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표명희 表明姬

1965년 대구 출생. 2001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주요작품으로 「야경(夜景)」 「실리카겔」 「3번 출구」 「탑소호족 N」 등이 있음. pyo7788@hanmail.net

 

 

 

新어가행렬

 

 

전철 문이 열리자 오렌지전사는 반사적으로 튀어나간다. 그는 사람들 틈을 이리저리 빠져가며 지하도를 달리다 마지막 계단을 앞두고 멈칫한다. 출구에 선 사람들이 주춤거리며 하나 둘 우산을 펼쳐들고 있다. 비가 오는 모양이다. 일기예보를 들었지만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비 소식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맑은 날씨였다. 번거롭게 우산을 챙기고 싶지 않았다. 지금 문제는 비가 아니라 약속시간이 20분이나 지났다는 사실이다. 그는 단숨에 계단을 올라 사람들을 비집고 나선다. 다행히 맞아도 그만일 정도의 가는 이슬비다. 모임장소는 광화문 들어서서 왼쪽 담장 앞. 인터넷 걷기동호회 뚜벅이들의 ‘우작탈’(우리들의 작은 일탈) 모임이 있는 날이다. 물귀신이 제안한 모임이라 일명 ‘물귀신 작전’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오래전부터 별러오던 행사였는데 이번에야 참가할 수 있게 되었네요. 우리 같이 가요. 함께하실 분 빨랑빨랑 리플 달아주셈. 그 아래 참가희망 리플이 예닐곱 개 정도 달려 있었다. 사실 그는 참가신청 리플을 달지도 않았다. 예고없이 불쑥 그들 앞에 나타나고 싶었다. 오렌지전사다운 방식으로. 일기예보 탓이었는지 막판에 여러 명이 참가신청을 취소하는 바람에 그는 어쩌면 물귀신과 단둘이 하는 걷기모임이 될지도 모른다는 꿈에 부풀었다. 우리 같이 가요. 그 구절을 보는 순간 그는 물귀신이 꼭 자신에게 한 말처럼 괜스레 가슴이 설레었다. 그런 환상과 기대 때문에 그는 며칠 잠까지 설쳐가며 오늘의 모임을 준비했다. 그걸 펼쳐놓을 기회만 생긴다면 십중팔구 물귀신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라는 꿈에 부풀어……

닉네임이요? 워낙 물을 좋아해서요. 어릴 적 수영대회에서 메달을 딴 적도 있어요. 물개나 돌고래보다 수영을 잘하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떠올린 게 그거예요. 물귀신이라는 닉네임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을 때 그녀의 설명이었다. 혹시 늦은 밤, 강남역 근처에 오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젊은 수컷 회원들의 눈길이 일제히 그녀에게로 쏠렸다. 퇴근 후 편의점에서 ‘알바’하거든요. 밤 11시 이후에 오시면 쌘드위치 공짜로 드릴 수 있어요. 유효기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거라 더 감칠맛 나요. 사람들은 킬킬대며 물귀신다운 넉살이라고 입을 모았다. 투잡스라는 닉네임이 하나 더 붙을 정도로 그녀는 퇴근 후에도 알바를 뛰는 억척이었다. 그나저나 정말 귀신이 곡할 생활방식이야, 물귀신은…… 외계인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핸드폰 없이 살 수 있지? 핸드폰 없는 그녀보다는 핸드폰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 더 불편해했다. 신세대답지 않은 그녀의 생활방식에 사람들의 추측은 분분했다. 카드빚 때문일 거야. 아냐, 핸드폰도 없이 사는 저런 억척이 카드빚을 졌을 리가 없어. 되레 카드회사가 물귀신한테 빚을 졌다면 몰라도. 그건 그러네. 투잡스답게 그녀는 늘 바빴다. 이제 가봐야겠어요. 일하러 가야 하거든요. 일요일 정기모임 때도 물귀신은 오전 일정만 참가하고는 사라졌다. 계모 슬하의 콩쥐처럼 분명 밑 빠진 독에 물을 길어다 붓거나 하는 고달픈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만 그녀는 언제나 밝고 가벼운 걸음으로 멀어져갔다. 당돌하면서도 속내가 깊어 보이는 여자, 억척스러우면서도 여유가 있어 보이는 여자. 오렌지전사의 눈에는 물귀신이 그렇게 보였다.

 

경복궁이 술렁인다. 궐내 식구들이 종종걸음치며 분주한 가운데 문무대신과 왕실의 종친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다. 임금이 이들을 모두 거느리고 종묘로 행차하시어 선조들께 친히 제향하는, 왕실의 제사가 있는 날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와 납일(臘日)을 합해 일년에 모두 다섯 번 치러지는 이 종묘제례는 나랏일 중에서도 단연 첫손 꼽는 의식이었다. 백성들 등뼈 휘도록 부역시켜 만든 궁궐은 버려도 신주는 지켜야 한다는 말이 조정 중신들의 입에서 공공연하게 나올 법했다.

출궁 준비가 시작된다. 침침한 창고에서 뒹굴던 창과 방패와 활과 깃발이 차례대로 나와 군졸들 손에 건네진다. 주름 펴고 먼지 떨고 광내는 일로 손들이 분주하다. 말들도 마구간에서 끌려나와 갈기가 빗겨지고 안장이 얹히고 고삐가 조여진다. 제각기 맡은 의장물에 따라 정해진 자리를 찾아 서느라 잰걸음이다. 문관은 문관끼리 무관은 무관끼리 종친은 종친끼리 활은 활끼리 나팔은 나팔끼리…… 홍동백서 조율이시 좌포우혜 우반좌갱 제상음식마냥 앞뒤좌우로 열과 줄을 맞추어 선다.

한바탕 퍼부을 거 같은데.

황금도끼가 중얼거린다. 그는 녹슨 도끼를 금박지로 잘 감싸 황금도끼로 감쪽같이 변신시킨 참이다.

주변의 몇몇 도끼와 방패들도 황금도끼의 말에 하늘을 올려다본다. 띄엄띄엄 짙은 구름이 보이긴 하지만 언뜻 봐서는 웬 뚱딴지같은 소리, 싶을 정도로 맑은 오월의 하늘이다.

빨리 일 끝내고 시원한 막걸리나 한잔했으면 좋겄네.

자넨 그저 젯밥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구먼.

제사에 젯밥 빼면 뭐 남는 것 있나?

건 그렇구먼.

조상 덕에 배 불리는 거지, 흐흐. 할애비 체면 살아 좋고 손주놈 배불러 좋고. 과부 좋고 홀애비 좋고……

여, 거기 도끼들, 모여서 구시렁대지 말고 빨랑빨랑 줄이나 맞춰 서라구.

도끼와 방패, 활과 장검 무리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또 한번 술렁인다.

대열이 얼추 정비되자 관원이 옥새를 받들고 임금을 문안한다.

전하, 채비가 다 됐습니다. 출궁 준비를 서두르시지요.

임금은 마침 버선끈을 매는 중이었다.

원, 버선끈 하나 매는 것도 이리 복잡해서야……

동트고 해 넘어갈 때까지 예와 법식을 논하던 유림들이 버선끈 하나 소홀히 했으랴. 색깔과 생김새는 물론 끈 매는 방법도 두툼한 서책에 소상하게 적혀 있는 대로 따라야 했다. 어디 버선끈뿐이었겠는가. 첫 술을 올리는 제주인 임금은 이날을 위해 오례 중 으뜸인 제례의 법식에 따라 일주일 전부터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해야 한다. 음주와 가무를 즐기거나 여색을 탐해서도 안되고 사나흘 전부터는 문상이나 병문안도 하지 않으며 참수형에 관한 문서에는 붓끝도 대지 말아야 한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란 동서고금의 진리는 통치에도 두루 먹혀들어 어가행차 때 군주의 위용은 백성들의 존경과 충성심을 단번에 샘솟게 할 수 있었다. 하여 이날 임금의 차림새는 으뜸가는 준비절차였다. 먼저 바지와 저고리, 중단과 상을 입고 그 위에 아홉 가지 수가 놓인 구장복―이 또한 장유유서의 원리에 따라 중국 황제의 십이장복과 황세자의 십장복 다음에 해당하는 것이다―이라는 검은색의 대례복을 입는다. 그 위에 갖가지 장신구들이 덧붙여지며 의상은 형형색색 다채로워진다. 뒤로는 대대를 두르고 앞에는 가슴에서 무릎까지 드리우는 앞치마 모양의 폐슬을 찬다. 허리에는 붉은색 실로 짠 수와 패옥을 걸치는데 수는 허리 뒤쪽에, 옥으로 만든 패는 앞으로 길게 늘어뜨린다. 거기다 오색 구슬이 달린 면류관을 쓰고 옥으로 된 예물을 들면 누구든 한눈에 그가 하늘 아래 최고 권력자임을 알아볼 수 있다. 군계일학(群鷄一鶴)이 아니라 가히 군학일작(群鶴一雀)이라 할 만한 모습으로 새로이 탄생하는 것이다. 만백성의 어버이며 지존의 존재인 임금은 하늘이 보낸 인물답게 멀리서도 금세 알아볼 수 있는 휘황한 모습이어야 한다.

모름지기 옷은 날개라 했건만 이건 숫제 짐보따리 둘러멘 것 같구먼……

벌써부터 진이 빠진 임금은 까다로운 절차의 종묘제례를 끝까지 잘 치를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하지만 군주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언감생심 어떤 피조물도 넘볼 수 없는, 바로 하늘이 만들어준 자리가 아니던가. 일거수일투족이 거추장스럽지만 임금은 속내를 말끔히 감춘 채 짐짓 근엄한 표정을 드리운다. 어흠, 큰 기침을 떨어뜨리며 어전을 나선다. 대례복 차림의 임금이 위엄있는 걸음을 떼어놓으면, 행여 용안에 한점 햇빛 혹은 한줄기 먼지바람이라도 스칠세라 양산과 부채를 높이 받쳐든 시종들이 그 뒤를 그림자처럼 따른다.

예학의 구현에 온몸을 바친 유학자들이 빼곡히 도열해 있는 왕실에서, 궁궐을 버릴지언정 신주는 포기해선 안된다는 충언을 귓불이 닳도록 들었던 조선의 임금들이 실제로 종묘의 제향을 꼬박꼬박 받들었느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군주라는 그 절대적 지위만큼 국사 돌보느라 여력이 없었는지, 오례의 예법 중 제사의 절차가 유난히 까다로워서였는지, 아니면 버선끈을 매다가 문득 예학의 형식이라는 것에 고개가 갸웃거려진 탓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임금의 친행은 극히 드물었고 대신들로 하여금 섭행케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춘하추동 사계의 큰 제사에는 친히 제향하시어 선조들께 예를 밝히고 보본(報本)의 정성을 다하시는 게 군왕의 도리인 듯하옵니다.

중신들의 간언이 있을 때면 임금은 으레 사려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후로도 왕이 직접 제향하는 일은 가물에 콩 나듯 했다. 그렇다고 오례 중 으뜸가는 예식인 제사가 소홀히 취급될 리는 없다. 나라의 근본과 기강을 온 백성들에게 펼쳐 보이는 의식인만큼 제례는 ‘오례의’에 정해놓은 엄격한 규율과 절차에 따라 성대하게 치러졌다.

임금님 행차가 있는 날이래. 어서 구경 가자.

어가행렬이 있는 날은 사대문 안 사람들도 명절 때처럼 들떠 있었다. 그것만큼 화려하고 볼만한 구경거리는 없었다. 행렬이 지나는 큰길에는 임시가게인 가가(假家)들이 철거되고 관의 지시에 따라 인근 백성들은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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