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윤고은

1980년 서울 출생. 2004년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1인용 식탁』 『알로하』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 장편소설 『무중력증후군』 『밤의 여행자들』 『해적판을 타고』 『도서관 런웨이』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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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ㅊㅎ

 

 

뛰는 무리 중 경주에 온 사람은 은우 하나였다. 은우는 가장 늦게 시작했으나 가장 오래 뛰는 사람이었다. 뛰는 무리에 들어갈 때 목표를 ‘마라톤 풀코스 도전’이라고 적긴 했지만 그게 현실이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애초에 러너의 마음으로 뛰는 무리에 들어간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거리두기가 유효했을 때 회사에서는 최대 여섯명까지 팀을 짜서 회식비를 받아가도록 했고, 팀 구성은 직원들의 자율에 맡겼다. 무리에 소속되지 못한 사람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섬세하지 못한 처사라는 말도 돌았다. 은우 역시 어느 여섯명에도 들어가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솔직히 은우는 그게 더 좋았다. 무리 안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엔 3만원어치 상품권으로 제 몫을 받을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상품권을 선호했고 은우도 그랬다. 시작은 그 상품권 한장이었다. 회사의 제휴 쇼핑몰에서 쓸 수 있는 것으로, 선택지가 많지는 않았다. 돈을 더 추가하지 않아도 되는 상품은 식빵 아니면 달리기대회 참가권뿐이었다.

식빵이 빠르게 소진되었기 때문에 결국 은우는 서울 도심 10킬로미터 달리기대회를 선택했다. 며칠 후 은우 앞으로 기념 티셔츠와 양말, 기록용 칩이 달린 배번표가 배달됐다. 처음에는 무슨 달리기대회를 참가비까지 주고 나가나 싶어 시큰둥했던 은우였지만 막상 자기 몫의 배번표를 받자 조금씩 설레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러닝화까지 한켤레 주문하고는 대회 3주 전부터 매일 저녁 2킬로미터씩 달리기로 했다. 트레드밀로는 느낌이 나지 않아서 거리로 나가 뛰기 시작했고, 조금씩 탄력이 붙어서 나중엔 한번에 5킬로미터 정도는 찍고 돌아와야 개운했다.

대회 당일 아침 6시 반, 은우는 집결 장소인 여의도광장으로 갔다. 단체로 서서 준비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은우의 오른쪽, 왼쪽, 앞뒤로 끝도 없이 있었다. 7시 반이 되자 모두가 화사한 함성을 내지르며 뛰기 시작했다. 이 치열한 서울 한복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단지 달리기 위해 같은 티셔츠를 입고 모였다는 사실, 이 명랑한 티셔츠의 물결 속에 자신이 속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무리 속에서 익숙한 사람도 발견했다. 바로 앞 책상을 쓰는 입사 동기 최였다.

최와 은우는 함께 도시락을 먹으며 앞으로 이런 대회가 더 많아질 거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최는 냉동되었던 세계가 다시 녹았을 때 자신의 모습이 어떨 것인가, 해동되고 보니 너무 쪼그라들어 볼품없으면 어쩌나 걱정하는 사람들 모두가 뛰고 있다고 했다. 최는 “은우씨도 잘 뛰네” 하고서 봄부터 가을까지는 주말마다 대회가 있으니 원하면 가입하라고 했다. 어디에 가입하라는 말이냐며 모른 척했지만 은우는 사실 최가 말하는 게 뭔지 알고 있었다. ‘뛰는 무리’는 은우가 거절할 수 있는 제안이 아니었다. 은우는 결국 최가 알려준 앱을 깔고 ‘뛰는 무리’에 가입했다.

그 안에 있는 여섯명 모두 은우가 아는 사람들이었다. 15년 근속휴가를 받은 게 지난해였다.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다보니 웬만한 사람들과는 다 안면이 있었다. 여섯명 중에는 함께 일하는 동안 은우와 날을 세웠던 옛 팀장도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뛰는 무리 안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다가왔다. 한때 회사를 그만둘까 고민하게 만들 정도로 안 맞았던 그와 자신이 이제 와서 달리기 기록을 공유하며 싱거운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는 것이 낯설었다.

팀장은 모든 사람을 러닝화 유형 몇가지로 분류해냈는데 그에 따르면 최는 나이키의 베이퍼플라이2였다. “다른 거 신다가 그렇게 카본 들어간 걸 신으면 기록이 20초 이상 단축된단 말이지. 그래서 한때 기술 도핑 논란이 있을 정도였잖아? 어느 대회에서는 금지시킬 정도로. 그런데 한때는 너무 튀었던 그게 지금은 기본이 됐단 얘기야. 이제 러닝화 장사하면서 카본을 안 쓸 수가 없지. 최 봐봐. 처음엔 뭐 저런 친구가 다 있나 싶었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 보면 다 십년 전 최스러워.”

최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뭐냐며 팀장에게 꼰대주의보를 날렸다. 최와 팀장 사이는 꽤 편해 보였다. 저들이 원래 저렇게 친했나? 꼭 그랬던 건 아닌데. 이 무리 안에서는 모두 붙임성 좋은 ‘부캐’를 장착한 듯했다.

“은우는 발 사이즈 몇? 245? 우리들 중에서 제일 작은 사이즈 신을 거 아니야. 그런데 근성 봐, 은우가 대장이야. 은우는 언더아머의 스톰 시리즈라든가 아디다스의 울트라부스트22 고어텍스, 이런 타입이라고 봐. 나이키의 윈플로9쉴드. 이런 것도 있지.”

찾아보니 그건 모두 악천후용 러닝화들이었다. 쿠션감이 적고 묵직하며 겉에 구름, 비, 눈, 번개가 그려져 있는. 악천후일 때는 적절하지만 그렇지 않은 보통 날에는 부담스러운. 팀장의 말에 뼈가 있는 걸까. 어차피 이제 그의 팀 소속도 아니니 은우도 상관없었다. 그냥 동네 아저씨지 뭐. 그러나 그가 차기 실장 후보라는 소문은 여전히 있었다.

“닳아 없어질 수도 없겠네요.” 은우의 말에 팀장은 빙그레 웃으며 “바로 그거지!” 했다. “그런 신발들은 마모가 잘 안 된단 말이야. 밑창이 아주 두껍거든. 악천후용 러닝화는 반드시 하나 필요해. 궂은 날이라고 안 뛸 순 없잖아?”

팀장은 몇 미터 달릴 때마다 소액이 적립되는 앱의 재미에 뛰기 시작한 게 벌써 오년째라고 했다. 최는 코로나19 이후 커졌던 마스크에 대한 관심을 최근 러닝 장비 쪽으로 옮겼다. 마치 회사가 아닌 다른 우주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뛰는 무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모두의 달리기를 챙겼다. 은우가 조금 무리해서 뛴 후 다리 통증을 호소했을 때 최는 장경인대증후군일 거라며 은우에게 액체형 파스를 건네주며 말했다. “휴식이 답이야. 그래도 통증은 안고 가야 해. 어차피 그 통증은 마라토너의 숙명이니까.”

뛰는 무리 안에서 최의 닉네임이 바로 장경인대증후군이었다. 펀런, 서브3, 생계형러너, MBTI러닝화, 오늘도우중런…… 그들 사이에서 은우의 닉네임은 ‘얼러너’였다. 얼떨결에 러너,라는 뜻이었다.

분기별로 한번은 달리기대회에 참가하는 삶, 적어도 생에 한번은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목표로 두는 삶.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은우도 몇차례 단거리대회에 더 나갔다. 15킬로미터를 뛰었을 때 대상포진을 앓았고 무리하면 안 된다는 걸 톡톡히 배웠으나 어떤 거대한 흐름에 밀려서 두달 후 하프마라톤에 참가했고 얼떨결에 완주했다. 무리 중 하나는 하프마라톤까지 완주하고 나서 굳이 ‘얼떨결에’라는 말을 왜 붙이냐고 했지만, 은우 입장에서는 정말 얼떨결이었다.

이런 식의 줄거리가 은우의 삶엔 흔했다. 휴가를 갔다가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산악스키대회의 출발선에 서게 된다든지, 배드민턴장에 앉아 있다가 모르는 사람의 대타로 내기 경기에 나가게 된다든지. 산악스키대회에서는 뒤에서 2등을 했고, 배드민턴장에서는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결과가 늘 백발백중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은우는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었고 그걸 알아보는 이들에게 은우는 핀셋으로 골라낸 듯 눈에 띄었다. 실내 암벽등반장에 있으면 모르는 사람이 코치인 줄 알고 다가와 은우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은우는 뛰는 무리 안에서도 자연스레 러닝기록 누적 1위를 했다. 매일 뛰는 양이 가장 많은 사람, 무엇보다도 궂은 날씨에도 뛰는 사람, 그게 은우였다.

 

경주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의 이름은 하쉬마라톤대회였다. 4월 첫 주, 이 날짜에 열리는 마라톤대회가 꽤 많았기에 뛰는 무리는 세 팀으로 흩어졌다. 하쉬마라톤대회에 신청한 사람은 은우를 포함해서 두명이었는데 다른 한명은 급작스러운 일로 오지 못했다. 팀장이었다. 팀장은 “내 몫까지 얼떨결에 완주해요!”라며 은우를 응원했다. 모두가 완주를 말했지만 사실 은우는 절반 이상만 뛰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심리적 피니시라인은 30킬로미터, 그 이후는 덤이었다.

덤은 예상보다 힘이 셌다.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하자 조금 더 뛸 수 있었다. 그러나 31킬로미터를 넘어갔을 때 갑자기 허벅지 한쪽에서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오더니 이번에는 반대쪽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발바닥이 뒤틀렸다. 1킬로미터에 5분대였던 기록이 8분 후반대를 넘어섰다. 포기가 아니라 완료라고 생각하고 그만 뛰고 싶었지만, 급수대의 사람들이 보내주던 응원과 환호가 은우를 조금 더 앞으로 앞으로 밀었다. 멈추는 법을 몰라 어찌할 수 없는 사람처럼 은우는 꾸역꾸역 전진했다. 그렇게 35킬로미터를 통과하자 이제 온몸에서 경련이 일어났다. 몸 안에 숨겨두었던 탬버린이 일제히 은색 금속판을 흔들어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오른쪽 러닝화로 시선을 떨구게 되었는데, 발등을 덮는 설포가 어쩐지 평소보다 더 길어진 듯했다. 은우는 결국 멈춰 서서 수상한 설포를 손으로 잡았다. 그것이 정말 누군가의 혀처럼, 끊임없이 낼름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은우는 발볼을 최대한 느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40킬로미터 급수대가 목전에 있었다.

하쉬마라톤대회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역사도 길지 않았지만 지난해에 벌어진 어이없는 사고로 인해 갑자기 유명해졌다. 40킬로미터 지점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진행요원들이 일제히 자리를 뜨는 바람에 코스 안내에 예기치 않은 공백이 생겼고, 갈림길에서 오른쪽을 선택해야 할 러너 중 한명이 직진해버렸다. 뒤따라오던 러너 여섯명이 모두 그를 따라 직진했고, 그렇게 줄줄이 코스를 이탈하는 사례가 생겨났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행사 주최 측에서 부랴부랴 뚫린 지점을 막았으나 이미 코스 밖으로 빠져나간 여섯명은 모두 실격처리되었다. 맨 처음 한명은 자신의 궤도 이탈을 인지하고 다시 돌아와 뛰었기 때문에 실격처리는 피했지만 이미 우승 후보군에서 한참 멀어진 뒤였다.

진행요원들이 한꺼번에 자리를 비운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지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여러 이야기를 만들어 빈자리를 채우려 했다. 그렇게 동원된 상상력 중 하나가 진행요원 매수설이었을 정도로 하쉬마라톤대회의 운영 방식에 대해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하쉬마라톤의 코스와 집값의 묘한 상관관계, 그러니까 지역의 부동산 이슈를 엮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것은 약간 미신적인 데까지 흘러가서 사람들이 숫자를 주렁주렁 달고 뛸 때 그 에너지가 일종의 ‘집값 다지기’ 효과를 낸다는 말까지 돌았다. 게다가 미흡한 운영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주최 측에서 덧붙인 말, “그 어떤 마라톤에서도 코스 이탈자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대여섯명은 나옵니다. 인생도 그렇지 않습니까!” 때문에 이번 대회 역시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 해냅니다!”가 이번 대회의 슬로건이었는데, 그 아래로 “반드시 대여섯명은 이탈합니다”가 따라붙은 채 돌아다녔다.

확실한 건 이번 대회 곳곳에서 코스 안내를 위해 노력한 흔적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모범택시, 경찰, 서포터즈, 안내판 등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갈림길에서 혼동이 없도록 배치했다. 러너들에게도 사전에 코스를 제대로 숙지해달라고 당부했는데, 그럼에도 8천명의 참가자 중 세명이 코스를 이탈했다. 그중 하나가 은우였다. 41킬로미터 지점에서 40킬로미터 지점에 이르는 은우의 궤적이 모르는 사람들의 휴대폰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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