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역사』
방랑하는 역사가, 부활하는 역사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역사:끝에서 두번째 세계』, 문학동네 2012
영화이론가로서 더 유명한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 1889~1966)의 마지막 저서 『역사: 끝에서 두번째 세계』(1969)는 쉽사리 갈피를 잡기 어려운 책이다. 내용이 난해하다거나 문장이나 논리가 명쾌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다양한 시대와 분야에 걸쳐 서구의 지적인 전통을 넘나들면서 그와 동시에 사진이나 영화 같은 새로운 매체에 대한 통찰들을 종횡무진 펼쳐놓기 때문만도 아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크라카우어가 해명하고자 하는 역사의 성격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역사라고 일컬어져온 시간(들)은 그가 보기에 그 의미를 확정할 수도 없고, 인과율에 따른 체계와 질서로 완전히 포착될 수도 없으며, 비균질적인데다가 수많은 우연과 이율배반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역사를 인과율로 짜인 내러티브나 체계적인 지식으로 환원하려는 시도들, 즉 역사철학이나 실증주의 역사학은 철학이나 과학을 앞세워 역사의 고유한 영토와 그 존재방식을 외면하거나 침탈하는 역할을 도맡아왔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크라카우어가 과제로 삼았던 것은 철학과 과학, 때로는 신학과 미학이 뒤덮어버린 역사의 고유한 존재방식을 역사에 되돌려주는 작업이었다. 이 과제야말로 크라카우어가 던지는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역사를 서술하기 이전에 먼저 역사적 시간과 역사적 존재들에게 고유한 삶을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다시 말해 철학과 과학, 신학과 미학의 틈바구니에서 망각된 역사를 서술하는 일이란 역사를 부활로 이끄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 곧 잊혀진 것들, 스쳐지나간 것들의 부활이라는 전언과 관련해서 『역사』는 다음과 같이 인상적인 인용을 하위징아(J. Huizinga)로부터 가져온다.
“역사란 부활이되 꿈에서의 부활이고, 보는 것이되 안 보이는 모습을 보는 것이고, 듣는 것이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말을 듣는 것이다.”(231면)
방랑하는 역사가
이 작업을 위해서 그는 양비론의 함정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쳐가기도 하고, 이율배반적인 논법을 취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그는 종말론적 시간관을 거부하고 그것이 세속화된 형태인 역사의 진보에 대한 관념을 비판하는 가운데 역사란 스스로 완성되거나 종결될 수 없는 시간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구원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으며, 구원과 해방의 가능성을 암시하면서도―그의 친구였던 발터 벤야민처럼―메시아주의를 표방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발상이 집약되어 있는 책의 부제(“The Last Things Before the Last”)야말로 이율배반과 모호한 다의성을 담고 있다. 이 표현은 마지막 장에서 역사가 최종적 결론을 목표로 삼는 철학의 바로 뒤에 위치한 중간지대라는 의미로 설명된다. “끝에서 두번째 세계”라고 의역된 한국어 번역본의 명쾌한 표현은 이러한 설명을 충실하게 따른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또다른 측면에서 이러한 표현과 발상은 크라카우어가 거부하는 기독교와 유대교의 종말론적 시간의식을 발 딛고 서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 단서는 “방랑하는 유대인 아하수에로(Ahasuerus)”(173면)에 대한 언급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하수에로는 방랑하는 유대인에 관한 기독교 전승에서 등장하는 유대인 방랑자의 수많은 이름 중 하나다. 수없이 많은 변형이 있지만, 아하수에로라는 이름의 유대인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예수를 모욕한 댓가로 저주를 받아 최후의 심판까지 죽지 못한 채 살아남아 지상을 떠도는 운명에 처한다는 것이 이야기의 기본 뼈대다. 크라카우어는 아하수에로의 형상을 역사적 존재의 알레고리처럼 제시한다. 이 떠돌이 유대인은 최후의 순간이 도래하기 직전까지(before the last) 자신의 삶을 완성시키지 못하며 어떠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도 없다. 다만 그는 지상에 남아 있는 사물들(the last things)의 흥망성쇠를 그 의미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의 몸으로 직접 겪고 증언해야만 한다. 크라카우어에 따르면 그에게는 또다른 이름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역사가’이다.
어느 인본주의자의 유토피아
크라카우어의 작업은 여러 측면에서 벤야민의 작업과 비교될 만하다. 카메라 촬영 기술이 파편화된 현실을 포착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는 변화에 주목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시간의식과 연관시키는 작업을 했다는 점에서 그렇고, 종말론적 시간의식과 씨름했다는 점에서, 또 번역자 김정아의 지적처럼 카프카가 새롭게 선보인 산초-빤사에게 주목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다만 그들이 정말로 같은 계보에 속해 있는가에 대해서는 좀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역사라는 주제에 관해서 살펴보자면, 인간의 역사 혹은 세속적인 시간이 스스로 완성 또는 완결을 목표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벤야민과 크라카우어는 유사한 입장을 취한다. 하지만 벤야민이 세속적인 시간의 완성을 메시아적인 것과의 관계 속에서 생각했다면(「신학적·정치적 단편」), 크라카우어에게서는 메시아적인 것에 해당하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에게 있어서 역사적인 존재가 역사적인 방식으로 지상에 머문다는 것은 “대의 없이 사유하고 생활할 수 있게 해줄 사유방식과 생활방식”을 모색한다는 것과 같다. 에라스뮈스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와 그의 “기독교적 인본주의(Christian humanism)”를 표본으로 삼아 크라카우어는 이러한 존재방식을 “인본의 방식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한다.(24~27면)
사진가와 역사가 사이의 유사성에 대한 돋보이는 통찰에서도 크라카우어의 “인본주의”적인 혹은 ‘인간중심주의‘적인 성향은 드러난다. “자기 눈에 비친 것에 대한 진실한 존중”에 의해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려는 사진가의 리얼리즘 충동과 자유롭게 대상을 조작하려는 조형 충동이 일치를 이룰 수 있으며, 이것은 또한 사진가와 역사가의 공통점이라고 크라카우어는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그가 중심에 놓는 것은 사진가 혹은 역사가라는 역사적이면서 동시에 자유로운 인간존재이다. 벤야민이 사진 촬영 기술이 제공하는 가능성을 “시각적 무의식”이라는 개념으로 다루고 비-인간적인 기술매체와 인간의 무의식적인 지각작용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셈이다.
아마도 크라카우어는 이러한 사진가-역사가의 이미지에서 신학은 물론 철학과 과학으로부터 마침내 해방되어 부활(renaissance)한 역사, 그리고 부활한 역사 안에서 “대의 없이 사유하고 생활”하는 인간의 자유로운 모습을 감지해내려고 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가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인용한 카프카의 산초-빤사는 온갖 기사 모험담의 대의를 벗어던짐으로써(카프카의 산초-빤사는 자신이 홀려 있었던 기사 모험담의 온갖 대의와 망상을 돈 끼호떼에게 넘겨주고 그 모험담의 세계에서 해방된다) 자유로워진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방랑하는 유대인에게는 저주였던 목표와 의미의 상실이 산초-빤사에게는 자유를 선물하는 축복이 되어 되돌아온 셈이다.
크라카우어가 생각한 것처럼 이 새로운 산초-빤사가 자유 속에서 유토피아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을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그가 역사가 퇴보한다거나 올바른 역사가 있다거나 하는 이야기에 혹은 역사에 “최종적이며 비가역적”과 같은 형용사를 덧붙이는 일에 대해 크게 코웃음 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김수림 / 문학평론가
2016.1.2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