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가사, 소통 그리고 여론

 

 

보데왼 왈라번 Boudewijn Walraven

한국학자, 네덜란드 레이던대학 명예교수,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석좌교수. 저서 Songs of the Shaman, Korean Popular Beliefs 등이 있음.

 

* 이 글의 원제는 “Kasa, Communication, and Public Opinion”이며 동명으로 『한국학 저널』(Journal of Korean Studies) 제20권 1호(2015)에 실린 글을 저자가 손질한 것이다. ⓒ Boudewijn Walraven 2015, 2018/한국어판 ⓒ 창비 2018

 

 

들어가는 말

 

로버트 단턴(Robert Darnton)은 그의 저서 『시와 경찰』(Poetry and the Police)에서 18세기 프랑스 시가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인터넷이 생기기 훨씬 이전, 정보가 구전되던 시기, 시가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무척 효율적인 매체였던 시기에 정보사회가 작동하던 방식을 잘 알 수 있다”1고 말했다. 그의 책을 통해 우리는 소통의 중요성과 복잡성에 새삼 주목하게 되는데, 사실 우리에게는 그러한 소통, 특히 광범위한 소통은 글쓰기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너무 쉽게 추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단턴은 글을 통하지 않은 소통의 형식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소통의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누락된 요소, 즉 구전성을 재구성할 때까지 절대로 제대로 된 소통의 역사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라는 것이다.

이 글에서 나는 단턴이 탐구한 소통매체와 유사한, 활자와 구전의 중간 장르인 가사(歌辭)에 초점을 맞춰 조선 후기에 생각과 견해가 전파되던 방식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1700년 이후 생산된 몇몇 가사 작품들을 고찰한다면 한국에서 여론, 혹은 공적 영역의 등장에 대한 논의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쓰는 “공적 영역”이라는 어구의 의미는 하버마스(J. Habermas)가 사용한 동일한 용어와 정확히 같은 뜻은 아니다. 하버마스의 어구에는 명백히 유럽 부르주아 사회의 발전에 특수하게 관련이 있어서, 조선시대의 한국이나 동아시아에는 적용될 수 없는 함축된 의미가 상당히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의 조선사회에도 (동아시아적이고 유교적인 특수한 형태의) 공공이익, 공동선의 개념은 존재했기 때문에 어떤 여론의 형식 혹은 조선시대 한국 특유의 공적 영역 형식이 발견된다. 물론 당대의 한국에, 예컨대 하버마스가 말하듯 공적 영역의 등장과 연계해서 자유주의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기초가 형성되었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공적 영역에 대해 논할 때 굳이 그것이 하버마스가 유럽에서 부르주아 공적 영역을 창조하는 데 중요했다고 본 일련의 요소들과 일치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점검하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한국적 발전 형태의 특수한 역동성과 특성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조선의 여론 개념

 

조선사회에는 대체로 유교적인 공론(公論) 개념에 입각해, 중요한 사안들에 대한 개인들의 견해를 표현하고 순환시키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었다. 그런 방법들은 통치자가 백성의 견해에 기꺼이 귀 기울일 것을 요구했다. 많은 경우 견해를 제시하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이지, 정치적인 과정에 공적으로 참여하는 형식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가면 이 상황이 변모한다. 조정에서는 ‘조보(朝報)’를 통해 지방관리와 지방의 식자층 양쪽에게 정보를 전달했고, 이를 통해 관리들뿐 아니라 훨씬 폭넓은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거나 정치적 논의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런 표현과 참여는 차()와 상소(上疏)를 지방관리에게 보내는 형태를 취했고, 만일 그런 경로를 통해서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할 시에는 조정으로 보내기도 했다. 이러한 청원은 개인뿐 아니라 집단이 제출하기도 했다. 상소를 자주 하는 축에는 성균관의 학생들이 있었지만, 많은 경우 서원과 연결된, 지방의 재야 지식인들도 그러한 과정에 참여했다. 조선 후기로 가면 이런 청원 중의 일부는 수천명 지식인들의 서명을 모아 이루어졌고, 따라서 만인소(萬人疏)라고 불렸다. 그같은 집단 청원들은 통문(通文)을 통해 이룩된 합의의 결과였는데, 통문을 돌리는 것은 여론을 표현하는 전보다 더

  1. Robert Darnton, Poetry and the Police: Communication Networks in Eighteenth-Century Paris (Belknap Press 2010), 145면. 더 자세한 참고문헌은 이 글보다 더 길고 상세하게 이 문제를 논한 졸고 “Kasa, Communication, and Public Opinion,” Journal of Korean Studies vol. 20, no. 1 (201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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