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21세기 한반도와 새로운 공동체

 

가상‘공동체’인가 ‘가상’공동체인가

 

 

김도현 金度賢

우석대 기계·자동차공학과 교수. 소설가.

 

 

들어가며

 

공동체라는 말에는 어쩐지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신자유주의의 득세와 함께 나타난 경쟁단위의 미분화 추세에 따라 모든 개인들이 원시적인 무한투쟁의 장으로 내몰리는 요즘의 분위기 탓인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21세기의 공동체를 건설할 무대가 싸이버스페이스라는 점을 굳건히 믿고 있으며, 이에 힘입어 하루에도 여러 개의 새로운 ‘가상공동체’(virtual community)들이 자신들의 싸이트 혹은 게시판을 개설한다. 이 중에는 온전히 싸이버스페이스에서만 존재하는 것들도 있고, 각종 통신동호회처럼 싸이버스페이스에서 만들어진 후, 오프라인 모임과 병행되는 형태나, 시민단체·동창회처럼 실제로는 현실공간(real space)에서 존재하는 모임이 싸이버스페이스에 보조적인 공간을 마련하는 형태도 있다. 이같은 가상공동체는 그 구성원이 지구상의 어느 곳에 거주하든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 심지어 기술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접속하는 물리적 위치를 영원히 모르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같은 속성 때문에 기 쏘르망(Guy Sorman)이나 스칼라피노(R. Scalapino)를 비롯한 많은 ‘선지자’들이 가상공동체야말로 국가라는 체제를 위협하는 21세기적 공동체라고 예측한다. 더 나아가 오오마에 켄이찌(大前硏一)는 정보통신혁명이 국민국가라는 20세기적 공동체의 종말을 이미 선고했다고까지 주장한 바 있다. 물론 그의 ‘선고’는 싸이버 금융거래에 의한 초국적 경제체제의 형성에 더 촛점이 맞춰진 것이지만, 인터넷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통신·왕래수단보다도 쉬운 방식─오직 단 한번의 클릭─으로 공간의 한계를 무너뜨리며, 이것이 물리적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형성된 국민국가의 장악력을 약화시킨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필자는 이처럼 급격히 형성되고 있는 이른바 가상공동체의 특성을 살펴보고, 그것이 대안적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을지를 나름의 관점에서 검토해보고자 한다. 다만 이 글은 정보사회학 논문이라기보다는 그저 한 인터넷 사용자로서의 견해임을 미리 밝혀둔다.

 

 

가상공동체는 진짜 ‘공동체’인가 ?

 

이른바 CMC로 약칭되는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Computer Meditated Communication)과 관련된 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이 라인골드(H. Rheingold)이다. 그의 1993년 저작 『가상공동체』(The Virtual Community)는 수많은 가상공동체 논쟁에 항상 인용되곤 한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www.rheingold.com)에서 스스로를 전문적인 가상공동체 건설자라고 소개할 만큼, 가상공동체의 열렬한 옹호자이다. 가상공동체에 대한 그의 개안(開眼)은 컴퓨터통신 초창기인 1985년에 건설된 웰(WELL, www.well.com)을 통해 이루어진다. 초기의 웰은 웹의 활성화 이전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던 것과 같은, 다이얼업(dial up)1 기반의 사설게시판 형태였는데, 그 모양새는 아마 우리나라의 키즈(Kids, kids.kornet.nm.kr) 게시판과 유사했던 것 같다. 라인골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상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은 스크린을 통해 칭찬하고, 농담하고, 때론 논쟁에 끼여들며, 물건을 사고 팔고, 지식과 감정을 공유하고, 남을 흉보기도 한다. 그리고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친구를 사귀고 때론 잃기도 한다. 게임을 하고 시시덕거릴 뿐 아니라 때로는 함께 예술을 창조하기도 한다. 가상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은 실제 생활에서 누리는 거의 모든 것을, 자신의 육신을 뒤에 젖혀놓은 채, 누리고 있다. 물론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입맞출 수는 없고, 당신의 면상에 한방 날릴 수 있는 사람도 없겠지만, 가상공동체 안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난다.2

 

이같은 경험은 통신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공유했을 법한 것이다. 싸이버스페이스에서는 학교나 직장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종류의 일들이 빠르고 빈번하게 일어난다. 하룻밤의 채팅으로 연애감정을 느끼거나 별 생각 없이 올려놓은 글이 수십개의 뤼(Re>)가 붙는 뜨거운 논쟁으로 번지거나, 10분 전에 알게 된 사람과 번개모임이 이루어지는 따위의 일은 별로 드문 게 아니다. 이처럼 싸이버스페이스에서는 모든 일들이 매우 격렬하게 이루어지곤 한다. 다른 통신수단으로는 결코 가능하지 않은 무제한의 접속성이 사람들로 하여금 공간과 시간을 순식간에 뛰어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역동성에 감동한 사람들은 싸이버스페이스에 존재하는 가상공동체를 공동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아니, 현재 존재하는 그 어떤 공동체보다도 더 그럴듯한 공동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클리포드 스톨(Clifford Stoll)의 이런 생각은 또 무엇인가?

 

통신망 속의 사회는 실재하지 않는 사회이며, 흔적 없이 녹아 사라질 수 있는 무(無)의 조직이다. 인터넷은 밝고 유혹적으로 빛나는, 힘있는 지식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은 우리로 하여금 실제 생활에서 보내는 시간을 포기하라고 유혹한다. 그것은 실제 생활에 대한 보잘것없는 대체물로서, 욕구불만이 넘치고 교육과 진보라는 신성한 이름 아래 인간관계의 중요한 측면을 무자비하게 평가절하하는 가상의 현실이다.3

 

우연찮게도, 스톨 역시 웰의 사용자였다는 점을 생각할 때, 라인골드와 스톨이 동일한 가상공동체에 대해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인터넷과 가상공동체에 대해서 스톨은 상당히 비판적이며 비관적이기도 한데, 그

  1. 일반 공중전화망을 이용한 통신회선을 일컬으며, 데이터통신에서 상대방을 호출할 때 전화기의 다이얼을 사용하여 전화를 거는 방식을 뜻한다.
  2. www.rheingold.com/vc/book
  3. 클리포드 스톨, 『허풍떠는 인터넷』, 세종서적 1996, 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