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갈등과 불신의 시대에 남북현대사를 다시 읽는다

 

 

김성보 金聖甫

연세대 사학과 교수. 『역사비평』 편집주간. 주요 저서로 『남북한 경제구조의 기원과 전개』 『화해와 반성을 위한 동아시아 역사인식』(공저) 등이 있음. kimsbo@yonsei.ac.kr

 

 

 

1. 역사문제가 갈등의 원천이 되는 사회

 

국제적으로 냉전이 해체되고 안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진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에는 상호 불신과 갈등의 골이 깊다. 어쩌면 냉전해체와 민주화로 인해 오히려 정치사회적 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하겠다. 갈등이 없으면 발전이 있을 수 없지만, 그 갈등의 정도가 지나치면 내적 발전의 에너지를 소진시켜 그 사회의 퇴행과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다. 현재 한국사회의 갈등은 도를 넘어선 느낌이다.

갈등의 한복판에는 역사인식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과거를 성찰하여 더 나은 미래를 전망하는 혜안을 얻고자 함이 역사학의 본령이다. 그런데 왜 오늘날 역사의 담론은 갈등을 치유하는 지혜의 샘이기보다는 갈등을 증폭하는 진앙지가 되고 있는가? 친일반민족행위,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 민주화운동과 의문사사건 등 과거사를 정리하기 위해 국회 차원에서 합의가 이루어져 법률에 의거한 위원회들이 만들어졌고, 광범한 조사가 진행되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과거사 정리 자체에 대한 불신과 회의적인 시선이 여전히 뿌리깊다. 이대로라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의 취지대로 ‘진실과 화해를 통한 국민적 통합’이 과연 가능할지 우려된다. 한편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의 편향을 바로잡겠다고 뉴라이트측에서 최근 별도의 교과서 시안을 발표했지만, 역사를 균형적으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역편향을 드러내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탈근대담론이 유행하면서 민족·민중 중심의 근대적 역사인식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밖으로 눈을 돌리면 일본의 우경적 역사해석과 교과서 왜곡,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가 동아시아의 역사갈등을 장기화하는 중이다. 이러니 역사분쟁, 심지어는 역사전쟁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동아시아의 평화, 한국사회의 통합을 위해 역사문제를 차라리 접어두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인해 역사를 논하는 것 자체를 외면하는 대중적 현상도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를 덮어둔다고 갈등 자체가 해소될지는 의심스럽다. 이 모든 문제들이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 냉전이라는 국제적 환경 속에서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후대에 이월되어 누적된 산물이라는 점에서, 이 시점에 또 이 문제를 덮어버린다면 장차 갈등의 양상이 더 심각해질 것이다. 속으로 썩지 않게 이제는 어떤 식으로든 드러내어 진지하게 논의하고 갈등을 치유할 지혜를 찾을 때이다.

 

 

2. 탈근대론적 역사인식 등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최근 한국근현대사에 대한 기존의 역사인식을 비판하면서 다른 방식의 접근법을 제시하는 두툼한 책들이 나왔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박지향·김철·김일영·이영훈 엮음, 책세상 2006)과 『근대를 다시 읽는다』(윤해동·천정환·허수·황병주·이용기·윤대석 엮음, 역사비평사 2006)가 대표적이다. 이 책들의 편집진은 공통적으로 지금까지 주류를 형성해온 한국근현대사 연구경향을 민족주의와 민중주의 또는 좌파민족주의로 규정하며 그 도식성을 비판한다. 제시하는 대안은 두 책이 서로 다른데,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는 반공주의와 성장주의를 축으로 한 뉴라이트의 역사인식과 탈민족·탈민중을 주창하는 탈근대론의 역사인식이 동거하고 있다. 이 동거를 불편해하는 탈근대론적 역사학자들이 따로 모여 새로 펴낸 책이 『근대를 다시 읽는다』이다. 이 책은 뉴라이트와 민족·민중 중심의 역사인식을 함께 비판한다. 양쪽 모두 “민족과 국가를 나눠 가진 채 또는 공유한 채 근대를 특권화하는 지적 실천의 일환”임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 대안으로 『근대를 다시 읽는다』의 편집진은 국가와 시장의 폭력에 의해 지배되는 근대적 삶을 성찰하고 그 극복을 추구한다.

뉴라이트측은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집착하고 독재의 역사를 합리화하는 데 매몰되어 있다. 과연 그런 논리로 민주주의의 시대에 걸맞은 역사인식, 남북화해와 분단극복의 길을 제시하는 역사인식이 정립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전히 과거회귀적이며 이분법적인 냉전의 역사인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뉴라이트의 논리가 과거회귀라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라면 탈근대론적 논리는 현실의 요청을 무시한 채 미래로 너무 멀리 나아간 점에서 시대착오적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근대에서 탈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가 아니라, 특수 근대에서 보편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속해 있다. 식민지 피지배와 분단이라는 한국적 특수성 때문에 주권회복과 통일 같은 워낙 거대한 담론이 사회의 의제를 압도해온 터라 개인의 인권, 자유, 개성, 다양성 존중 같은 좀더 보편적인 근대적 가치는 주목받지 못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는 분단극복 같은 한국적 특수 가치와 더불어 개인의 인권과 자유 등 인류 보편의 가치를 함께 실현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역설적으로 현재 한국 탈근대론자들의 논의는 본격적으로 근대를 해체하기보다는 한국적 특수 근대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류 보편의 근대적 가치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1 탈근대론의 또다른 문제점은 거대한 신자유주의의 물결,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양극화, 미국을 포함한 강대국의 자국중심적 외교 등 현재 한국사회가 국내외로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설득력있는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탈근대론은 비판의 무기이지 대안의 무기가 되지 못한다.

앞의 책들과 함께 한국근현대사를 새롭게 이해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주는 책으로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신기욱·마이클 로빈슨 엮음, 도면회 옮김, 삼인 2006)과 『대중독재』(임지현·김용우 엮음, 책세상 2004~5)도 주목된다. 식민지근대성론은 서구적 근대를 근대성의 유일한 지표로 설정해놓고 한국의 근대성은 왜곡되거나 미실현된 상태로 파악하는 경향을 비판하면서, 식민지 지배를 통해 형성된 근대성 역시 서구적 근대와 대비되는 또다른 근대의 유형이라는 견해이다. 이는 근대성 자체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뛰어넘어야 한다는 탈근대론의 연장선상에 있다. 대중독재론은 파시즘과 나찌즘에 대중이 열광했던 사실에 착안하여 근대적 독재가 강제보다는 동의에 기초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견해이다. 『대중독재』 편집진은 박정희독재도

  1. 졸고 「근대의 다양성과 한국적 근대의 생명력」, 『역사비평』 2001년 가을호, 189~9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