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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 위원장과 집시법: 헌법의 끝과 시작 사이에서

 

오동석

오동석

경찰은 지난 11월 14일의 1차 민중총궐기 집회를 수사한다면서 같은 달 21일 민주노총 등 집회 주최 8개 단체의 사무실 12곳을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했다. 또한 46개 단체의 대표에 대해서는 소환장을 발송하는 등 대대적인 탄압을 가했다. 그뿐 아니라 12월 5일의 2차 집회와 19일의 3차 집회에 대해서 집회금지통고를 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해서는 ‘불법 폭력시위’를 주도한 혐의 등으로 체포·구속했다. 형법상 소요죄를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형법상 소요죄는 ‘다중이 집합해 폭행, 협박 또는 손괴의 행위를 한 자’에게 적용하는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금고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경찰은 소요죄 사례로서 1986년 ‘5·3 인천항쟁’과 이번 집회를 비교했다. 장시간의 시위시간과 경찰관 부상규모 등의 면에서 유사하다는 것이다.

 

헌법에 무지한 경찰

 

그러나 경찰이 결정적으로 놓친 것이 있다. 헌법이다. 국민은 박정희의 1972년 유신헌법과 전두환·노태우의 1979년 신군부쿠데타에 맞서 저항했다. 1980년 광주항쟁은 그것의 참을 수 없는 표출이었다. 국민은 1980년 헌법을 인정할 수 없었고,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통해 헌법 교체를 열망했다. 1987년 4월 13일 이전의 집회·시위는 유신독재와 신군부독재에 대한 저항권 행사였다. 4월 13일 전두환의 호헌 선언 이후 6월의 집회·시위 그리고 7~9월 노동자대투쟁은 새로운 헌법을 요구하는 주권자의 헌법실천이었다. 국회는 10월 12일 헌법개정안을 의결했고, 같은 달 27일 주권자는 국민투표로 현행 헌법을 확정했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불법 폭력 집회·시위가 가장 많았던 해는 1987년이다. 화염병 시위 2173건, 투석 2956건, 철도·도로 점거 120건, 쇠파이프·각목 61건, 시설 피습 443건이 있었다고 한다. 주권자는 헌법의 틀 자체를 바꿨는데, 경찰은 1987년이 1986년과 다르지 않다고 본 것이다. 민주화 헌법을 이끌어낸 국민의 저항을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불법’의 굴레를 씌우고 있다. 1987년 집회·시위가 설령 ‘폭력적’이었다고 해도 그것은 독재정권에 저항한 국민의 정당한 주권행사로 ‘다시’ 기록해야 한다. 그런데도 경찰은 1986년과 2015년을 구별하지 못한다. 박근혜정부와 전두환정권 또는 박정희 유신정권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국민 직선의 박근혜 대통령은 경찰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경찰은 자유청년연합 등 6개 보수단체가 제출한, 한상균 위원장 등에게 소요죄를 적용하라는 내용의 고발장을 접수했음을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공무원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헌법 제7조제2항).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기 때문이다(헌법 제7조제1항). 주권자는 충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한다(헌법 제7조제2항). 대신 경찰에 국민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지웠다(헌법 제10조제2문). 모든 국민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헌법 제21조제1항). 국가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법률로써 기본권을 제한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과잉 대응을 하지 않는 선에서만 가능하다(헌법 제37조제2항 전단).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헌법 제37조제2항 후단).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국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헌법 제7조제1항). 경찰의 변명은 헌법에 반하는 책임 회피이다.

 

광장에 나선 사람들은 다름 아닌 주권자들이다

 

민주화는 민주적 정치제도 또는 사법적 구제수단을 통해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의 권익을 실현하고 보장할 수 있는 면을 넓혀가는 것이다.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광장의 역동적 정치활동으로서의 집회·시위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정부는 집회·시위에 대해 제한·규제보다 보장·조정의 역할을 수행한다. 정치체제가 안정할수록 정치적 반대는 권리로서 자리 잡아가기 때문이다. 역으로 집회·시위를 불법과 폭력으로 몰아가는 정부는 민주적일 수 없다.

 

대규모 집회인 경우 폭력 논란은 집회에 참여한 개인들의 행동에서 비롯한다. 해당 개인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집회·시위 자체를 폭력적인 것으로 몰아가거나 주최자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헌법적으로 허용할 수 없다. 대규모 집회의 경우 주최자가 모든 참여자를 통제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법 적용은 대규모 집회 자체를 열 수 없게 하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헌법은 집회에 대한 정부의 사전예방 조치를 허용하지 않는다. 경찰의 행위는 국가보안법 다음 가는 악법으로, 집시법의 규정을 남용한 것이다. 헌법 제21조제2항은 집회에 대한 허가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헌법은 집회 개최 이후 사후조치만을 제한적으로 허용할 뿐이다. 경찰의 차벽 설치 등 사전폭력을 먼저 지적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번 집회에서 경찰은 위헌적인 차벽 설치를 통해 집회 자체를 사전에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게다가 캡사이신을 대량 함유한 물대포를 발사한 것은 국민의 입을 막기 위한 고문행위였다. 이 지경에 이르면 권력은 헌법적 정당성을 상실한 상태에 다다른 것으로서 그러한 폭력에 대항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헌법적 정당성이 있다. 광장에 나선 사람들이야말로 살아 있는 주권자들이다.

 

‘공권력’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표현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불법권력에 대한 저항을 탄압한 것은 공권력이 아니라 국가범죄의 폭력임을 자백한 꼴이다. 대규모 집회는 지배권력이 민주공화국 체제를 부인하고 있다는 국민의 고발이자 기소이고 증언이며 심판이다. 박근혜정부는 헌정질서 파괴를 멈춰야 한다. 국민에게 자백하고 주권자의 교도(矯導)에 따라 민주공화국으로 교정(矯正)되어야 한다. 독재체제의 끝에서는 새로운 헌법이 열리기 마련이다. 헌법의 법정에서 국가범죄는 공소시효가 있을 수 없다.

 

 

오동석 /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5.12.16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