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메르스 1년, ‘건강 사회운동’을 기억하다
지난 일년 동안 메르스는 기억과 기록을 남겼다. 병원들이 백서를 냈고, 의료인들은 증언을 남겼으며(예를 들어 지승호 외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 시대의창 2016), 일찍이 없던 인권 보고서가 나왔다(시민건강증진연구소 「인권 중심의 위기대응: 시민, 2015 메르스 유행을 말하다). 여러 지방정부가 메르스 백서를 펴낸 것도 다른 질병 사건이나 감염병 유행에서는 볼 수 없던 일이다.
나 개인으로는 작년 여름의 끝 무렵 순창을 다녀온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메르스 때문에 한 마을 전체가 격리되는 바람에 전국에 이름이 알려진 곳, 그 마을 주민들의 분노는 상상 이상이었다. 국가가 우리를 버렸다는 ‘비(非)국민’의 항의(그리고 항의할 곳을 찾지 못한 이들의 또다른 ‘배제’)가 가장 당혹스러웠다. 이 또한 전례가 없는 개인의 기억, 그리고 메르스의 집단경험이다.
시민을 ‘발견’하게 된 메르스 대응
메르스에 대한 기억은 언제까지고 남고 또 만들어지겠지만, 지금까지의 기억에 보태 시민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특별히 적어두고 싶다. 시민을 발견했다는 것은 불행한 이 사건의 거의 유일한 의의라 할 만하다. 보건과 의료에서, 특히 감염병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지금까지 시민은 수동적 존재를 면치 못했다. 시민은 정보의 불균형, 온정주의(보호자주의), 소비자 무지 같은 말로만 설명되면서 관리와 보호의 대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지난 메르스 사태는 교육, 계몽, 통제, 관리 대상으로서의 시민에 균열을 낸 의미있는 역사다.
시민이 나타난 것은 국가권력과 시장권력 사이에 틈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국가방역체제는 혼란스러웠고 무책임했으며 시민의 삶에 둔감했다. ‘의료시장’은 신뢰를 잃은데다 무력하기까지 했다. 유례없는 권력관계의 위기에서 (아직 불완전하지만) 비판과 대안이 교차하면서 새로운 시민과 시민권력이 태어난 것이다. 본래 시민은 그 자리에 있었을 터이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발견되었다.
첫번째는 인권이라는 렌즈를 통한 발견이다. 메르스 의심자를 입원시키느라 몇몇 공공병원에 있던 에이즈 환자와 노숙인을 강제로 내보낸 것이 그 예이다. 감염병이 유행하면, 전파 위험을 막는 사회적 이익과 개인의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이 충돌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메르스 사태에서 문제가 된 것은 그 이후, 강제로 병원을 나온 환자들이 갈 곳이 없었다는 점이다. 명백한 인권침해이니 숨어 있던 권리가 저절로 드러났다.
인권의 문제는 시민을 주체로
인권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다시 메르스를 규정했다. 권리가 건강의 프레임이 되는 순간, 에이즈와 메르스가 나누어지지 않고 환자와 비환자가 가려지지 않는 덕분이다. 강제 퇴원자의 권리에 대한 관심은 사건 이후 이런 질문으로 바뀌었다. 건강권, 의료 접근권, 기본권, 생존권…… 그 무엇이라 표현하든 우리의 인권은 얼마나 튼튼한가?
강제격리(증상이 없는 사람에 대한 조치는 ‘검역’이라는 표현이 정확하지만 여기서는 관례를 따른다)도 인권 관련 질문에서 빠질 수 없다. 공익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유보할 것을 강요했지만, 격리를 둘러싼 과학은 불확실했고, 결정은 정치적이었으며, 권리는 불평등했다. 순창의 한 마을을 통째로 격리한 데 반해, 서울 강남의 아파트에 대해서는 비슷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처럼 권리 침해와 불평등으로 ‘국가’방역체계에 틈이 벌어지는 것과 함께 시민은 발견되었다.
시민이 보인 두번째 반응은 좀더 능동적이다. 감염병, 그중에서도 공중보건의 위기 상황에서 시민은 보통 최소한의 참여도 하기 어렵지만, 메르스 사태는 그렇지 않았다. 정보를 공개하고 투명하게 정책을 결정하라고 요구했고, 지방정부가 빨리 나서도록 정치적 요구를 제기했다. 국가 수준에서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방역체계를 제대로 갖추라는 요구가 빗발쳤던 것도 기억한다. 특히 메르스 사태의 한복판에 있던 평택의 시민운동은 인상적이다. 사태 초기부터 21개 시민단체가 ‘메르스평택시민비상대책협의회’를 만들고, 시 정부와 정당, 시민 대중에 대한 활동을 펼쳤다. 감염병 관리와 그 체계는 유례없이 ‘민주화’되었다. 이와 별개로, 시민과 소비자, 의료인 등이 같이 참여하여 전국적인 조직을 만들려고 했던 것도 다른 때는 없던 일이다.
더 강화될 ‘건강 사회운동’
시민이 발견되었다고 표현했지만, 시민이 주체가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최소한 시민권력의 ‘감작화’(感作化, sensitization)라고는 부를 수 있을 터, 이는 작은 자극에 자꾸 노출되면서 반응이 점점 더 커지는 면역학 용어다. 지카 바이러스를 예방하는 과정에서도 이미 드러났지만, 시민은 이미 국가권력과 시장권력의 동요에 인권과 평등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 어떤 감염병도 메르스 이전처럼 받아들이기는 어려워졌으며, 주체로서의 시민권력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시민은 여전히 형성되는 과정에 있고, 감염병과 공중보건에서는 더욱 불완전하다. 다만 메르스 ‘이후’의 시민이 ‘이전’과 다르다는 것은 확실하다. 시민적 관점을 집단으로 학습하는 경험을 거쳤으니, 공중보건의 위기는 물론이고 다른 건강과 질병 문제에서도 권리와 참여를 기억하고 또 말할 것이다.
앞서 말한 평택의 시민운동이 그동안 지역에서 지속해온 실천과 연대를 기초로 했다는 것도 보태야겠다. 건강 문제를 둘러싼 시민의 주체화는 돌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일상의 실천을 기초로 한 것임이 분명하다. 그 역방향, 즉 건강 문제를 계기로 시민의 주체성이 강화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무엇을 그리 부르든, 메르스 사태는 ‘건강 사회운동’이라는 기억을 남기게 되었다.
김창엽 /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사)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2016.6.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