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사드, 미중관계와 한반도의 미래
한반도 사드 배치를 둘러싼 거짓말 잔치
슬픈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결국 정부와 군 당국이 한반도 사드(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배치를 공식화했다. 추측과 소문, 숱한 갈등을 덮으려는 듯 당국은 닷새만인 7월 13일 오후 경북 성주를 배치지역으로 급히 발표했으나 지역의 반발과 의혹은 더 심화하고 있다. 지난 2월에서야 한미 양국이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이니 배치 가부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다. 테이블에 마주 앉는 순간부터 이미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기정사실화하고 논의를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니 배치 발표 자체가 새삼스럽지는 않다. 단지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역시나 하는 실망감으로 변한 데 좌절감까지 더해졌을 뿐이다. 국민의 안전, 군사주권 운운하며 북한의 화성 10호와 잠수함발사미사일(SLBM)까지 죄다 막을 수 있는 절대 보검인 양 떠벌려놓고 정작 수도권 방어와는 동떨어진 곳에 배치한단다. 그동안 정부나 국방부가 국민에게 이토록 거짓말을 늘어놓았다는 사실에 놀랄 따름이다.
사드 배치 발표로 한반도를 둘러싼 역내 질서도 뒤죽박죽 예측불허다. 한미가 그리 공들여온 대북제재 국면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대남제재라는 희화화된 표현까지 나온다. 존재감 없던 러시아는 동부지역에 미사일 배치까지 언급하며 사드 국면에 숟가락을 얹었다. 개헌을 추진하는 일본에는 기가 막힌 타이밍이고, 국면 전환에 골몰하던 북한 김정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의미야 다르겠지만 일본과 북한의 음흉스런 미소가 보이는 듯하여 씁쓸하다.
사드 한반도 배치에 미국은 왜 집착하고, 중국은 왜 결사반대하는가? 미국은 북한 미사일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중국은 북한이 아니라 자기네 미사일을 향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누구 말이 맞을까? 사드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무기이고 보수언론이 주장하는 것만큼 한반도 전장 환경에서 북한 미사일에 대한 군사적인 효율성이 높지 않다. 이건 미국 스스로 인정하는 부분이다. 중국의 미사일 등 군사동향은 이미 미국·일본의 정찰자산이 손바닥 보듯 보고 있어 사드의 레이더를 우려하는 중국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반도 사드에 관해서 드러난 미국과 중국의 주장은 진짜 속내가 아니다. 둘 다 솔직하지 못하고 미국이 좀더 많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래도 미국과 중국은 각자 국익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고 치자. 그럼 우리는 과연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감추고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우리 정부의 거짓말이 국익, 국민, 군사주권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의혹이 짙어진다.
한반도 사드 배치는 미중 간 대립의 1라운드
일반적으로 사드가 한반도에 배치되면 중국의 미사일은 무용지물이 되고, 미국은 중국을 마음 놓고 공격할 수 있게 되면서 동북아 지역의 안정을 담보해왔던 억지체제가 혼란스러워질 것을 우려한다. 중국이 더 나은 미사일을 개발하고 다시 미국이 막으려는 군비경쟁이 심화되는 악순환 속에 역내 공포의 균형이 지속된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안보환경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시각은 미사일 위협이나 군비경쟁 심화라는 안보딜레마를 넘어 미중 간 상호 물러설 수 없는 경쟁과 대립의 제1라운드를 알리는 신호라는 점이다.
미국의 재균형전략과, 중국의 해양도련 확대와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한 세력 확장이 동아시아에서 시공간적으로 중첩되어 있다. 태평양으로 나아가려는 자와 못 나오게 막으려는 자의 싸움이라면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의 힘이 교차하는 충돌의 시작점이다. 그간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중 간 충돌의 전초전은 댜오위다오(센까꾸 열도) 문제와 항공식별구역 중첩 문제 등 여러번 있어왔다. 그러나 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는 전초전이 아니라 본격적인 힘겨루기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어느 한쪽도 양보하기 어려운 기선제압용 대결이 되어버렸다. 미중 고래싸움에 제대로 휘말린 셈이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새우등 터질 일뿐인가?
사드 배치에 달린 우리 아이들의 미래
2000년 10월 15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사설 「한반도의 통일은 아시아를 분단할 것인가?」(If Koreas Unite, Will Asia Divide?)를 보면 미국은 한반도가 통일되면 아시아는 지금의 남북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한 작은 분단이 대한해협을 중심으로 한 큰 분단으로 바뀌게 된다며 통일 한국이 중국과 더 가까워지는 것을 우려했다. 반대로 중국은 두만강, 압록강이 미군과 대치하는 새로운 국경선이 되는 걸 용인할 수 없다는 점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사드 배치는 미래 통일된 한국의 군사안보적인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다. 통일된 한국 군대의 성격을 결정하는 문제다. 결국 좀더 먼 미래를 보고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할지 말지를 고민해야 한다.
사드 배치는 미국에는 통일 이후 한미동맹을 예측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도 있지만 사드를 배치하면서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바라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사드 배치는 한국이 급변하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지역 및 국제환경 속에서 향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원칙과 비전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지금의 미중 간 경쟁관계는 오히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주변 국가들에 전략적 공간을 제공하여 대외정책의 자율성을 증가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 친미 또는 친중이라는 이분법이나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이중적인 접근은 균형이 아니다. 안보와 외교는 어느 하나 빠짐이 없어야 한다. 한미동맹이 중국에 유리하게 비치고, 한중 간 지리적 인접성이 미국에 매력적으로 이용되게끔 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균형외교는 미국과 중국이 추구하는 이익의 교집합을 우리의 국익으로 확대해나가는 것이지 망루에 올라서고 이곳저곳 기웃거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김동엽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2016.7.1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