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저서로 『소설의 고독』『흔들리는 사이 언뜻 보이는 푸른빛』『소진의 기억』(공편저) 등이 있다.
계간지 글
- [계간 창작과비평 91호]지난 연대를 향한 문학의 증언
- [계간 창작과비평 101호]실존의 글쓰기, 목숨의 글쓰기
- [계간 창작과비평 125호]정지아 소설집 『행복』
- [계간 창작과비평 131호]지하실의 윤리에서 항성의 상상력까지
- [계간 창작과비평 132호]불가능의 역설을 사는 소설의 운명
- [계간 창작과비평 133호]세계의 실패를 앓는 소설의 고통
- [계간 창작과비평 134호]‘이후’의 시간과 소설의 고독
- [계간 창작과비평 138호]세계문학의 지평에서 생각하는 한국문학의 보편성
- [계간 창작과비평 145호]전성태 소설집 『늑대』
- [계간 창작과비평 148호]소설의 정치성, 몇가지 풍경들
- [계간 창작과비평 155호]시대의 빈곤을 응시하는 가난한 언어
- [계간 창작과비평 157호]고독의 연대, 움직이는 숲으로의 초대
- [계간 창작과비평 158호]세상의 고통과 대면하는 소설의 자리
- [계간 창작과비평 160호]작가들이 만난 현실
- [계간 창작과비평 164호]‘다른 세상’에 대한 물음
- [계간 창작과비평 167호]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 [계간 창작과비평 168호]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 [계간 창작과비평 169호]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 [계간 창작과비평 170호]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 [계간 창작과비평 180호]정승철 『방언의 발견』
- [계간 창작과비평 181호]그렇게 구체적으로 말해줘 고마워요
- [계간 창작과비평 189호]루이스 세풀베다 『역사의 끝까지』
- [계간 창작과비평 191호]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 [계간 창작과비평 195호]단절과 침묵, 그리고 ‘이어짐’의 상상력
- [계간 창작과비평 198호]강경석 『리얼리티 재장전』
주간논평 글
- 마음의 접속면, 다섯번의 손잡기: 김금희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 남아 있는 시간에 대한 두 질문
- 문학과 역사의 감옥: 황석영 자전 『수인』을 읽고
- 밥상의 언어와 문학의 위엄
- 단순성의 힘
- 어떤 작가연보의 감동
- 인간 열망의 한없는 연대기
- 장 키플스타인 그리고 게리 워커 존슨
- 너무도 간단한 정의
- 넬슨 만델라의 걸음
- 용서의 시작
- 밀양 할매들의 행복
- 어떤 기억의 방식: 한강 『소년이 온다』
- 보이지 않는 사람들
- 키드랏 타히믹 감독의 질문과 꿈
- 문학의 자리를 생각한다: ‘밤의 맨 가장자리’와 ‘팔꿈치들의 간격’
- 울음에 대하여: 「공산토월」과 작가회의 40년
- ‘통증의 형식’과 ‘공감의 형식’
- 이야기가 사라져가는 시절
-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챙겨본 생각들
- 쇠스랑으로 다시 발을 찍는 시간: 신경숙 씨를 생각하며
- 나는 모르고 있었다: 송경동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를 읽고
- 밥 딜런이 보내온 질문
- 진공의 고요와 뜨거움: 황정은 중편 「웃는 남자」를 읽고
- 변화하는 문예지
- 세상의 다른 법칙: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을 보고
- ‘세월호’와 문학의 자리
- 인생의 제시간과 서성임: 최정례의 시 「나는 짜장면 배달부가 아니다」를 읽고
- 소설 읽는 시간
- 세상의 시간, 세상의 풍경: 허우 샤오시엔 이야기
- 2016년 새해 신춘문예 단상: 문학이란 何오?
- 이야기로 환원되지 않는 시간들: 차이 밍량의 「하류」를 보고
- 다시 읽는 『채식주의자』: 한강의 수상을 축하하며
- 역사의 짐: 거제도 포로수용소와 한국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