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가족 안의 고통의 궤적들

이혜경론

 

 

이재영 李在榮

문학평론가. 2001년 「상실의 세계와 세계의 상실」로 제8회 창비신인평론상 당선. 현재 베를린자유대학 독문학과 박사과정. tugend21@yahoo.co.kr

 

 

 

“그대는 죽는 날까지○○○를 신랑(신부)로서 섬기고 사랑하겠는가?”–결혼식에서 “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얼마나 이 질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느냐에 상관없이, 이 질문은 우리 시대의 남녀관계를 지배적으로 조직하고 있다. 사랑의 대상을 향해 격정을 쏟아붓는 미혼자들에게 욕망의 지향점은 영원하고 배타적인 사랑이며, 이러한 사랑의 지극한 이상성은 결혼식이라는 정점을 거친 부부로 하여금 환멸과 좌절감이라는 하강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게 한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보장해줄 것으로 여겼던 관계의 안정성과 확실성은 그후에 도래한 불행 앞에 선 자에겐 지겨움과 속박으로 인식될 뿐이다. 행복에 대한 약속의 실현을 희망해도 좋으리라는 무구(無垢)한 믿음이 낳는 부정적 결과에 대해, 그러한 믿음을 조장했던 사회는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대신 불행의 당사자에 대한 처벌의 위협으로 대답한다. 그러한 입장에 처한 자에게 남는 것은, 불행 안에서의 사회적 인정과 불행 밖에서의 사회적 처벌이라는 두 가지 나쁜 선택뿐이다.

서구 종교개혁의 부산물로 도입된 앞의 결혼서약은 가본위(家本位)의 혼인개념이 당사자본위의 혼인개념으로 이행하는 과정에 의미있는 기여를 했으며, 인생을 크게 좌우하는 결혼이라는 결합관계에서 개인의 자율적 결정을 주요한 조건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진보성을 띠고 있다.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결혼이란 개인간의 사적 결합이 아니라 가족간의 공적 결합이었으며,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기존 대가족에 새로운 인원을 충원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합리적 통제가 어려운 개인적 감정인 사랑은 결혼의 이유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개인적인 특징이 배우자의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도 않았다.

이후 근대사회에 접어들어 결혼서약이 일반화될 수 있었던 사회적 조건은 자본주의적 산업화에 따른 도시 핵가족의 형성이었으며, 이는 동시에 공적 영역이 비대화되는 가운데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각각 남성과 여성의 영역으로 분리되는 과정이었다. 남자는 바깥에서 돈을 벌고 여자는 집에 머물면서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게 되었고, 따라서 여성은 사회적으로 퇴화되면서 경제적으로 더욱 확고히 남성에 종속되게 되었다. 또한 공적 영역에서 위계와 경쟁, 훈육과 강제의 성격이 강화되면서 가정은 귀가한 남성에게 휴식과 안정, 억압된 욕망의 해소를 제공하는 기능을 떠맡게 되었다. 이에 따라 엄숙함과 강인함, 감정의 억제능력, 권력 지향성, 책임의식 등이 발달된 남성과, 자애로움, 조화지향성, 발달된 감성과 유순함을 지닌 현모양처형 여성이 규범적 인간으로 간주되어 이러한 성역할에 따르는 인격교육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나아가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이 분리된 상태에서 핵가족 내의 관계가 오직 배우자들 자신의 인격적 능력에만 맡겨짐으로써, 가족 내의 갈등이 쉽게 폭력과 증오로 치닫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영원하고 배타적인 저 낭만적 사랑은 산업화된 사회의 기초로 요구되던 이러한 새로운 가족관계에 일치하는 내면적 가치였으므로 지속적으로 교육되고 권장되어왔다.

 

이혜경(李惠敬)의 소설들은 그간 한국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짊어져야 했던 성역할로 인해 초래된 개인이나 가족의 파탄과 좌절, 고통과 절망에 대한 집요한 관찰과 사색의 결과들이다. 이혜경이 그려내는 인물들은 근현대 한국의 가부장적 가족관계가 낳아온 고통의 보편적 연관 속에 얽혀 있으며, 그들의 삶이 가족이라는 단위에서 일관되게 조망됨으로써 이혜경의 전체 작품은 통일적 골격을 형성한다.

이 고통의 보편사에서 남성과 여성 가운데 어느 쪽도 특권적인 위치를 부여받고 있지 않다. 이혜경의 소설들은 여성의 고통에 특권적 가치를 부여하고 고통의 책임을 남성에서 찾으며, 따라서 문제의 해결을 기존 남녀관계를 전복하는 데에서 구하려는 흐름과는 거리가 멀다. 이혜경의 인물들은 여성이건 남성이건 사회적으로 맡겨지는 성역할의 수행의무로 인해 왜곡되고 좌절하며 고통에 빠진다. 맡겨진 성역할을 수행하는 자에게도, 수행하지 못하는 자에게도 고통은 예외없이 찾아오며, 고통을 근저에서 규정하는 것은 개인의 의식지평을 넘어선 사회적 연관이다.

『길 위의 집』(민음사 1995)의 길중은 근대적 남성상을 충실하게 좇아온 인물이다. 무위도식하는 몰락한 향반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남성의 경제활동 의무를 경시하는 유교전통에 기생하던 전근대적 남성으로서, 길중에게는 반(反)모범으로 작용한다. 대장장이의 가내공업에서 자본주의적 공장을 이루기까지 40년을 버텨온 그의 삶은 근대적 남성 1세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엄격한 노동윤리와 금욕적 생활태도, 강력한 의지로 경제적 성취를 지향해온 그는 앞에서 서술한 근대적 남성의 조건들을 넉넉하게 충족시켜온 인물이다. 효기의 탄생에 대한 그의 한없는 기쁨과 집 짓는 일에 대한 그의 집요한 정성이 보여주듯이, 길중은 자신의 노동에 기초한 경제적 성과에 대한 자부심의 정점을 튼튼한 가부장적 가족의 확립에서 찾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가족 역시 인격적 관계가 아니라 재산의 일부였으며, 따라서 아내와 자식들의 자율적 의지란 그의 사고 안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길중의 이러한 강력한 소유의식은 공적 영역에서는 성공을 안겨주었지만, 가족 안에서는 파탄을 중첩시킨다. 자신이 걸핏하면 구타해온 아내에게서 정서적 교류와 공감을 구할 길은 없어졌고, 권위적 태도로 억눌러온 자식들은 자신에 대한 적대적 의식으로 뭉쳐 있어 아무런 인격적 결속도 남아 있지 않다. 자신이 쌓아올린 경제적 성채를 존중하고 상속할 자식도 없다. 결국 소설의 끝에서 길중은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길중이 이 좌절의 원인을 배움의 부족에서 찾는 데에는 비겁함이 숨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학력이나 집안 등의 상징적 가치를 지니지 못한 채 삶을 시작해야 했던 길중에게는 경제적 성과를 통한 사회적 인정만이 유일한 자기확인의 방법이었고, 따라서 경제적 성공이 그로 하여금 그만큼 더 도취의 매력에 빠지게 했으리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당한 면이 있다.

길중이 한천이라는 소도시에서 소경영자로 살아온 반면, 「젖은 골짜기」의 화자는 대도시에서 회사원으로 살아왔다. 길중과 비슷하게 생활력이 없는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작중화자 ‘나’는 대학 졸업 후 소규모 회사의 상무직에까지 올랐던, 가장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온 사람이다. 그러나 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십수년 동안 과로에 시달려야 했으며, 경쟁적 인간관계에서 중압감을 느껴 잠적욕망에 휩싸이기도 했다. 결국 그는 회사에서 밀려나게 되었고 그간의 가혹한 노동의 결과가 “겨우 집 한 칸과 얼마 안 든 저금통장”(『그 집 앞』, 민음사 1998, 210면)뿐이라는 사실에 허망함을 느낀다. 약육강식의 ‘밀림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가장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남자들은 내면의 공황상태에 빠지고, 과로로 인해 때이른 죽음을 당한다. 지친 몸으로 귀가하는 남자들은 아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