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조남주 趙南柱

1978년 서울 출생. 2011년 문학동네소설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귀를 기울이면』 『고마네치를 위하여』 『82년생 김지영』 등이 있음. chnmjoo@daum.net

 

 

 

가출

 

 

아버지가 가출했다. 엄마의 전화를 받은 것은 퇴근길 지하철에서였다. 나는 순간 가출을 출가로 착각했다.

“응? 아버지 절에도 안 다니잖아.”

—가출하셨다고. 가, 출. 집을 나갔단 말이다.

차라리 출가했다고 하면 믿었을 것이다. 올해 나이 일흔둘. 치매 등 정신질환은 없다. 일곱살이나 어린 아내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아버지. 그렇지만 엄마가 숟가락과 젓가락과 마실 물까지 완벽하게 제자리에 놓아야 식탁에 와 앉는 아버지. 정년까지 근무하는 동안 양가 부모님 장례 이외에는 한번도 결근한 적이 없는, 삼남매가 태어나던 날도 출근했다는 아버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다며 신용카드도 만들지 않고 자동이체도 하지 않고 인터넷뱅킹도 하지 않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가출을 했단다.

뭐? 뭐라고?라고 열번쯤 되묻다가 다음 역에서 일단 내렸다. 하필 사람들이 몰리는 환승역이었다. 환승통로를 향해 질주하는 무리 사이에 끼어 한참을 떠밀려가다 겨우 빠져나왔을 때 전화는 이미 끊겨 있었다. 나는 자판기에서 차가운 캔커피를 뽑아 들고 플랫폼 구석의 빈 의자에 앉아 다시 전화를 걸었다.

“무슨 소리야? 아버지가 왜 가출을 해? 언제?”

—실은 한달이 다 돼간다.

“뭐? 근데 왜 이제까지 말을 안 했어?”

—금방 들어올 줄 알았지. 자식들한테도 남세스럽다. 이 나이에 이게 무슨 망신이니?

“가출 확실해? 납치나 실종 뭐 그런 거 아니고?”

—편지 써놓고 나갔어.

중학교 때 나도 편지를 써놓고 가출을 시도한 적이 있다. 친구네서 몰래 술을 마시다 걸려서 엄마에게 죽도록 맞은 다음 날이었다. 내가 잘못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비인간적인 대우는 참을 수 없으니 이제 나를 찾지 말라는 취지의 편지를 장황하게 썼던 것 같다. 일단 학교를 마치고 친구네 집에서 놀았다. 하지만 저녁 먹을 시간이 되자 친구 언니가 눈치를 줘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딱히 갈 데가 없었다. 동네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갔는데 마침 아무도 없기에 그냥 가출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책상에 두고 나갔던 편지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가방을 메고 구두를 들고 내 방 옷장 속에 들어가 숨었다. 그대로 깜빡 잠이 들었는데 엄마가 저녁을 먹으라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결에 옷장에서 나와 구두를 든 채로 마루에 나가 밥상 앞에 앉았다.

“구두 현관에 놓고 와라. 가방도 내려놓고.”

엄마는 태연히 말했고 나도 순순히 구두와 가방을 내려놓고 밥을 먹었다. 오빠들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평소처럼 옷을 갈아입고 TV를 보다가 잤다. 아버지도 혹시 옷장 안에 있는 게 아닐까. 낡은 구두를 들고 옷장 속에 웅크리고 앉은 아버지를 생각했다. 한달씩이나. 다리가 많이 저릴 텐데.

—여보세요? 듣고 있어? 경찰에 신고할까?

“가출도 신고를 받아주나? 내가 한번 알아볼게. 오빠들은 알고?”

—그게…… 얘기 좀 해주라. 차마 입이 안 떨어진다.

입이 안 떨어지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아, 아버지, 차라리 출가를 하시지. 속세의 모든 고통과 번뇌를 내려놓고 종교에 귀의했다면 아버지를 잠시 원망하고 오래 안쓰러워하고 말았을 텐데. 심호흡을 한번 한 후 오빠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했다. 큰오빠는 한참 대답이 없다가 알았다며 지금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작은오빠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길길이 날뛰더니 오늘은 결혼기념일이니 내일 모이자고 했다. 오빠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당장 집으로 오라고 말했다.

휴대폰을 꺼내 지하철 노선도를 확인했다. 집에 가려면 지하철을 두번이나 갈아타야 한다. 아버지는 왜 가출을 해가지고. 본가에 도착하면 아홉시, 두시간 정도 엄마에게 설명을 듣고 대책회의를 한다 치면 열한시, 다시 내 집에 도착하면 열두시 반, 씻고 어쩌고 하면 한시 반. 아, 아버지는 왜 가출을 해가지고!

 

골목 입구에서부터 청국장 냄새가 진동을 했다. 어느 집에서 이렇게 늦게 저녁밥을 먹나 했는데 우리 집이었다. 엄마는 그 와중에 잡채를 하고 고등어를 굽고 호박전까지 부쳤다. 큰오빠 내외와 작은오빠는 이미 밥을 먹고 있었고, 엄마는 식탁에 내 수저를 놓았다.

“왜 이렇게 늦었어? 얼른 손 씻고 와서 밥부터 먹어.”

지금 밥이 넘어가느냐고 물으려는데 작은오빠가 엄마에게 밥그릇을 내밀며 한그릇 더 달라고 했다. 나도 별수 없이 식탁 앞에 앉았다. 머리로는 정말 밥 먹을 기분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혀 아래로 침이 돌았다.

우리 삼남매는 어려서부터 청국장을 좋아했다. 엄마는 총각김치를 송송 썰어 아삭하게 씹히도록 하고 간 돼지고기와 으깬 두부를 넣어 아주 걸쭉하게 청국장찌개를 끓인다. 마지막으로 큰이모가 담가주는 집된장을 한숟갈 푹 퍼 넣으면 짭짤하고 구수한 맛이 살아나는데 아버지는 그 맛있는 청국장찌개를 너무 싫어했다. 쿰쿰한 냄새가 섬유 한올 한올,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도무지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야근하시는 날이 청국장찌개를 먹는 날이었는데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하신 후 한번도 엄마의 청국장을 먹지 못했다.

찌개를 숟갈 가득 퍼서 밥에 슥슥 비볐다. 매끄럽고 뜨거운 밥알은 씹을 새도 없이 목구멍으로 훌렁훌렁 넘어갔고 배 속이 뜨끈해지며 머리에서 땀이 났다. 청국장 맛이야 말할 것도 없고 잡채는 이미 다 식었는데도 당면이 불어 끊어지지 않고 혀에 착착 감겼다. 분명 나도 같은 김치를 가져다 먹고 있는데 이상하게 본가에서 먹는 김치가 더 맛있다. 그렇게 정신없이 밥을 다 먹고 나니 이미 열시가 넘었다.

밥을 먹을 때는 명절을 맞아 모인 것처럼 화기애애했는데 거실에 둘러앉으니 침울해졌다. 올케언니가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다가 커피를 타오겠다며 주방 쪽으로 가자 작은오빠가 낮은 목소리로 큰오빠를 나무랐다.

“형은 무슨 좋은 일이라고 형수를 여기까지 데려와?”

“우리 가족 일인데 형수도 알아야지. 넌 그럼 제수씨한테 얘기도 안 하고 왔냐?”

“당연하지. 오늘 결혼기념일이라 오랜만에 둘이 외식 좀 하려고 준이 처가에 보내놨는데. 준이 엄마 지금 혼자 술 마시고 있으니까 얼른 얘기 끝내. 나 빨리 가야 돼.”

“그런 놈이 밥을 두그릇이나 먹냐?”

오빠들을 진정시키고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엄마는 길게 한숨부터 내쉬었다.

“지난달 17일에, 그러니까 나 계모임 있던 날. 나갔다 왔더니 냉장고에 쪽지가 붙어 있더라고.”

엄마는 엉덩이를 붙인 채 뭉그적뭉그적 TV장으로 가 서랍을 열고 쪽지를 꺼내왔다.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니. 이제라도 내 인생 살고 싶다. 나를 찾지 마라. 저축은행 160만원은 가져간다. 미안하다.’

큰오빠가 뺏듯이 쪽지를 낚아챘다. 작은오빠가 머리를 들이밀며 소리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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