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야마구치 마코토 『영어강좌의 탄생』
앎의 체계, 보편교양으로서의 ‘영어’
-야마구치 마코토 『영어강좌의 탄생』
한국사회의 정치·사회·문화적 양상 가운데 어떤 것들은 종종 일본의 근대를 다룬 책을 통해 그 원류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올해 초 출간된, 일본의 미디어 연구학자 야마구찌 마꼬또(山口誠)의 『영어강좌의 탄생: 미디어와 교양이 만난 근대일본』(김경원 외 옮김, 소명출판 2016) 역시 이런 맥락에서 유익한 정보와 더불어 우리 사회에서 ‘영어’가 가지는 특수한 역사적 의미를 탐구하는 데 유용한 연결지점들을 제시해주는 책이다.
“일본의 영어는 English가 아니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서문의 첫 세 문장 때문이었다. “일본의 ‘영어’는 English가 아니다. 그것은 근대화를 이루기에 급급한 일본을 위해 20세기 초엽 일본인이 발명한 Made in Japan의 교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를 아무리 공부해도, 또는 ‘영어’를 공부하면 할수록 English로부터 멀어질 뿐 English를 말할 수 있게 되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English와, 근대 일본에서 발명된 하나의 앎의 체계로서의 ‘영어’는 같은 게 아니라는 것인데, 20세기 영문학 전공자이자 현재 한국의 대학에서 영어와 영문학을 교양으로 가르치고 있는 필자에게 이 문장들은 단숨에 책을 읽게 만든 동인으로 작용했다. 전통과 교양은 자연적으로 생성되고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 특정한 역사적 조건하에서 ‘발명’ 혹은 ‘창출’되는 것이라는 저자의 전제가 새삼 다가오면서 근대 일본과 그 식민지배로부터 막대한 정치적·문화적·사회적 영향을 받은 한국의 ‘영어’가 갖는 그 특수한 역사적 정체가 일순간에 환히 드러난 느낌이었던 때문이다.
일본사회와 마찬가지로 한국사회에서도 영어는 유별난 방식으로 존재한다. 우리를 지배하는 영어의 무게가 유독 버거운 이유를 정치적 설명에서 찾는 것, 가령 영어가 일찍이 근대화를 선도하고 제국주의를 확장해나간 강대국의 언어라서 그렇다는 식의 설명은 틀린 건 없지만 추상적인 인식에 그치고 만다는 느낌이다. 영미의 식민지배를 직간접적으로 받은 많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유독 일본과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특수한 부담과 어려움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 부담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비교적 명확하게 시사해준다. 저자는 20세기 초반 일본에서 무선기술의 발달과 함께 라디오방송이 개시되면서 어떻게 방송이 일반대중을 계몽하고 교육하여 근대 국민국가의 시민이란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는지를 설명한다. 특히, 당시 라디오방송이 발신했던 영어교육 프로그램의 역사에 초점을 맞춰 어떻게 영어가 단순한 외국어의 위상을 넘어 근대 일본사회의 일반교양을 담당한 하나의 앎의 체계로서 자리잡아갔는지를 풍부한 자료와 함께 보여준다.
저자는 이같은 방송을 통한 영어교육이 구축한 앎의 체계를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제시한다. 첫째, 선진세계로부터의 수신에 그친 영문학으로서의 영어, 둘째,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언어습득을 조장한 수험영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제세계를 향한 적극적 발신을 시도한 회화로서의 영어가 그것이다. 이 세가지 모두는 우리 사회에서 영어가 존재하는 방식과도 쉽게 병행되는 것들이다.
영문학 연구자인 필자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일본의 초기 영어교육자들이 영문학에 근간하여 “교양으로서의 영어”를 창출/분배했던 방식과 그 기저에서 작동한 이데올로기다. 영미세계에서 English는 언어로서의 영어를 지칭하는 동시에 영문학을 지칭한다. 근대 일본이 영어를 받아들인 방식 역시 이 두가지를 모두 포괄한 것이었는데 그 수용의 역사적 상황과 조건이 매우 흥미롭다.
영어-영문학을 통해 ‘발명’된 근대교양
저자에 따르면 초기 영어교육자들이 방송을 통해 발신한 것은 영국에서 직수입한 영어가 아니라 일본 땅에서 교양으로서 제도화한 영어, 즉 ‘영문학’이다. 이들은 영문학을 대영제국이란 근대화의 선두주자가 이루어낸 보편적 규범, 즉 보편교양으로 보았다. 보편교양의 획득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당시 교육자들은 영문학의 수용에만 만족했지 발신이 될 수 있는 창작에는 관심이 없었다(현실적으로도 불가능했다). 영문학을 읽는 주체의 위치에도 특별히 의문을 제기할 이유가 없었으며 영어를 왜 배워야 하느냐는 질문 역시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여기서 영어 대신 영문학을 채택한 또다른 이유에 대한 저자의 분석이 흥미로운데, 영어와 일본어의 대립관계를 국어와 영문학의 상호보완관계로 재정립해야만 했던 당대의 시대적 요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세기의 전환기 일본은 하나의 언어로 통일된 하나의 국민국가라는 근대 국민국가 시스템의 구축을 위해 ‘국어’를 창출할 필요가 있었다. 국가와 국민의 정체성을 담보해주는 표준언어의 구축이 근대적 지식의 획득 및 축적을 위해 필수였던 것이다. 초기 영어교육의 권위자로서 런던 유학을 통해 영어의 권력을 직접 체험했던 오까꾸라 요시자부로오(岡倉由三郎)는 국민국가로서의 일본의 근간이 되는 국어를 위협하지 않는 방식으로 영어를 구축할 필요를 느꼈다. 국어와 우호적 관계를 맺으면서 국어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방식으로 일본의 영어를 제도화한 것이 바로 오까꾸라의 영문학 교육이다. 이런 견지에서 오까꾸라를 위시한 당시의 영어교육자들은 영문학 교육을 통해 근대보편의 인격을 양성하는 데 있어 국어가 영어를 보완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영문학은 ‘국어’를 통해 배워야 하고 근대 일본인은 영어를 배우려면 우선 국어를 정확하게 말하는 주체가 되기를 요구받았다. 영국에서 영어학이 아닌 영문학을 배우고 와서 국어로 글을 써서 근대 일본문학의 아버지가 된 나쯔메 소오세끼(夏目漱石)는 이들의 신념을 성공적으로 체화한 모델이 된 셈이다.
저자 야마구찌에 따르면 “교양으로서의 영어” 즉 영문학은 일본이 전후 미군정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원활한 국제교류를 목적으로 한 실용회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기 전까지는 상당한 권력을 행사했다. 1930년대 출간된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보면 구보가 한 친구와 만나 커피숍에서 최근에 출간된 제임스 조이스 소설의 혁신적 형식실험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부분이 나온다. 이를 보면서 다시 한번 식민지배 당시 한국의 많은 문인들이 일본에 유학 가서 하필이면 영문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에 의아했는데, 야마구찌의 책을 읽다 그 궁금증이 일부 해소되었다. 일본과 가장 상관없어 보이는 수준 높은 보편교양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일본적인 방식으로 ‘발명’되고 ‘분배’되었던 듯하다.
박여선 / 영문학자
2016.5.1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