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평화체제와 평화운동(21세기의 한반도 구상 2)

 

가위눌린 한반도, 깨어나야 할 우리

 

 

정욱식 鄭旭湜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평화와 통일 관련 기사를 쓰고 있음. 저서로 『미사일방어체제』 『2003년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미군 없는 한국을 준비하자』(공저) 『한반도의 선택: 부시의 MD 구상, 무엇을 노리나』(공저) 『전쟁과 평화, 21세기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공저) 등이 있음. civil@peacekorea.org

 

 

 

요즘은 그 공포로부터 벗어나 있지만, 중고등학교 다닐 때 나는 유독 가위에 자주 눌렸다. 경험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참 묘하면서도 고통스러운 일이 가위눌림이다. 정신은 말짱한데, 몸이 말을 안 들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처음 가위눌렸을 때는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엄마가 빨리 일어나라고 야단치는 소리가 들리는데 눈이 떠지지 않으니 그 생소한 고통이 오죽했겠는가? 혼자 안간힘을 썼지만 식구들이 물리력(?)을 행사하고 나서야 비로소 일어나곤 했다. 가장 찜찜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설거지나 빨래를 하다 말고 고무장갑 낀 손으로 엄마가 내 뺨을 한대 쳐주는 것이었다. 한번은 식구가 아무도 없을 때 가위눌린 적이 있다. 아무리 소리쳐도 들을 사람도 없었다. “먼 친척 할아버지가 아무런 이유 없이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는 말이 떠오르면서 ‘이러다가 정말 죽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엄습해왔다. 계속 움직임 없는 발버둥을 치다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하나부터 열까지 셌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몸을 움직여봤다. 그러기를 몇차례, 나는 비로소 눈을 뜰 수 있었고, 흥건한 땀과 함께 ‘아 살았다’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때부터 나는 가위눌려도 혼자 일어날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물 묻은 엄마의 고무장갑을 겁내지 않게 되었으며, 언제부턴가는 가위눌림 자체로부터도 벗어나게 되었다.

내가 이런 오래 전 기억을 떠올린 이유는 오늘날 한반도가 꼭 가위눌린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전쟁의 공포가 조금씩 엄습해오면서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의식은 강한데,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나라)이 깨워줬으면 하는 마음도 들지만, 가장 중요한 미국이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어 이를 기대하기도 힘든 현실이다. 미국의 오만함과 북한의 고집스러움, 그리고 남한의 무능함 속에서 핵문제가 불거진 지 10개월이 지나도록 문제해결의 실마리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핵무기와 전쟁의 공포에 짓눌려 답답함과 짜증스러움만 더해가고 있다. 개인의 앞날도 잘 보이지 않으면 답답한 법인데, 국가와 민족공동체의 미래가 희망없이 떠돈다면 그 답답함과 불안함이야 오죽하겠는가?

불안감을 씻고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보면 답답함은 오히려 커진다. “이대로 가다간 전쟁이 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자신있게 답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 위기감은 현실로 다가오게 된다. 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대결이 지속된다면 민족공동체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노무현정부의 의욕이 ‘말의 성찬’에 불과해 보이는 것은, 미국과 자신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기반인 한국의 개혁·진보세력 사이에서 전략도 없이 부유(浮遊)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는 집권 초기 가위눌린 상태를 스스로 극복하려고 하기보다는 미국이 깨워줄 것을 기대하면서 강력한 반전여론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의 부역자로 나서는가 하면, 첫 방미무대에서는 ‘부시의 푸들’이 아시아에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굴욕적인 친미외교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외교가 명분과 자존심은 상하더라도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한다고 노무현정부는 자평하며 애써 자위하고 있지만, 이라크전 파병이나 방미에서 드러난 노골적인 친미외교가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하고 있다는 어떠한 징후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정부가 ‘미국 쪽으로 너무 많이 기울어, 이러다가 뒷감당을 못할 수도 있다’는 반성을 하고 다시 균형외교로 복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월 중순 방미외교에 대해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은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압력’만 강조했던 데에서 진일보해 6월 방일기간 동안에는 코이즈미(小泉) 총리에게 압력과 함께 대화의 중요성도 강조한 바 있다. 또한 7월 중국 방문에서는 ‘압력’은 빼고 대화의 모멘텀(momentum)을 계속 살려나가면서, 상황의 악화를 막고 호전시키기 위해 양국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노무현정부가 반성을 통한 ‘제자리 찾기’에서 비롯된 것이기보다는 북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중국측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압력→대화와 압력 병행→대화의 중요성 강조 순서로 긍정적인 변화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변화는 한편으로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강대국의 입김이 반영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숙한 외교에 대한 자기반성도 깔려 있기 때문이다.

 

 

예상된 위기

 

부시행정부가 출범한 지 달포 정도 지났을 때(2001년 3월 초), 나는 한 여성단체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2003~2004년에 한반도에 또다시 전쟁위기가 올 가능성이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필자는 그 근거로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정치외교적인 협상보다는 군사주의에 주안점을 둘 것이고,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비롯한 군사력의 획기적인 증강으로 한반도의 군사력 균형이 북한에 더욱 불리해질 것이며, 2003년까지 경수로 1기가 완공되어야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극히 적어 북한 핵사찰 및 전력 보상을 놓고 북미간의 갈등이 첨예해지는 동시에, 2003년이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가 만료되는 해라는 점 등을 제시했다. 그때 많은 참석자들은 “너무 지나친 추론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1년이 지난 2002년 3월, 2003년에 심각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경고는 남북한 및 미국의 정책담당자에게서도 나오기 시작했다. ‘햇볕정책의 전도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