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혜주 丁惠珠

1963년 전남 광주 출생. 1988년 『노동문학』에 ‘한백’이라는 필명으로 「동지와 함께」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강·섬·배

 

 

스무살 시절 나는 강물에 살짝 발을 디뎌보고 물이 너무 차갑다고 울음을 터트리는 계집애이고 싶지는 않았다. 이땅의 흙과 풀꽃들, 그 숨결을 닮아 쉼없이 흐르는 물줄기처럼 후미진 황톳길을 돌아 산야를 보듬고 막힘없는 물살로 시퍼렇게 굽이쳐, 이윽고 바다에 이르고 싶었다.

 

나는 강가에 서 있다. 강물은 검게 굽이치고, 바람은 내 짧은 머리칼을 갈가리 날린다. 잿빛 뼈대를 드러낸 활엽수림 사이로 새떼들이 날아오르고, 잡풀들은 메마른 몸을 뒤척인다. 부서진 것들이 가슴속에서 모래알처럼 서걱댄다.

 

강가 솔숲 사이로 난 오솔길에는 흰 눈이 그대로 쌓여 있다. 인기척에 놀란 새들이 푸드득 날아오를 때마다 훤칠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키큰 소나무들. 솔숲을 지나면서 강물은 조금씩 물길이 휘어든다. 굽이도는 물길은 아득히 끝없이 이어진다. 그 물길을 거슬러올라가면 어느 골짜기엔가 시린 물방울을 머금은 잔빙을 만날 수 있을까. 서른살의 강. 스물네살의 강. 열일곱살의 강…… 강은 거꾸로 거슬러 흐르며 추억들을 삶으로 다시 띄워 보낸다. 나는 순백의 눈을 밟으며 상류로, 상류로 거슬러올라간다.

 

갑자기 길이 뚝 끊긴다. 강기슭에 잇대어 있던 솔숲은 조금씩 강심을 향해 돌출하여 작은 곶을 이루며 끝나고 있다. 아니, 솔숲이 돌출한 것이 아니라 물길이 솔숲을 버리고 저 혼자 굽이도는 것이다. 길이 끊기고, 한정없이 물길을 거슬러올라가보리라던 내 희망도 끊겼다. 내가 선 자리는 작은 곶, 강 한가운데 섬처럼 떠 있다.

 

길이 끝나버린 강기슭에는 낡은 조각배 한 척이 누워 있다. 틀어지고 빛이 바랜 몸체, 바람에 삐꺽거리는 뼈마디…… 조각배의 바닥에는 물이 고여 있고, 물웅덩이에는 살얼음이 박혀 있다. 그 얼음 속에 추억처럼, 빨간 단풍잎 한 장이 결빙되어 있다. 썩어서 흙에 스며들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밀어닥친 추위로 얼어붙어버린 것일까. 단풍잎의 색깔은 너무나 붉고 선명해서, 마치 조각배의 심장 같다.

 

 

금탑가든

어스름이 가든의 윤곽선을 수묵화처럼 지우며 빈 들녘으로 빠르게 내려앉고 있었다. 금탑가든은 먹빛이 번져가는 대숲을 배경으로 검푸른 강물을 굽어보고 있다. 조경공사를 마무리짓지 못한 탓인지 가든의 정원은 황량해 보인다. 어둠이 흥건히 고인 주차장에는 금탑가든의 상호가 찍힌 승합차가 한 대 주차되어 있을 뿐, 사람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다.

문득 어스름 속으로 잦아들던 가든이 소스라치듯 깨어난다. 이층 거실이 하얗게 밝아지고, 지붕 위 네온탑과 건물의 윤곽선을 두른 전구들이 순식간에 색색깔의 불빛을 켜든다. 가든의 문이 열리더니 초로의 여인이 마당으로 걸어나온다.

“오메! 추운디 뭘라고 허구헌 날 밖으로만 싸돈당가?”

마당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자 여인은 걱정스런 기색으로 다가온다. 마당에 놓아기르는 날짐승들을 거두려는 참인지 쌀겨가 든 오가리를 들고 있다.

“밥 묵어야제? 혼자 밥 묵기도 징했는디, 고모가 있은께 그래도 낫구만.”

닭장 앞에 서서 구구구, 모이를 흩뿌리며 올케언니는 한숨을 내쉰다.

“오빠는 오늘도 늦을란갑서. 밤낮 부동산업자다, 시청 공무원이다, 만나믄 술타령이제. 그나저나 땅이나 빨리 팔려야 쓸 것인디, 가든이라고는 가물에 콩 나데끼 손님 구경도 못 허겄고 은행 빚은 쫄리고…… 땅 깔고 앉아 있으믄 뭐 헐 것이여! 땅 거지가 따로 없제.”

드ᄃᆞᆯ강 일대가 유원지로 개발되면서 사촌오빠들이 수십억대의 땅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은 몇년 전부터 듣고 있었다. 15년 전인가 젖소를 길렀다가 망한 뒤로 버려둔 초지가 갑자기 금값으로 치솟은 것은, 마이카 붐으로 인근 도시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갑자기 늘어난 행락객 때문이라고 했다.

“원래는 저그 갈대밭 건너편에 5층짜리 모텔을 지슬라고 했제. 근디 아이엠에프 맞아서 은행대출은 안되고, 그나마 빚으로 지은 가든까정 손님이 뚝 끊어지니 워쩔 것이여. 땅을 팔라고 내놨는디, 아! 나서는 작자마다 값을 삼분지 일로 내려치니 기가 막힐 노릇이제. 방애실 자리도 새 집 안 지슬라믄 헐기라도 해야 쓸 것인디, 아조 구신 나오게 생겼고……”

주방에 들어가서도 구구절절 이어지는 올케의 푸념을 나는 말없이 듣고만 있다.

낮에 손님을 치렀는지 올케가 차린 밥상에는 제법 반찬이 걸다. 붕어찜, 홍어회, 파김치와 동치미, 물미역에 호박전, 메추리알이 놓여 있다. 식탁 위 가스레인지에는 꿩탕이 든 뚝배기까지. 하지만 나는 겨우 호박전 한개를 집어서 꾹꾹 되새김질하듯 씹고 있다. 그나마 명치에 걸려서 내려가지 않는다.

“워째, 손님들이 먹다 남은 것 줘서 그런가아?”

동치미 국물만 마시는 나를 보고 올케는 미안한 기색이 된다.

“아뇨. 속이 안 좋아서……”

나는 도리어 올케에게 미안해진다. 이곳에 온 첫날 사촌오빠는 닭을 잡아주었다. 솔잎칡닭이라고 우리 집 명물이어야. 토종닭에다 깨끗이 씻은 솔잎하고 칡을 압력솥에 같이 넣고 한 20분 푹 곤 것이여. 살코기를 찢어서 기름소금에 찍어 먹는데, 육질이 쫄깃하고 향긋한 것이 신선했다. 맛나제? 젤로 큰 놈으로 잡았은께 많이 묵소. 오빠 내외가 번갈아가며 권하는 바람에 다리 두 쪽을 다 먹은 나는 속이 더부룩해서 한밤중에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토해내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몇개 되도 않는디, 무담시 손에 찬물 묻힐 것 없어.”

설거지할 그릇들을 챙기면서 올케는 내게 손사래를 친다. 환갑을 바라보는 올케언니에게 시누이 대접이라니. 행주로 상을 훔치다 말고 나는 설거지하는 올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희끗희끗해진 귀밑머리, 주름살이 자글자글한 얼굴, 허리 아래로 투덕투덕 불거진 뱃살, 올케의 몸을 휩쓸고 간 세월의 흔적들.

나는 올케의 새색싯적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내가 아홉살 땐가 어느 해 여름에 사촌오빠네 부부는 서울 우리 집으로 신혼여행을 왔었다. 그들은 장판을 들추면 빈대가 기어나오는 우리 집 뒷방에서 사나흘간 머물렀다. 한여름이었는데 새색시는 초록색 저고리와 다홍치마를 입고 땀을 뻘뻘 흘렸다. 화장이 들뜬 얼굴색은 어찌 그리 검은지, 검은 피부 때문에 원색의 한복이 더 촌스럽고 칙칙해 보였다. 오빠는 아버지에게 형들이 자기 앞으로 된 땅을 떼먹고 주지 않는다며 형제들을 싸잡아서 욕했다. 부조 들어온 돈이 빈다면서 자기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 그 옆에서 별로 예쁘지도 않은 색시는 촌스러운 한복을 입고 한쪽 무릎을 세운 채 그린 듯이 앉아 있었다. 사흘 내내 오빠는 색시를 놔두고 혼자 휭하니 나가서 밤늦게 술냄새를 풍기며 돌아오곤 했다. 나는 색시가 너무나 가여웠다.

이십년도 훨씬 더 넘은 그 기억이 지금도 선명한 것은 아마 당시 그녀의 모습이 아홉살 소녀의 결혼에 대한 관념을 여지없이 배반한 것이었기 때문이리라. 신부는 웨딩드레스처럼 하얗고, 신혼여행은 핑크빛이어야 한다는…… 내가 이곳에 처음 도착하던 날 올케는 나를 바라보며, 오메! 그때는 애기였는디, 참 세월 빠르요잉 했다. 내가 올케의, 여자로서의 인생의 첫 장면을 기억하듯이, 올케 역시 까만 눈동자를 말똥거리던 말라깽이 소녀를 기억하고 있었던 걸까.

“커피 한잔 마셔야제?”

올케가 가스레인지에 물주전자를 올려놓으며 나를 돌아본다. 올케의 얼굴 어디에도 옛날 그 가엾은 새색시의 흔적은 없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녀의 인생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이 집의 물건은 대부분이 새것이다. 이층 거실에는 500리터짜리 냉장고와 29인치 텔레비전과 백만원대의 오디오가 놓여 있다. 아침마다 고급 캐주얼복에 최고급 지프차를 몰고 나가는 오빠의 모습은 지방유지로서의 품격마저 엿보인다. 오빠는 집과 가전제품을 새로 개비한 마당에 마누라까지 갈고 싶어하지 않을까. ‘방애실떡’에서 ‘가든떡’으로 호칭이 바뀐 올케,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아무런 경제적 실권도 없이 한식집의 주방아줌마로 늙어갈 여생은 아닌지.

“남편이 징허게 이해심도 많고 자상헌갑서. 몇날 며칠 혼자 여행도 허고 얼마나 좋을까아잉!”

물 묻은 손을 행주에 닦으며 올케는 정말 부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씁쓸하게 웃기만 한다.

 

내가 묵고 있는 방은 금탑가든의 아홉개 방 중에서 가장 귀퉁이에 있는 작은 방이다. 둥근 갓을 씌운 백열등과 천장에 매달린 환풍기, 가스레인지가 연결된 큰 식탁, 카운터로 연결된 인터폰과 방석 몇개. 내가 온 뒤로 가져다놓은 이불 한 채를 빼면, 연인들이 분위기있는 식사와 밀회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방이다.

온종일 보일러를 넣어둔 방안은 따뜻하고 건조하다. 커피잔을 식탁 위에 놓고 나는 창문을 연다. 창호지를 바른 격자무늬 덧창을 열면 통유리창 너머로 넘실대는 어둠. 시골의 밤은 초저녁에도 칠흑처럼 정밀하다. 해가 지면 나는 대책없이 방에 들어앉아야 한다. 창문 쪽으로 밀어붙여놓은 식탁에 걸터앉아서 나는 오래도록 창밖의 어둠을 응시한다. 창에 비친 내 얼굴과 창 저편의 어둠, 그리고 어둠속에 깜박이는 몇낱 불빛들…… 불빛들은 가깝게도 멀게도 보인다. 가까운 불빛은 강 한가운데 솔밭유원지의 노점이 밝힌 등불이다. 먼 불빛은 강 건너편 방죽 너머 들판 끝자락에 점점이 엎드린 마을의 불빛. 아스라이 뜬 인가의 불빛들이 하나둘 사위다가 이윽고 다 잦아들면 사방은 먹물을 뿌린 듯이 캄캄하고 소리만이 가득하다. 빈 들녘을 달리는 칼바람 소리, 뼈를 가는 듯한 물소리, 뒤란에 뒤척이는 대숲 소리, 먼 산의 솔바람 소리…… 그리고 정적. 바닥 없는 정적 속에 자울다가 문득 눈을 뜨면 다시 물소리가 되살아난다.

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댄다. 창가를 서성이다 돌아서는 차디찬 달빛, 어둠속에 뜬 내 얼굴이 산산이 부서진다. 문득 발치에 뭔가가 거치적거린다. 검은 컴퓨터 가방. 이 방에 들어온 첫날 식탁 밑에 밀어넣고 나서 한번도 꺼내보지 않은 그것. 집을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챙겨들고 나오는 건 그 노트북 컴퓨터였다. 여자가 집 나갈 때 애를 끼고 나가는 것과 애를 팽개쳐두고 나가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 하시더라는 시어머니. 그 말을 전하면서 남편은 말했다. 넌 애 대신 컴퓨터를 끼고 가는 여자지! 나는 입술을 지그시 물며 컴퓨터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녹슨 밥주발처럼 식탁 위에 덩그러니 올라앉은 컴퓨터는 여기저기 흠집이 나 있다. 운이 좋으시네요. 다행히 하드는 손상이 안됐어요. 액정화면만 갈면 되겠어요. 나는 컴퓨터의 몸을 가만히 쓰다듬는다. 왼쪽 모서리가 찌그러진 상처투성이 내 컴퓨터.

 

문득 잠이 깼다. 방안이 환하게 밝다. 하지만 아침은 아니었다. 흐트러진 내 숨소리. 바람이 몹시 부는지 유리창이 덜컹거린다. 어디선가 자명종 소리 같은 신호음이 울린다. 인터폰이다. 벽에 붙은 송수화기를 들자 오빠의 음성이다. 작은아버지 전화여. 카운타로 돌려놨은께 받아봐라. 방문을 열자 복도의 어둠이 왈칵 몰려든다. 신발을 찾아 신고 카운터로 가서 송수화기를 들자 끙, 하는 앓는 듯한 아버지의 습관적인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낮에 전화했더니 없더구나.”

“………”

“우산리 선산에는 가봤냐?”

우산리! 순간 현기증처럼 스치는 선연한 주홍빛. 낮은 토담 위로 드리운 저 유월의 석류꽃……

“날마다 밖에 나간담서 거그도 안 가보고 뭐했냐?”

“………”

“할머니한테 꼭 가봐야 쓴다. 내가 요즘 꿈자리가 뒤숭숭해야. 자꼬 어머니가 보인다 마다. 할머니가 너를 젤로 이뻐 안 했냐? 항차 봄 되믄 어머니를 한번 뵈러 가야 쓰겄다.”

아버지는 뒤숭숭한 꿈자리 끝에 내가 이미 여러번 들은 이야기를 또 꺼내신다. 몇년 전 할머니 묘를 이장할 때 보니 묫자리에 물이 들어서 탈골이 안되었더라, 머리카락과 한쪽 볼이 시커멓게 썩지 않고 있어서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다. 그 때문에 내가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한 것 같다…… 아버지는 어쩌면 지금의 내 처지가 조상 봉제사를 잘 모시지 못한 탓이라고 여기시는 걸까.

“올 시제는 일가친척 다 불러서 정식으로 모셔야겄다. 아랫것들한테만 맡겨논께 영판 마음이 안 놓인다 마다. 긍께 너도 할머니한테 꼭 가봐야  써.”

당부조이던 아버지의 음성이 갑자기 버럭 커졌다.

“뭣 났다고 전화헌디 옆에서 고시랑고시랑해쌓는가?”

다음 순간 수화기 너머로 어린애처럼 팩 토라진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외손은 핏줄이 아니간디? 우리 엄마, 아버지 산소도 가봐야제!”

“허, 참! 니 엄마가 저러고 노망기가 심해진다 마다. 인자는 뭐든지 나하고 똑같이 헐라고만 하니……”

아버지가 한숨을 내쉬는 사이에도 엄마의 고시랑거리는 소리는 희미하게 이어진다.

“동신 가믄 우리 학교에도 가봐야제. 거그 현관에 내가 쓴 붓글씨가 걸렸어야. 아는 것이 힘이다. 지·덕·체……”

“아이고! 자네 저리 좀 가소, 저리 가!”

“그래. 나 갈라요! 영산포 우리 고모 집 가서 살란께 나 보내주쇼!”

수화기 너머로 생생하게 들려오는 두 양주의 말다툼을 나는 입술을 지그시 문 채 듣고 있다.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도 그것은 내게 잔잔한 고통을 불러일으킨다. 불을 켜야지. 카운터의 전원 스위치가 어디 있더라. 하지만 내 손이 전원 스위치를 더듬어 찾기도 전에 다시 목청을 가다듬은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온다.

“이 참에 우산리 가믄 선산지기 송가한테 말 좀 전해라. 봄 되믄 내가 한번 갈 것인게, 멧등에 잣나무 가지도 치고 봉분의 흙도 두둑하게 덮어두라고. 비석에 먹물도 바래기는 했겄다마는, 그것은 내가 가서 쓸 것인게 내비두고. 설쇠믄 할머니 제앙날도 곧 돌아온께, 니가 간 김에……”

귀가 어두우신 아버지는 일방적으로 같은 말을 몇번이고 되풀이 당부하신다. 나는 어둠속에 서서 아버지의 당부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며 예, 예, 형식적인 대답을 하고 있다. 문득 아버지의 음성이 낮고 긴한 어조가 된 것은 그 순간이었다.

“귀상이한테는 니가 소설 쓰는디 취재헐라고 며칠 묵는다고 말해뒀다.”

“………”

무언가 더 덧붙이고 싶으신 듯 몇초간의 망설임 끝에 아버지는 전화를 그냥 끊으셨다. 어둠의 심부로 한없이 빨려드는 듯한 신호음. 나는 둔기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다. 아버지가 입안으로 삼킨 말은 무엇이었을까. 혹여라도 이혼했단 말은 하지 말어. 아버지는 내가 너무 솔직할까봐 염려스러우신 거다. 하긴 아버지에게 자식들은 말년에 남은 유일한 자부심이니까. 그 많은 재산 다 날렸어도 자식복 하나는 있어서, 자식들이 전부 혼자서 대학 공부하고 시집 장가 가서 잘살고 있다는 자랑. 내 이혼은 아버지의 그런 자부심에 상처를 입힌 것이리라. 그렇다고 해도, 아버지가 내 여행에 대해서 둘러대신 명분이 소설 취재라는 건 얼마나 당혹스러운지. 휴양차 왔다든지, 달리 둘러댈 이유도 없지는 않았을 텐데……

복도는 검은 물속처럼 캄캄하다. 나는 어느 물고기의 창자 속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른다. 할딱이는 아가미로 새어드는 차디찬 달빛, 물살에 찢긴 갈대밭 위로 몸을 누이는 바람소리.

 

 

드ᄃᆞᆯ강

나는 날마다 강가에 나와 강물을 바라본다. 강물은 얼어붙어 있다. 얼어붙은 강은 시간의 흐름을 정지시키고, 등골까지 이른 차디찬 한기로 내 영혼을 마비시킨다. 잎을 벗어버린 나무들은 강물을 빨아들이기를 거부한 채 잠들어 있다. 풀린 날도 강물은 마치 고여 있는 것 같다. 바람이 불면 종종 거슬러 흐른다는 느낌마저 든다. 맑은 날이면 강물은 무너져내리는 햇살에 사금파리 같은 잔물결로 반짝인다. 강물은 밝은 파랑이 되고 마른 풀들은 반짝이고 수면을 건너온 바람은 갈댓잎 끝에서 누워 잔다. 하지만 대부분 날은 흐리고 해는 얼음에 갇힌 꽃처럼 창백하다. 노을도 없이 해가 지고 땅거미가 스멀거리면 강물은 어슴푸레하게 풀어진다. 빛과 어둠 사이에 발이 들린 날짐승들이 부산해진다. 먹물처럼 검어지는 강물, 엷은 달빛이 강물에 녹아든다. 어둠이 깃들이면 그제서야 물소리가 들린다.

이 강의 이름은 드ᄃᆞᆯ강이다. 지도에 나오는 공식 이름은 지석천(砥石川).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모두 드ᄃᆞᆯ강이라고 부른다. 이곳에 온 후 처음 이삼일 동안 나는 낯선 두려움 때문에 다리 위에만 서 있었다. 2차선의 아스팔트 차도와 벽돌색 잔돌이 박인 인도를 양옆에 갖춘 지석교는 상당히 높아서, 다리 위에 서면 드ᄃᆞᆯ강 일대의 낮은 구릉과 산자락에 안긴 마을 들, 드넓은 평야를 가로지르는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온종일 다리 난간에 기대어 강물을 굽어보았다.

사나흘 후에야 나는 다리를 건너서 강기슭으로 내려갔다. 강 둔치의 비탈진 자투리땅에 흔적처럼 남아 있는 채마밭을 가로지르고 잡목림과 갈대밭을 지나 강기슭에 이르자 시린 물소리가 들렸다. 발 아래 잦아드는 잔물결, 물결에 씻겨 하얗게 뿌리를 드러낸 갈대와 마른 풀의 잔해들이 발치까지 밀려왔다. 몸 전체를 강물 위로 비스듬히 기울인 채 여윈 가지들을 수면에 드리운 버드나무, 물에 씻겨 백골처럼 드러난 버드나무 밑둥치에 앉아 나는 쓰러진 갈대밭과 갈대밭에서 날아오르는 검은 새떼들을 바라보았다.

지리에 익숙해지자 나는 차츰 용기가 생겨서 제법 멀리까지 걷기 시작했다. 새벽 서리에 반짝이는 풀덤불을 밟고 나가서 온종일 강가를 거닐다가, 저물어 어둑해지면 검누른 갈대밭에 무너지는 긴 그림자를 끌고 돌아오곤 한다. 내 바짓단에는 늘 강가의 젖은 모래흙과 마른 풀의 잔해가 묻어 있다.

강기슭을 따라 걷다가 지치면 나는 솔밭유원지의 평상에서 다리 쉼을 하곤 한다. 솔밭 사이로 어지럽게 들어선 식당들은 비수기라서 대부분 문을 닫았다. 눈석임물을 뒤집어쓴 노점의 평상들만이 강물 위로 반쯤 몸을 드리우고 있을 뿐이다. 평상 끝에 앉으면 바로 발 아래 강물이 넘실거리고, 내 몸은 아스라한 어지러움으로 강물에 떠 있다. 바람이 불면 평상 기둥에 설치해놓은 선풍기의 날개가 저 혼자 빙글빙글 돌아가고, 색색깔의 꼬마전구를 매단 전깃줄도 덩달아 흔들린다. 나부끼는 건 깃발도 바람도 아니고 마음이라던 누군가의 말, 내 마음에도 물살이 인다.

물새가 강물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순간이면 강 한가운데 드리운 구름다리의 물그림자도 놀란 듯 푸드덕 출렁인다. 물그림자의 부드럽게 풀어진 윤곽선이며 일렁이는 물무늬는 실제의 구름다리보다 훨씬 더 고혹적이다. 세월의 깃을 털며 조용히 삭아가고 있는 구름다리…… 어느 날인가 나는 구름다리에 이끌려 철조망이 쳐진 입구까지 다가간 적이 있었다. ‘이 구름다리는 노후되어 추락 등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통행이 매우 위험하여 폐쇄하고 출입을 금지하오니 통행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녹슬고 글자가 희미해진 통행금지 표지판 옆으로 날카롭고 촘촘한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었다. 언제부터 있던 다리일까. 언제 폐쇄되었을까. 나는 머뭇머뭇 다리를 살펴보았다. 다리는 굵은 로프와 철선으로 버티게 되어 있는데 상판에는 나무판자를 가로로 댔다. 거미줄이 무성한 난간, 이가 빠진 것처럼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나무판자, 허공에 가까스로 걸린 외줄기 밧줄! 문득 귓속에 무언가 속살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울음은 이내 사라졌지만, 나는 홀린 것처럼 구름다리 주변을 오랫동안 서성거렸다.

 

나는 오늘 강을 끼고 하얗게 뻗어 있는 방죽길을 따라 강물을 거슬러오른다. 방죽길에는 키큰 미루나무들이 까치집을 머리에 이고 서 있다. 하늘의 푸르름을 온통 들이마시기라도 할 듯 올곧게 뻗어오른 나무들, 햇살이 방죽길 저 끝에서 눈부신 소용돌이를 그리며 흩날리고 있다. 문득 어디선가 푸르른 내음이 불어온다. 푸르른 내음은 휘어도는 강의 저 위쪽 상류로부터 불어온다. 새잎이 향기로운 아카시아숲, 파문처럼 잇따라 퍼져오는 등꽃의 향기, 바람이 불면 잎사귀들이 파도치며 뒤집히던 담쟁이덩굴…… 이 물줄기를 거슬러올라가면 흰 블라우스에 푸르죽죽 풀물이 든 단발머리 소녀를 만날 수 있을까. 한번도 가보지 못한 거리와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생이 미지의 호기심이고 무한한 동경이던 그때, 그 꽃시절로 거슬러올라갈 수 있다면…… 문득 차갑고 아픈 바람이 불어왔다. 눈앞을 막아서는 덤불숲. 가시딸기가 우거진 덤불숲은 괴괴함이 감돈다. 그 끝에 보이는 무덤 하나.

방죽길 건너편은 강변 국도다. 나는 이제 국도의 갓길을 따라 물줄기를 거슬러올라간다. 강과 비슷한 높이에서 시작된 국도는 점점 높아지면서 강과 멀어지고 갓길의 폭도 좁아진다. 강과 내가 걷는 갓길 사이에는 활엽수림이 빽빽이 들어차고,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검푸른 강물이 보인다. 가끔씩 대형트럭들이 옷깃이라도 챌 듯 무서운 속도로 옆을 지나친다. 트럭들을 피해 나는 갓길과 비탈진 활엽수림 사이에 설치된 노란 안전석 위로 올라선다. 안전석 위를 두 걸음 걷고 한 걸음 건너뛰며 걷는다.

드ᄃᆞᆯ강 유래 비석을 발견한 것은 구름다리 조금 못 미쳐서였다. 무궁화 무늬가 돋을새김된 타원형의 화강암을 떠받친 검은 판석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어 있었다. ‘이 강은 예부터 명경지수와 같이 깨끗하여 나주인의 유일한 식수원과 농업용수로 이용하기 위해 고려 말엽 인근 주민들의 천신만고의 역사로 보를 축조하였으나 홍수의 범람으로 붕괴되어 실의에 노심초사하던 중 당시 고을 수령의 현몽에 백발도사의 가르침에 따라 마음이 곱고 효성이 지극한 처녀를 제물로 수장 보를 쌓은 후부터는 홍수와 재해의 피해를 면하고 혜택을 누려오면서 한많은 드ᄃᆞᆯ 처녀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드ᄃᆞᆯ강이라 불리어오고 있어 지금도 비가 올 때나 강물이 보에 넘칠 때는 애처로운 드ᄃᆞᆯ처녀의 애곡이 들린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드ᄃᆞᆯ강. ‘드ᄃᆞ다’는 ‘디디다’의 옛말, ‘드ᄃᆞᆯ처녀’는 밑에 고여서 딛고 서는 처녀라는 뜻일까.

문득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귀신이야기 해주끄나? 정전이 된 날 밤 나를 놀리려고 으스스 목청을 낮추던 그녀. 우리 고향에 드ᄃᆞᆯ강이라고 강이 하나 있는디, 해마다 사람을 하나씩 잡아묵어야. 처녀도 잡아묵고 총각도 잡아묵고. 비가 많이 온 날 한밤중에 가만히 들으믄 강물이 드ᄃᆞᆯ드ᄃᆞᆯ 운다.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안 무섭냐? 묻다가 제풀에 까르르 웃어버리던 그녀.

널 만나야 해! 널 찾아내겠어! 때마침 국도 끝에서 올라오는 버스를 향해 내 마음은 급류처럼 쏟아진다. 한순간 버스가 날카로운 경보음을 울리며 나를 스쳐간다. 나는 안전석에 주저앉고 만다. 안전석에 주저앉아서 전설이 새겨진 비석을 그저 망연히 바라볼 뿐이다. 전설은 이 강물과 비옥한 농토에 깃들인 인간의 역사를 되새기게 한다. 모든 노동의 결실을 순식간에 휩쓸어버리는 강물의 범람과 그에 맞선 인간들의 투쟁, 처녀 수장이라는 제의적 절차. 공동체의 구원은 마음이 곱고 효성이 지극한 처녀, 가장 순정한 영혼을 희생양으로 필요로 했던 것일까. 나는 강물을 바라본다. 몇천년간 고운 모래와 생생한 흙을 실어 날랐을 유구한 물줄기, 순식간에 개인의 운명을 덮쳐와서 휘감아가는 잔혹한 범람…… 그러나 오늘 강물은 겉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깊은 슬픔을 봉인한 채 고요히 흐르고 있다.

강물은 구름다리를 지나면서 조금씩 왼쪽으로 휘어돌아간다. 아득히 상류로 이어지는 물줄기. 나는 몰래 물줄기를 당겨본다. 점점 좁아지던 갓길은 구름다리를 지나면서부터는 아예 없어져버린다. 물길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안전석 위로 올라서서 서투른 어름사니가 되어야 한다. 국도는 일직선으로 달리고 물줄기는 왼쪽으로 점점 더 굽어든다. 강물이 활등처럼 휘어져 들어간 곳, 국도와 강물이 완전히 갈라지는 지점은 ‘장미나무집’이라는 음식점이다. 장미나무집 마당 앞으로 강기슭으로 내려가는 오솔길이 나 있다. 그 소슬한 오솔길은 물안개가 감도는 듯 아련하게 떠 있다. 시야 밖으로 가물거리는 아실한 소실점. 그 길을 따라가면 무언가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내 회한과 그리움의 뿌리께…… 하지만 나는 오솔길 들머리에 짓다 만 호텔 근처에서 머뭇거린다. 내장공사 직전에 공사를 중단한 듯 휑 뚫린 구멍들이 괴기스러운 호텔. 야영을 해도 좋을 만큼 넓은 주차장에는 부탄가스통과 깨진 유리병, 불에 그을린 시커먼 흉터들이 군데군데 나 있다. 저만치 주차장 끝에 버려진 검은 승용차. 나는 그만 용기를 잃고 만다. 그래. 오늘은 너무 멀리 왔어.

강물을 거슬러오르는 것을 포기한 나는 다시 ‘장미나무집’으로 돌아온다. ‘장미나무집’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셔터가 내려진 입구에 눈석임물로 얼룩진 커피자판기가 서 있었다. 으스스 끼치는 한기에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르자 컵이 뚝 떨어졌다. 하지만 커핏물은 내려오지 않는다. 나는 빈 컵을 들고 헛일인 줄 알면서도 장미나무집의 셔터 문을 서너 번 두드린다. 화단에 눈이 간 것은 그 순간이었다. 밑둥치를 짚으로 감싼 장미묘목들. 제법 줄기가 굵은 묘목들은 누런 발톱 같은 가시와 빨갛게 잘 여문 열매들을 매달고 있었다. 가시줄기 사이에 아직 떨어지지 않은 시든 꽃송이가 바람을 타고 있었다. 검붉게 말라붙은 꽃잎 몇장……

그해 오월의 장미를 기억한다. 선인장만큼이나 날카로운 가시가 돋은, 학생들의 집회를 막기 위해서 그들이 광장에 심었던 가시장미. 학생들은 장미를 뽑았고, 그들은 다시 장미를 심었다. 학생들이 다시 장미를 뽑아서 정원에 옮겨 심자, 그들은 밤새 장미를 다시 광장에 옮겨 심었다. 생채기처럼 움푹움푹 흙이 팬 광장, 몇차례나 뽑히고 옮겨 심어지는 동안 꺾이고 시들어버린 장미꽃…… 그해 오월 장미는 하나의 강력한 정치적 은유였다. 더이상 오월의 여왕, 어린 왕자의 연인일 수 없었다. 그 시절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뉘었다. 장미를 뽑는 사람과 장미를 심는 사람, 그리고 장미를 심지도 뽑지도 못하면서 장미의 운명을 슬퍼하는 사람. 하지만 개중에는 그 슬픔을 부끄러움이 아니라 힘으로 전화시키는 몇몇 사람도 있었으리라. 힘이 되는 슬픔,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싸움에 나서는 사람. 그것은 다분히 미학적인 결단이다.

장미가시에 찢긴 팔뚝의 상처에서 점점이 스며나오던 핏방울을 바라보며 나는 일기장에 쓴다. 천한 피의 어여쁨, 시를 쓰는 부끄러움. 얼마 후에는 키만큼 쌓인 습작 시들을 전부 태워버린다. 피를 갈고 싶어! 자기부정을 향한 자학에 가까운 열정에 사로잡힌다. 그 가파른 전환 이면에는 광주백서의 충격이 있다.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죽음과 죽음 사이에/피눈물을 흘리는/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라는 시로 시작되는 그 문건은 실존주의와 탐미주의로 쌓아올린 관념의 성채를 허무는 치명타이다. 이제 철학은 세계를 해석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어야 한다. 한자만 대충 꿰어맞춰 읽어가던 일어판 로자 룩셈부르크 전기. 감성과 이성으로 양끝이 파랗게 타오르는 촛불 같은 여성. 그 여성은 스파르타쿠스 봉기의 실패 이후 파시스트에 의해서 학살당해 운하에 던져진다. 혁명은 이제 맑스나 로자를 넘어서 내 안에서 깊이 혁명이 된다. 어떤 관념의 끝도 혁명으로 연결된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 고민하다 좌절한 지점에서, 신동엽의 ‘금강’이 흐르다 말라버린 곳에서, 김수영의 고독한 자유에의 비상이 끝나는 곳에서, 혁명은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며 나를 향해 열려 있었다.

해가 얼음에 갇힌 꽃처럼 차갑게 사위어가고 있었다. 여윈 강물 위로 비껴드는 석양빛. 나는 천천히 장미나무집을 벗어나 국도로 나온다. 다시 구름다리 옆을 지날 즈음에는 드ᄃᆞᆯ메 물그림자가 강물보다 더 검게 풀어지고 있었다. 노을의 보랏빛 잔영을 머리에 이고. 긴 잠에서 깨어난 듯 검고 고혹적인 자태를 강물 위에 드리운 구름다리. 이승과 저승, 차안과 피안의 경계에 걸린 가파른 외길…… 바람도 없는데 다리가 미미한 소리를 내며 출렁거린다. 이상하다. 그 다리는 바라보면 볼수록 가슴이 서늘해진다.

 

 

독서하는 소녀상

“워째 소설은 잘 써지냐?”

아침에 가든을 나서려는데 주차장 앞에서 마주친 오빠가 내게 묻는다. 순간 화끈해지는 얼굴. 아버지의 전화 때문에 이 며칠 나는 곤혹스러움에 처하게 되었다. 무슨 소설을 쓴디야? 늘 대화에 굶주려 있는 올케는 다음날 나를 보자마자 대번에 호기심을 보였다. 그 난감함이란. 소설가라지만 내 본명으로 소설을 발표한 적도 없고, 내용도 그들에게 보여주기엔 앙상한 뼈다귀일 뿐이다. 그것조차도 너무나 오래 전 일. 이제 내가 다시 소설을 쓰는 것은 관 뚜껑을 밀고 나오는 것만큼 힘든 일인데……

“날도 푹헌디 우산리 한번 가볼라냐?”

마당 한가운데로 차를 몰고 나온 오빠가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고 묻는다.

“나중에……”

우물우물 말끝을 흐리는 내게 오빠는 한번 더 권유한다.

“델다주라고 작은아버지가 나한티 신신당부하시등만.”

“혼자, 찾아갈 수 있어요.”

“허긴 몇년 전에 한번 가봤지야?”

차창을 올리면서 오빠는 쯧! 혀를 차듯 덧붙인다. 너 알아서 해라.

들머리 쪽으로 사라지는 지프차를 바라보다가 나는 마을 안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마을회관 앞 고샅길로 접어들자 기와지붕을 인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앉아 있었다. 낮은 담장 너머로 들여다보이는 일자식 서너 칸 농가들, 몇몇 집들은 보일러공사를 하는지 마당에 파이프와 연장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마을 집들의 모습이 좀 이상하긴 했다. 정젯방에 잇대어 부엌을 높이고 보일러를 놓는 바람에 예전처럼 정제 뒷문을 통해서 뒤란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고, 집 양옆으로 방이나 헛간을 들이는 바람에 아예 뒤란이 막혀버린 집들도 있었다. 사촌오빠네 집을 포함해서 새로 지은 양옥집들도 대여섯 채가 넘는 것 같다. 치솟은 땅값으로 졸부가 된 노인들이 게이트볼을 치러 운전사가 딸린 자가용을 타고 광주로 나간다는 말이 아주 허풍만은 아닌지, 주변 풍광과 어울리지 않는 새집들이 있는 반면에 잡풀이 우북한 빈집도 여러 채 있었다.

우산리도 이렇게 변해 있을까. 산자락에 기대어 시냇물과 너른 들판을 바라보고 들어앉은 마을. 집집마다 살구가 노랗게 익어가고, 엄지손가락 만한 감들이 영글고 있었지. 주홍빛 석류꽃이 핀 미례의 고향집. 울 아부지가 딸 많다고 석류나무를 심궜디야. 열매 껍질을 대려묵으믄 여자들 병에 좋담서. 꽃빛깔이 너무 현란해서 꽃잎에 손을 댄 순간 얼마나 놀랐던지. 그 두껍고 딱딱한 꽃잎이라니! 꽃받침은 그대로 석류 껍질이었어. 대숲이 울창한 뒤란, 손톱만한 땡감들이 열려 있던 감나무 그늘. 이 감나무 밑에서 달짝구리를 했어야. 손바닥이 시꺼멓게 빤질빤질해질 때꺼정 공깃돌을 줍다보믄, 팽개쳐논 애기들은 흙 파서 입으로 집어넣고 흙 속에 버러지도 먹고, 해거름 참에 콩밭 매다 돌아온 엄니가 찰싹 내 등짝을 때림서 그러제. 징헌 년! 장광 옆에 철 이른 접시꽃이 피어 있던 꽃밭. 우리 집 꽃밭이 얼매나 오졌다고. 해마다 작약, 접시꽃, 달리아, 분꽃, 백일홍, 봉숭아, 채송화…… 꽃들이 참말 흐드러지게 폈어. 딸부잣집이라 꽃밭 하나는 잘 된다고 온 동네 삼이웃이 다 샘을 냈단께. 매몰된 기억의 퇴적층 속에서 사금파리처럼 솟구치는 목소리. 차가운 바람이 그 목소리를 지우며 고샅길을 휩쓸어간다.

작은 초등학교를 발견한 것은 지향없는 내 발길이 고색창연한 제각을 지나고 비석거리를 돌아섰을 때였다. 산자락에 기대어 자리잡은 작은 분교. 노란색 교문에 하늘색 쇠울타리를 두른 학교는 양지바른 곳에서 자울고 있는 병아리처럼 밝고 고즈넉했다. 담장을 따라서 심어진 히말라야삼나무가 푸른 기운을 흩뿌리는 교정, 운동장 너머로 기역자로 들어앉은 건물 한 동과 놀이터. 나도 몰래 교문 안으로 발걸음이 옮겨졌다.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회양목이 심어진 작은 화단이 나를 맞았다. 둥근 화단에 세워진 두 개의 비석. 교장 송덕비?! 아무리 시골학교라지만…… 게다가 그중에 하나는 우리 종씨, 아버지와 같은 항렬이다. 교장선생님 했던 큰아버지가 계셨던가? 아버지 위로 계셨다는 여섯 분의 큰아버지들. 정미소를 하고, 면장을 하고, 광주학생의거의 주역이었고, 수재였지만 요절을 했고, 해방후에 군수를 지냈는가 하면, 국회의원을 네 번이나 하셨다는 옛이야기 속의 주인공들. 할아버지가 금싸라기 같은 전답을 내놓아 쌓았다는 제방이며, 무상으로 지어서 군에 기증했다는 읍내 중학교…… 자라면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집안의 옛 영화는, 하지만 내게는 아버지의 영락을 더욱 비참하게 보이게 했을 뿐이다. 또한 대학에 들어와서는 누린 것도 없이 계급적 원죄의식에 사로잡히는 한 근거가 되기조차 했다.

60년대 보릿고개에 승마를 하고 일제 오토바이를 타고 사냥과 낚시를 즐기며 코로나 자가용을 굴리던 아버지. 큰아버지와 동업으로 연탄공장을 경영하고 화순에 탄광까지 가지고 있었다는 아버지는 큰어머니 쪽 친척들과 의견충돌을 빚은 뒤 독립해서 택시사업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망했다. 그후로도 이런저런 사업을 벌였지만, 일곱살 때까지 젖을 먹었다는 막내둥이 귀공자는 두 번 다시 재기하지 못했다. 체면과 허례허식, 귀가 얇은가 하면 턱없이 오만하기도 했던 아버지는 애초에 사업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한 사업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명함과 회사 이름이 찍힌 메모지와 편지봉투를 몇천부씩 찍는 사람이었다. 그 종이를 다 쓰기도 전에 사업은 끝장났고, 우리는 남은 종이를 연습장으로 쓰곤 했다.

놀이터 쪽으로 걸어가자 시소 앞으로 알록달록하게 색칠된 고무타이어들이 땅에 반쯤 묻혀 있었다. 나는 노란 타이어 위에 걸터앉아 가냘픈 겨울 햇살이 내려앉은 운동장을 바라본다. 거기 한 아이가 떠오른다. 늘 운동장 그늘에 혼자 서 있던 아이. 너무 수줍어서 말을 더듬던 아이. 미술시간이면 도화지 가득 보라색을 칠해놓던 아이. 해질녘이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늘 고역이던 아이.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서울로 이사왔을 때, 나는 아홉살이었다. 시흥군에서 막 서울시로 편입된 변두리 동네. 판자촌들이 동네 이름도 없이 이천세대, 삼천세대로 불리던 곳. 땅값 오르기를 기다리며 버려둔 논밭과 공사장에서 불어오는 흙모래가 종아리를 때리고, 쓰레기매립장의 파리·모기떼가 기승을 부리던 곳. 우리 가족은 삼천세대와 개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막 들어서기 시작한 신흥 주택가를 전세로 전전했다. 끼니를 굶을 만큼 절대적 빈곤에 허덕인 적은 없지만, 아버지와 엄마 스스로가 가난에 적응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몸에 붙은 한량기를 벗어버릴 수 없었고, 선병질적이던 엄마는 식모도 없이 다섯아이의 치다꺼리하는 걸 몹시도 버거워했다. 한 사업을 끝장내고 몇달씩 집에 들어앉은 아버지의 울화증과, 생활고에 지친 나머지 발작적으로 터져버리던 엄마의 히스테리. 좌절된 욕망은 분노가 되고 분노는 서로를 할퀴는 것으로 곧잘 표출되곤 했다. 남편은 아내를 발로 차고, 아내는 큰애를, 큰애는 둘째를, 둘째는 셋째를, 막내는 강아지를 발로 차는 폭력의 하향씨스템. 나는 그 씨스템의 밑바닥에 있었다.

고즈넉한 슬픔이 가슴에 차오른다. 나는 운동장을 천천히 가로질러 본관 쪽으로 다가간다. 백엽상과 등나무 시렁이 있는 중앙 화단에 하얀 대리석 소녀상이 있었다. 독서하는 소녀상. 르누아르풍의 소녀는 탐스럽게 굽슬거리는 머리에 모자를 쓰고 무릎 위에 놓인 책에 갸웃이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 나는 가만히 소녀를 바라본다. 대리석의 차가움을 따스하게 만들 만큼 봉긋한 뺨과 거기에 어린 미소, 책을 펼쳐든 손가락의 섬세함…… 문득 가슴이 애잔해진다. 서글픈 울림과 종달새 같은 지저귐, 오후의 교실에 비껴들던 한 줄기 햇살과 그 빛띠 속에 날아오르는 먼지 같은 미립자들. 반짝반짝 빛나는 책의 요정들.

나는 물기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너무 일찍 배워버린 아이였다. 가끔씩 한밤중에 눈을 뜨면 나는 훌쩍훌쩍 소리 죽여 울곤 했다. 우리 가족이 너무 불쌍해서. 그런 밤이면 이불 속에 엎드려 유서를 썼다. 가족의 화목을 바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는 어느 여중생, 신문에 난 그 이야기를 나는 어디서 들었던 걸까. 그래, 나도 이렇게 하는 거야. 아홉살인 나는 생각한다. 어느새 내 눈앞에는 내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엄마는 우시겠지. 작은언니는 후회할 거야. 동생은 누가 돌봐주지? 불쌍해. 오빠는 가슴아파하겠지. 모두들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내 무덤 앞에 하얀 꽃을 놓을 거야…… 그 상상은 너무나 서럽고, 서러워서 더욱 매혹적이다. 식구들이 읽고 모두 눈물을 흘리고 참회하려면 우선 나는 멋진 유서를 써야 해. 유서를 써서 베갯잇 속에 넣어두고 밤마다 꺼내서 문장을 고친다. ‘엄마, 아빠. 저는 저 세상으로 가요.’ 쓰다가 지우고 ‘저 세상’을 ‘하늘나라’로 고친다. 어떤 날은 내가 쓴 글에 내가 감동해서 지레 서럽게 운다. 유서를 쓰고 다듬는 동안 실제의 죽음의 방도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 오로지 내 관심은 온 식구를 울릴 만한 감동적인 유서를 쓰는 일에만 집중되어 있다.

나는 지금도 그 유서의 행방을 모른다. 식구들 중 누군가 보고 없애버린 것인지, 베갯잇 빨면서 물에 젖어 녹아버린 것인지. 하지만 유서가 없어졌다는 걸 알고도 나는 별로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즈음 이미 나는 시인이 되겠다는 다부진 결심을 하고 있었으니까. 책 읽기의 행복이 시작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오후의 햇살이 비껴들던 방과후의 교실. 학급문고를 펼치면 책갈피에 잠자고 있던 먼지들이 빛띠 속으로 날아올랐다. 나는 그것이 반짝반짝 빛나는 책의 요정들이라고 상상했다. 『빨간 머리 앤』 『집 없는 천사』 『플란더스의 개』, 한국전래동화집과 소년소녀세계명작동화집, 계몽사판 위인전집. 가난한 초등학교의 학급문고는 광화문에 새로 생긴 큰 서점으로 이어진다. 한겨울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새문안길로 꺾어들면 쨍하게 몰아치던 찬바람, 레코드가게에서 울려퍼지는 존 바에즈의 노랫소리. 높푸른 겨울하늘처럼 서늘한 그 음성을 따라가면, 거기 새로 생긴 교보문고가 있었다. 그곳에는 샤갈의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 있고, 윤동주의 ‘순이의 얼굴’이 있고, 매 맞는 어린아이를 바라보며 신의 존재를 회의하는 이반의 고뇌와 연민이 있고, 디오니소스적인 생명력으로 약동하는 니진스끼의 비상과, ‘낙타가 되고 사자가 되고 마침내 어린아이가 되는’ 니체도 있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노오랗게 흰 빵처럼 부풀어올라 어느 것이나 따스한 빛을 발하는 그 별들을 나는 현실보다 더 생생한 현실로 느꼈다.

독서하는 소녀상은 내 영혼의 그릇을 형성한 그 모든 것들을 아프게 일깨운다. 빛띠 속으로 날아오르던 요정들과 어스름녘 막 불빛이 켜지기 시작하는 광화문 네거리와 그 불빛 속에 넘실거리는 생의 바다, 그 바다를 향한 충일한 열망…… 그 모든 것을 사무치게 일깨워준다. 나는 독서하는 소녀상이 드리운 그늘 아래 오래도록 서 있다. 그리고 마음깊이 자문한다. 어쩌면 내게 혁명이란 책 읽기의 연장선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혁명이란 생을 향한 열망,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하고. 학살자에 대한 분노, 민중에 대한 부채의식, 자유, 민주, 평등……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스무살의 나를 추동한 가장 강력한 힘은 생의 총체성을 향한 열망이었다. 레닌이나 마오보다도 체 게바라에게 더 매혹당했던 것은 그의 전생애가 사랑하고 고뇌하고 결단하고 투신하는 섬광의 연속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해가 흠칫 오그라드는 것 같다. 해와 구름의 싸움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하늘, 바람결이 거칠어진다. 운동장 가득 모래바람이 일고, 단상에 게양된 깃발들이 마구 펄럭거린다. 나는 학교를 한바퀴 돌아볼 양으로 건물 뒤쪽으로 돌아간다. 농가를 개조한 양호실과 숙직실, 펌프가 있는 수돗가와 변소, 한 모퉁이에 쓰레기를 태우는 화덕이 있었다. 검은 잿더미 위에 피어오르는 뽀얀 실오라기, 그 옆을 지나치려는데 문득 따스한 기운이 내 발목을 잡아당긴다. 잿더미 옆에 반쯤 탄 연탄재, 빨간 불구멍이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문득 발목이 아릿해진다. 아슴아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따스한 기운. 아련한 온기가 가슴 밑바닥을 헤집어 작은 불씨를 건져올린다. 섬광처럼 깜박이는 기억의 편린들.

우여곡절 끝에 손에 넣은 주민등록증. 냉동실에 하루 동안 넣어뒀다가 코팅된 앞면을 뜯어낸 후에 조심스레 사진을 뜯어내고 무궁화 스탬프 자국이 뭉개지지 않도록 교묘하게 내 사진을 붙인다. 그 ‘증’의 주인은 주소를 옮겨놓지 않아서 나는 충청도의 후미진 산골로 등본을 떼러 가야 한다. 그 여행에는 설레듯 눈발이 흩날렸던가. 고속버스를 타고 공주시에 내려서 또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을 들어가야 했던 산골마을. 읍사무소 옆 다방에서 마셨던 유자차, 빨갛게 불구멍을 드러내 보이던 연탄난로, 시린 발목에 아슴하게 젖어오던 그 따스함…… 나보다 세살이나 어린 이종옥. 3남 4녀의 둘째딸이던 스물한살의 그녀. 부모님과 여든살이 넘은 할머니와 올망졸망한 네명의 동생들. 앞으로 내가 되어야 할 그녀의 삶을 가늠해보는 마음은 얼마나 착잡했던가.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한 무리의 여중생들을 만났지. 옆자리에 앉았던 유난히 뺨이 붉은 경아라는 이름의 아이. 졸업하면 도시로 갈 거라는, 통속소설 주인공 같은 이름의 경아. 그애의 희망에 문득 구로공단이나 가리봉역에서 마주치는 무수한 얼굴들이 겹쳐지면서 나, 얼마나 애잔한 마음이 되었던지. 차창 밖으로 고된 생산을 끝내고 휴식에 들어간 들판과 순하디순한 산 능선이 흘러가고 있었다. 산자락마다 안긴 농가들, 굴뚝에 피어오르는 밥 짓는 연기를 바라보면서 나, 혁명을 생각했던가. 혁명이란 단순히 국가권력의 전복, 물적 토대만의 변혁이 아닌, 실오라기처럼 연기가 피어오르는 농가의 조촐한 밥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의 가슴마다에 생명의 물꼬를 트고 강물처럼 살아 흐르는 역사를 심는 일이라고……

짧은 겨울 해가 곧 스러질 엷은 햇살을 흩뿌리며 산너머로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그 이상한 화단을 발견한 것은 쓰레기소각장을 지나 다시 운동장 쪽으로 나오면서였다. ‘면 지정 보호수’라는 팻말이 붙은 아름드리 동백나무, 그 아래 동상 세 개가 옹기종기 몰려 있었다. 큰 칼을 찬 등신대의 이순신 장군 동상. 횃불을 치켜든 유관순 누나의 작달막한 동상. 그리고 한쪽 팔에 책을 끼고 선 어린이 동상.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지 않아도 나는 그 밑에 뭐라고 씌어 있는지 안다. 내가 다닌 관악산 밑의 가난한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폐품을 수거해서 모은 돈으로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웠다. 이승복 어린이는 반공글짓기대회의 단골메뉴였다. 여고 시절에는 유관순의 후배라서 3·1절 행사에 불려나가느라 한번도 쉬어본 적이 없었다.

폐기처분된 지난 시절의 표징들. 한 시절을 풍미하며 운동장 한가운데 당당히 서 있었을 그들이 뒤란 한켠에 몰려 있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그들의 모습에 불현듯 겹쳐지는 한 장의 사진. 헝가리 부다페스트 외곽의 동상공원에는 관광객의 볼거리로 전락한 옛 체제의 각종 상징 조형물들이 모여 있단다. 신문에서 그 사진을 보았을 때 나는 잠시 눈길을 주었을 뿐이다. 더는 비애도 열패감도 없이. 그런데…… 역광을 받고 선 동상들의 추연한 모습 때문일까, 아니면 발치에 뒹구는 핏빛 동백꽃 때문일까. 나는 지금 새삼스럽게 가슴을 베인다. 한때 나를 격동시키고 내 운명을 바꾸어놓았던 표상들. 맑스도, 로자도, 어쩌면 ‘그해 오월’까지도 이승복이나 이순신 동상처럼 지난 시절의 한 표징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는…… 그 느낌은 어찌나 스산한지 뼈가 시리다.

온몸에 맥이 빠져서 터벅터벅 학교를 벗어난 나는 다시 고샅길로 나온다. 비석거리를 지나자 정미소가 나온다. 해거름녘 사위어가는 긴 햇살 속에서 퇴락한 정미소는 비스듬히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녹슨 양철지붕, 서까래에 걸쳐진 삭아버린 컨베이어벨트, 기둥에 매달린 전표뭉치, 먹글씨로 “5되─8kg. 1말─16kg. 1.5말─24kg. 2말─32kg. 2.5말─40kg”이라고 씌어진 나무 팻말, 우묵하게 팬 흙바닥에는 도정 후의 쌀겨가 아직도 썩지 않고 흩어져 있었다. 정미소 옆으로 난 살림집 역시 황폐하기는 마찬가지다. 누런 잡풀이 자란 지붕, 덧문에 뚫린 옹이구멍, 찢어진 문풍지, 먼지가 켜로 앉은 툇마루. 방문을 슬쩍 밀자 찌그덕, 문짝의 쇠장석이 떨어져내린다. 방안에 고인 퀴퀴한 어둠이 확 끼쳐온다. 내려앉은 방고래, 부스러져내리는 벽, 들이치는 바람에 푸석푸석 날아오르는 흙먼지.

사람살이의 숨결을 잃은 집은 더 빨리 퇴락하는 것일까. 짐을 다 빼고 났을 때 폭격 맞은 것처럼 황폐하게 느껴지던 내 집의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장롱이 놓였던 벽의 곰팡이, 주방 싱크대에 눌어붙은 때들, 침대를 들어올렸을 때 나온 아이의 레고블록이며 일회용 라이터, 십원짜리 동전들, 무엇보다도 시커먼 솜뭉치처럼 부풀어오르던 그 많은 먼지들. 그토록 많은 먼지들과 함께 살았다니! 지난 5년 세월이 결국 먼지를 일으키며 먼지와 더불어 살다가 먼지만 남기고 스러지는 일상일 뿐이었는지…… 허방을 딛는 것 같은 무력감이 엄습해서 나는 급히 돌아선다. 나는 그 먼지 집을 뒤로 하고 달리기 시작한다. 미례야. 넌 내가 너랑 다르다고 말했지. 가진 게 많다고. 하지만 내 삶도 만만치는 않았단다.

들머리를 지나 지석교 앞까지 와서야 나는 달리기를 멈추었다. 헉헉거리며 다리 위에 서자 세찬 바람이 몸을 날릴 듯이 덮쳐왔다. 다리 난간을 붙잡자 알루미늄의 차가움이 손에 쩍, 들러붙는다. 나는 난간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며 발밑의 구멍을 들여다본다. 검은 구멍 속으로 굽이치는 시퍼런 물살…… 내가 그 구멍을 발견한 것은 온종일 다리 위에만 서 있던 첫날이었다. 다리 위를 걷다가 문득 발밑을 내려다본 나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발밑에 어른 주먹만한 구멍이 뚫려 있었던 것이다.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 살펴보니 구멍은 10미터쯤 일정 간격으로 계속해서 뚫려 있었다. 다리에 구멍을 뚫고 홈통을 박아 빗물이 빠져나가도록 설계된 것이라는 걸 짐작한 후에도 허방을 딛는 듯한 어지러움은 멎지 않았다. 발밑에 시커멓게 입을 벌린 아가리…… 하루에 서너 번씩 다리를 오가는 지금도 나는 그 구멍을 마주칠 때마다 놀란다. 매번 그 검은 구멍에 발목잡힌다. 얕은 도랑물로 여기고 슬쩍 건너뛰려고 했던 것이 사실은 깊은 수렁이었다. 인연이 그렇고, 일상이 그렇다. 이제, 그 밑바닥을 보고 싶다.

 

 

286 노트북 컴퓨터

새하얀 잠. 검은 꿈. 천근의 가위눌림…… 입안에 깔깔한 모래알이 느껴진다. 모래 알갱이는 이내 팥알만해지더니 점점 커져서 검은 덩어리가 된다. 검은 덩어리는 내 혀다. 내 혀는 돌처럼 굳어간다. 검게 굳은 혀가 입안을 꽉 채운다. 숨을 쉴 수 없다. 입술이 굳고, 얼굴이 굳어간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다. 목이, 가슴까지 굳어간다. 파드득 몸부림칠수록 더 무섭게 옥죄어든다. 팔과 다리가 굳고, 온몸이 굳어간다. 내 몸은 송두리째 검은 돌덩어리다. 내 몸 크기의 석관. 천만근의 무게로 가라앉는다. 구들장을 뚫고 대지의 갈라진 틈을 지나 까마득한 나락. 나는 내 몸 크기의 화석이다…… 지층 깊숙이 숨쉬는 수억년의 암반. 아득히 물소리가 들린다. 똑. 똑. 똑. 시린 물방울을 떨구는 잔빙. 이마를 스치는 서늘한 기운…… 금매, 추운디 무담시 밖으로만 나댕기니 탈이 안 나겄어? 어린 물방울이 내 몸을 쓰다듬는다. 실핏줄처럼 스며드는 물줄기…… 호박죽 잠 끓였는디 먹어볼란가.

올케언니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일어날 수 있겄어?”

나는 벽을 짚고 일어나 앉아 동치미를 마신다. 살얼음이 설컹거리는 동치미는 머리끝까지 시리다.

“얼굴이 반쪽이여. 눈도 대꾼허고……”

하얀 새알과 팥알을 넣은 호박죽은 노오랗고 따스하다. 한입 떠넣지만 입안에 모래알이 든 것처럼 깔깔하다. 편도선이 붓고 헐어서 침 삼키기도 힘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내가 숟가락질하는 것을 본 올케언니는 덧창문을 열어젖힌다.

“아따! 햇빛 징허게 좋네. 날씨할라 푹허고.”

내가 앓아누운 동안 눈이 오지게 내렸다고, 가뭄 해갈을 톡톡히 했다고, 눈 소식을 전하는 올케의 말을 들으며 나는 호박죽 한 그릇을 꾸역꾸역 다 비운다.

몸을 추스르고 강가로 나가자 순백의 처녀지가 펼쳐져 있었다. 숫눈을 밟으며 들어선 솔숲에는 소나무들이 반짝이는 눈 옷을 입고 있다. 바람도 없는데 눈덩이들이 나뭇가지에서 후르르 떨어진다. 가지를 바직바직 밀어내는 눈의 무게로 생살이 찢어진 나무들. 발이 붉은 작은 새가 단풍잎 같은 눈 도장을 찍으며 날아오른다. 강기슭에는 발목까지 살얼음에 잠긴 갈대들이 하얀 눈꽃을 피우고 있다. 쏟아지는 햇빛, 결합이 느슨해진 눈의 결정들이 미세한 빙정들로 부서지며 토해내는 눈부신 무늬들…… 대설로 몸이 불은 강물은 더 깊고 중후해졌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방죽 너머 강 건너편 마을로 가본다. 저만치 눈 덮인 산자락에 안긴 마을, 흰 눈을 인 농가들은 한밤에 아스라이 뜬 불빛처럼 은성하지는 않아도 한결 웅숭깊다. 나지막한 지붕들 위로 보일 듯 말 듯 피어오르는 가느다란 연기. 마음 밑자리가 따스하게 지펴지는 기분이다.

마을 어귀 고색창연한 비각을 지나 고샅길 모퉁이를 돌아서자 작은 교회가 있었다. 오래된 건물 벽으로 헐벗은 담쟁이덩굴이 실핏줄처럼 기어올라가고 있었다. 파릇파릇 살아오르던 아기손들의 추억…… 교회 지붕에서 눈 녹은 물이 투덕투덕 떨어진다. 처마 끝에 투명한 발을 드리운 고드름, 낙숫물에 팬 자리가 흉터처럼 깊다. 담장 한켠에 교회 건물보다 더 퇴락한 종각이 있었다. 지붕이 뾰족한 굴뚝같이 생긴 종각 안에는 쇠종이 매달려 있다. 검버섯 같은 녹이 여기저기 피어오른 종은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제 스스로도 종이라는 걸 잊어버린 듯한 모습이다. 흔들면 소리가 날까. 다시 한번 쩡쩡 울고 싶은 종은, 그러나 묵연하다.

커다란 불덩이 같은 해가 산 능선에 걸려 있었다. 석양빛이 흰 자작나무 군락지가 있는 산마루와 마을 전체를 새빨갛게 달구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구름다리에 걸린 노을을 보았다. 하늘도 강물도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노을빛에 비친 대숲의 완만한 굽이침, 일렁이는 갈대밭의 눈부심, 눈 옷을 입은 구름다리는 노을빛을 담뿍 빨아들여서 금방이라도 활활 타오를 것 같았다. 아름답다! 죽고 싶을 만큼…… 문득 분홍빛 강물 위로 작은 점이 떠올랐다. 점은 가물가물 흔들리며 가랑잎이 되더니 점점 커져서 조각배가 된다. 물살에 쓸려 빛바랜 몸체, 바람에 삐걱대는 뼈마디…… 조각배는 노을강을 헤치고 천천히 강기슭을 향해 다가온다. 부서진 몸을 끌고, 내게로 온다! 나는 조각배에 시선을 붙들린 채 숨조차 쉴 수 없다.

 

나는 오늘 비로소 컴퓨터를 켠다. 오랫동안 냉동시켜놓은 파일들, 해빙 명령을 내리자 컴퓨터의 하드가 드드득 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한다. ‘작가의 말’이라는 파일을 부르자 메씨지가 뜬다. 옛판 파일입니다. 읽을까요? ‘yes’를 치자 하드가 또 드드드득 신음소리를 낸다. 이미 단종된 지 오래인 내 286 노트북 컴퓨터는 한글 2.1판이 버겁기만 하다.

 

한 시대가 끝났다.

역사와 혁명, 열정과 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