 위해 재정이 더 많은 역할을 해주어야 함에도, ‘나라 곳간이 텅 비다’보니 예산을 확장적으로 편성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재정의 주요한 기능 중 하나는 경제가 불황일 때는 재정지출 확대로, 호황일 때는 재정지출 축소를 통해 경제를 안정화시키는 것인데, 내년도 예산안은 재정의 기능을 상실한 ‘재정역할 포기 예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정파탄에 대한 대책이 없다

 

문제는 사업을 줄이지 못하는데다가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빚을 늘리고 있다는 데에 있다. 내년도에 50조의 부채가 증가하여 이자가 나가는 채무만 645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흔히들 국가채무는 미래세대에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 정부는 공기업 이자를 포함하여 50조원이 넘는 공공이자를 지출하고 있다. 이는 국방예산 39조원보다도 많은 규모이다. 이미 정부의 빚은 미래가 아닌 현재 세대에 부담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저금리시대가 막을 내리면 그 부담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강도 높은 재정개혁, 재정지출 증가율 조정 등 건전화 노력 강화”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 유사·중복 사업 통폐합, 재정사업 원점 재검토, 보조사업수 총량관리, 국고보조금 관리강화, 재정정보 투명성 제고 등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강도 높은 재정개혁 추진’은 이미 3년 전 135조원의 ‘공약가계부’를 꾸릴 때 거의 제시된 대책들이다. 당시 박근혜정부는 135조원 중 62%인 84조원을 ‘세출절감’ 즉 재정지출개혁’을 통해 조달하겠다고 공언했으나, 그 성과는 오리무중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발표한 <2015 업무보고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 말한 “600여개의 유사·중복 재정사업 통폐합”에 대한 자료를 전수 조사해보았더니 2015년 예산은 21조 1664억원에서 766억 원의 예산이 줄었다. 그러나 이는 사업종료와 단계별 사업에 따른 자연감소에 불과하다. 즉, 유사·중복 사업 통폐합과 상관없는 감소이다. 더구나 거의 절반에 달하는 176개 사업은 오히려 예산이 증가했다.

 

세수 측면에서도 박근혜정부는 지난 추경안 심사시에 종합적 세수확충 방안 마련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올해 세법개정안의 2016년도 세수증대효과는 0.5조원, 장기적으로도 연평균 1조원에 불과하다. 이는 4년 연속 발생한 대규모 세수결손(연평균 7조원)을 방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며, 근본적인 세입확충을 위한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 세법개정안이다.

 

2016년 예산, 복지마저 줄어들었다

 

예산에서는 만성적 부족 현상이라는 말이 있다. 정부 예산이 인건비나 물가인상등 기본적인 비용증가분을 채우지 못할 떄, 기존 예산사업을 줄일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재정이 어렵다면 사업을 줄이는 것은 당연한데 어떤 사업을 줄이는가를 살펴보면 그 정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알 수 있다.

 

박근혜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청년고용 여건을 개선하고, 창의·융합 기반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여 경제 재도약과 민생안전 지원”에 중점을 두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복지예산이 사상 최초로 감소되었다는 점이다. 내년도 보건·복지·노동 분야 예산증가율은 6.2%(2015년 115.7조원→2016년 122.9조원)으로 지난 10년간 평균 증가율 9.4%의 66% 수준에 불과하다. 더구나 공적예산을 제외한 세금으로 하는 복지 예산은 추경예산안에 대하여 2.2%감소한 62조원에 불과하다. 이명박정부에서 복지예산의 비중이 감소한 적은 있지만 액수 자체가 감소한 것은 건국 이후 처음이 아닐까 한다.

 

내년도 복지예산 증가는 대부분 노인인구나 연금 수급자 증가, 물가상승에 따른 법정급여 인상 등 자연증가에 따른 것이다. 올해 대비 증가한 7.2조원 중 약 5.2조원이 자연증가분이다. 여기에 주택예산 증가분(9076억원)까지 합치면 약 6.1조원이 의무지출 증가분이다.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이 OECD 꼴찌인 상황에서 예산이 제자리걸음이라는 것은 복지확충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사회양극화·빈곤·저출산·자살 등 심화되는 사회문제 해결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부는 내년부터 전업주부의 0~2세 영아 어린이집 이용시간을 현재의 12시간에서 6시간으로 제한하는 보육체계 개악을 추진 중에 있다. 이와 관련하여 내년도 보육료 지원 예산이 올해에 비하여 삭감되었다. 올해 시행 중인 ‘여성장애인 교육사업’ 예산은 전액 삭감되었으며, ‘발달장애인지원센터’ ‘노후준비서비스’ ‘장애인서비스연계지원’등 새로운 법 시행에 따라 의무적으로 편성돼야 할 예산이 한푼도 책정되지 않거나, 사업시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시늉만 내고 있다. 특히 2016년도 고등학교 무상교육 지원사업 편성은 0원으로, 2017년까지 100% 고교무상교육을 완성하겠다던 공약은 공수표가 되었다.

 

2016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유지되는 역할이 있을 것이다. 저 말은 한마디로, 필요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와중에도 SOC예산의 지역편중이라든가, 달 탐사 예산 200억원 등 대통령 관심 사업은 대부분 반영되었다.

 

‘건강염려증의 부작용’이라는 말이 있다. 건강을 염려하면서 시간을 보내 결국 건강이 나빠지는 것을 막지 못해 허송세월하다 죽는 것이다. 재정도 마찬가지이다. 재정염려증 때문에 재정파탄을 막을 방법을 생각지 못한 채 지출만 줄이는, 재정 역할을 포기하는 행태로 가다가는 결국 재정파탄이 오고 마는 것이다. 최근 장기재정 전망 논란이 뜨겁다. 복지 등 재정지출을 줄이자는 요지이다.

 

현재의 문제에 대한 개혁없이 현상유지하면서, 어떻게 재정을 줄일 것인가 하는 것보다는, 재정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투자로서의 재정기능을 적극적으로 도모해야 한다. 이는 저출산을 극복하고, 내수를 진작하는 방향이 이념의 문제 아닌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필요한 재정의 패러다임이 될 것이다.

 

 

정창수 /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2015.12.9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