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D에 대한 일괄적 표준안을 마련하라

홍기빈

홍기빈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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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한창 ISD(투자자-국가 분쟁중재절차)로 논쟁이 뜨거울 때 TV토론에 나온 한 국제 변호사의 강변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한미FTA에 포함된 ISD만 문제 삼는 것이 우습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이미 한국이 체결한 자유무역협정과 투자협정에 80개가량의 ISD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제 한국은 ISD에 완전히 개방된 상태이니 한미FTA 하나 막는다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논쟁에서 소위 ‘전문가’라는 허울을 둘러쓰고 나온 이들은 대부분 법대 교수거나 법무법인의 국제 변호사였다. 이들은 중립적인 위치에서 조언을 하리라 기대할 수 없는 이들이다. 우리나라에 ISD 건수가 많아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실정에 밝은 변호사들이 사건을 수임하게 되는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국제 투자분쟁에 걸린 액수의 크기를 생각하면, 결국 이는 직접적으로는 변호사들 간접적으로는 법대 교수 등의 전문 인력에게 엄청난 크기의 시장 확대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은 ‘중립적’일 수 없고 가장 크게 이해관계가 걸린 당사자들인 것이다. 자유무역협정이 국제무역 문제라고 해서 무역업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쪽으로 치우친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

 

론스타의 ISD 제소는 한미FTA와 무관하다?

 

방금 이 변호사의 강변 또한 가만히 따져보면 실로 어불성설의 말장난이다. 예컨대 창문이 굉장히 많이 있는 큰 집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그 집의 창문들 중 상당수가 깨지고 고장나서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상태라고 하자. 그렇다면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은 이 참에 창문 전체를 일괄적으로 보수 수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변호사의 주장은 ‘에라, 이렇게 된 바에야 대문까지 활짝 열어제치자’라고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외환은행을 인수하여 오랜 기간 동안 그토록 많은 ‘먹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미국의 사모펀드 론스타가 이번에는 우리나라 정부를 ISD로 제소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동안 ‘ISD는 선량한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꼭 있어야 하는 일종의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태도로 일관해오던 정부도 참으로 할 말을 찾기 힘들게 되었다. 이 상황을 만회해보려고 기껏 나온 정부의 답변은 이러하다. ‘이건 한국-벨기에 투자협정으로 걸린 건이므로 한미FTA와는 무관하다.’ 한숨이 나온다. 지금 가족들 모두 곤히 잠든 집 마루에 커다란 돌멩이가 날아들어온 판인데 ‘이건 대문으로 들어온 돌이 아니라 창문으로 들어온 돌이다. 따라서 대문을 열어놓은 것을 비난해서는 안된다’라고 외치는 꼴이다.

 

게다가 ISD는 투자자의 입맛과 판단에 따라 중복하여 발동할 수 있지 않은가. 한미FTA는 올해 초부터 발효되었고, 론스타가 서울행정법원에 낸 원천징수세액에 관련된 소송은 아직 심사 중이다. 그 판단 여부에 따라 론스타가 한미FTA까지 중복하여 ISD를 발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그것이 실현되어 그야말로 ‘대문’으로부터 또 돌멩이 하나가 날아들면 그때는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ISD 관련 협정을 재검토하여 표준안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

 

론스타의 ISD 제소를 계기로 정부는 이제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그동안 이 제도를 놓고 그토록 많은 반대와 비판이 있어왔건만 정부는 앞에서 말한 ‘업계 사람들’이라 할 법대 교수들과 국제 변호사들을 앞세워서 이러한 목소리를 ‘무지의 소치’ 혹은 ‘불순한 선동’으로 몰아붙이며 귀를 막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그래서는 안된다. ‘대문’을 열어제치는 일은 물론이고 차제에 기왕 열어놓았던 창문들도 다시 보수하고 손보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가장 대표적인 국제중재절차인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에 가입했던 것은 1967년이라고 하지만, 그때나 그 이후에나 과연 이 ISD 문제를 다루었던 정부 관료들이 얼마나 이 제도에 대해 잘 알고서 세심하게 처리해왔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고, ‘페이퍼 컴퍼니’ 하나 걸러내지 못하게 허술하게 짜여 이번 사태를 초래한 한국-벨기에 투자협정을 보면 이런 의문이 상당히 타당하다는 심증이 굳어진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정부는 한미FTA를 포함하여 기존의 모든 자유무역협정과 투자협정에 들어있는 ISD 관련 협정들을 검토하여 하나의 튼튼한 표준안을 만들어야 한다. 우선 ISD 제도가 활성화될 경우 가장 큰 영향을 입을 국내 사법부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ISD 절차의 판정은 국내의 법체계 및 사법부의 관할권은 물론 판정의 법 원천까지 여러 면에서 모순과 충돌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 경우 후자에 우선하여 효력을 갖게 된다. 따라서 국내 법조계의 관점에서 볼 때 ISD로 인해 벌어질 사법 주권 침해의 가능성은 무엇인지를 철저히 검토하고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치사회적 안녕과 자주성을 막을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사법 주권이 걸린 일,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이 ISD를 모든 협정에서 원천적으로 일괄 제거해버리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내렸다. 우리의 판단이 그렇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판단 여하에 따라서는 최소한 그러한 폐해를 줄일 수 있는 단일의 표준안을 만들어서 차제에 한미FTA뿐만 아니라 기왕에 이루어졌던 모든 협정들에 일괄적으로 이를 적용하여 재협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11년 외교통상부의 문건에서는 ‘ISD에 제소당할 가능성은 0%’라고 했다. 막상 론스타에 제소를 당하고 보니 이번에는 ‘중재절차에서 맞붙어 이길 가능성이 120%’라고 주장한다. 그러다 지면 이번엔 또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더 늦기 전에 지금까지 이 문제를 대해왔던 안일한 태도의 문제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원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한 나라의 사법 주권이 걸린 일이다. 임시방편과 임기응변이 아니라 늦더라도 기초부터 다져야 할 문제이다.

 

2012.1 2.1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