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강경석 『리얼리티 재장전』, 창비 2022

한국문학 비평의 ‘재장전’

 

 

정홍수 鄭弘樹

문학평론가 myosu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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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석의 등단 평론은 백민석의 장편 『목화밭 엽기전』(2000)을 다룬 「타원형 감옥의 외부」(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목화밭 엽기전』을 ‘(알레고리적) 재현의 재현’으로 보는 데서부터 고유한 통찰로 나아간다. 소설의 돌연변이적 모습을 도착적 화소들이 배면서사에 기생하는 형식에서 찾아내며 그 기생의 서식지로 하위문화 텍스트나 체험들을 적시하는 비평의 눈이 예리하다. ‘공간’이 이미 부각되고 있거니와, 공간의 상상력과 관련된 ‘하강 모티브’는 고딕소설과의 비교를 거쳐 ‘재현(혹은 가상)의 재현’이라는 서두의 논지를 보강하는 데로 나아가고, 주인공의 집이 “자본주의근대의 세포 단위인 부르주아 핵가족의 내파를 보여주고 있다”(400면)는 진술에 이른다. 고딕적 요소는 당시 한국사회 일각에 출현한 포스트모던 징후의 맥락에서 검토되는 가운데 ‘위반의 정치학’이라는 이름으로 세를 얻었던 하위문화적 충동의 일차적 재현이 중간계급의 정치적 무의식으로서 결국 ‘안전하게 봉인된 저항’이 아닌가 하는 물음을 낳는다.

문학사적 안목과 동시대 문학에 대한 활발한 숙지를 바탕으로 근대적 가족제도의 질곡을 겨냥한 작품의 칼끝을 준별하면서 ‘집-엽기전’의 공간이 소설 안에서 “포자식물처럼 증식한다”(403면)고 쓰는 그의 비평 언어는 화려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때의 화려하다는 표현은 강경석이 그 ‘증식’의 한 갈래 귀결에 붙인 ‘하강초월’이란 말을 그의 비평에 되돌려줄 때야 온전해질 듯하다. 강경석의 비평은 언제든 작품 저 밑바닥까지 하강하지만, 작품과의 대화적 충실성 이상으로 ‘초월적 전망’을 향한 시선을 놓지 않는다. 그런 한에서 그것은 조망과 전망을 향한 상승의 운동과 함께 있다. 『목화밭 엽기전』이 타원형 감옥의 외부로부터 자유의 기억이 도래하는 순간을 찾아냄으로써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에 이어, 그는 소설의 ‘유난한 반(反)인간주의’의 한계를 적시하면서 자신의 비평적 입지를 분명히 한다. “주체를 구조의 효과로 납작하게 만드는 구조주의적 패턴 때문인데, (…) 이는 물론 작가 백민석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며, 지금 이 자리에서 숨 쉬고 있는 복수의 미래들을 하나하나 일으키는 가운데 서서히 불식될 수 있을 것이다.”(412면) 동시에 ‘복수의 미래들’이라는 표현은 강경석 비평의 ‘하강-상승’이 출발부터 전망의 문제와 단단히 결속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뚜렷이 알려준다.

‘복수의 미래들’에 대한 언급이 (외부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전지구적 자본주의시대의 도래와 함께 민중·민족 문학운동이 ‘회의의 대상’이 된 시절에 출사표처럼 제출되었다는 점을 기억하고 싶다. 평론집 『리얼리티 재장전』의 ‘책머리에’에서 술회하고 있는 대로 ‘문학과 현실의 상호 연관과 모순’이라는 화두는 강경석의 글쓰기나 삶에서 떠난 적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자신의 세대적 위기의식 한가운데에서 87년체제와 한국문학의 구조적 상관관계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고, 민주화 이후의 한국문학이 도달한 ‘각성의 높이’에 대한 물음으로 지속되었다. 용산사태, 세월호참사 등에서 촉발된 한국사회 대전환의 필요성과 촛불혁명의 응답이 “그때까지 조금은 어둡고 흐릿하던 시야를 한꺼번에 열어주었다”(5면)는 진술에는 자부심마저 담겨 있다. 평론집 1, 2부에 집중적으로 수록되어 있는 그 궤적은 시대현실과 문학작품의 연관을 살아 있는 움직임 속에서 생각하고 상상하는 가운데 ‘다른 세상’을 향한 문학의 열망을 읽어내는 섬세하고 정확한 비평 정신의 정수, 무력감의 호소와 퇴행을 거부하는 문학적 실천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다. 변화 혹은 연대와 저항의 에너지가 유실되거나 아주 사라진 것처럼 보일 때조차 그것들을 ‘고유한 형식’으로 감지 가능하게 하고 생동하게 하는 데 문학 특유의 능력이 있다는 믿음은 “문학이 어디서 어떤 식으로든 지금 여기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고통과 질곡에 맞서 더 나은 ‘다른 세상’을 만드는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면, 그 가능성 역시 문학이 지닌 그러한 능력에서 올 것”(「리얼리티 재장전」, 108면)이라는 진술로 이어진다. 당연히 이 순환적 믿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동시대의 문학작품일 터인데, 강경석 비평의 실력과 진가가 제대로 발휘되는 곳도 바로 그 면밀하고 성실한 작품 읽기인 듯하다.

평론집의 첫 글이자 가장 최근에 발표한 「진실의 습격: 민주주의와 문학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그의 ‘하강-상승’의 비평은 ‘해체의 역설’ ‘자아의 민주화’ ‘선량한 자본주의 주체들의 우주’와 같은, 동시대 문학에 대한 요령있는 비판적 조망을 거쳐 세상의 낮은 구석에서 엎드려 ‘진실의 공유지’를 열고 있던 한 작품의 감동적인 발견에 이른다. 전남 진도에서 서른두해째 농사를 짓고 있는 무명의 소설가 정성숙의 첫 소설집 『호미』(삶창 2021)에서 그는 ‘현실 또는 진실을 그대로 빼닮은 재현’이 아니라 ‘재현하는 가운데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을 만난다. 표제작 「호미」에서 주인공 영산댁이 마비된 몸을 이끌고 호미에 의지해 산길을 기어서 내려오는 일곱면에 걸친 묘사를 두고 그는, “이 장면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영산댁의 살아 있음’ 그 자체이며, 어느 면으로는 (…) 영산댁 자신마저 넘어선 ‘살아 있음’ 자체의 감지 가능성까지 열어”준다고 말한다(30면). 여기에도 얼마간 도움받은 이론적 지평이야 있겠지만, ‘지식 경연장화’한 이즈음의 비평 풍토에서 문학작품을 납작한 인식론의 영역으로 환원하지 않고 작품에 담긴 존재의 움직임과 목소리를 보고 들으려는 열린 태도 없이 이러한 비상한 통찰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때의 지도비평에 대한 과민반응이 편협한 텍스트주의의 범람으로 이어진 현상을 비판하면서 강경석은 말한다. “비평은 ‘작품 이후’에 있고 동시에 ‘작품 이전’에도 분명히 있다.”(272면) 이것이 손쉬운 절충주의가 아님을 이번 평론집에 실린 글들이 입증한다.

강경석 비평이 우리 시대의 시편들과도 지속적으로 대화해오면서 ‘리듬의 사회성’ ‘은유와 비은유의 접경지대’ ‘침묵과 호흡’과 같은 예리한 비평적 통찰을 쌓아오고 있었다는 데 과문했던 것은 전적으로 나의 게으름 탓이겠지만, 「민족문학의 정전 형성과 3·1운동: 미당이라는 퍼즐」과 같은 글에서 확인하게 되는 문학사적 온축 역시 그의 비평을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운 것으로 만들어준다. 비평어에도 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거니와 한국 전통사상이나 동양적 사유에 대한 공부와 이해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그의 비평이 지닌 유다른 힘과 개성은 틀에 갇히지 않고 넓게 읽고 넓게 보아온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아닌 게 아니라 강경석에게는 아카데미즘과 연동된 정형화된 비평가의 면모가 적다. 그의 공부도 이른바 ‘전문가주의’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다. 근자 한국문학 비평의 이론 과소비화 현상의 기원에 ‘1980년대적인 것에 대한 억압’이 있는 것 아니냐는 예리한 지적이(“그것이 실은 정치의 이름으로 실행되는 탈정치적 절차의 하나일지 모른다는 의심”, 「이름 너머의 사유」 295면) 가능했던 것도 그가 좀더 많이 길 위에, 광장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틀’과의 싸움은 자신의 문학적 실천의 정당성 안에서도 열린 태도로 지속되어야 하리라. 동시대 작품들은 비평이 상정하는 특정한 좌표 위에 있기보다는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유동하는 존재다. ‘작품 이전’과 ‘작품 이후’의 동시성을 제대로 밀고 나가기 위해서도 좀더 많은 머뭇거림이 있어도 좋지 않을까. 실제로는 ‘다른 세상’에 대한 온당한 질문으로 모아지더라도, 그런 글의 흐름이 하나의 ‘정해진’ 틀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비평이 할 일을 제대로 안 할 것일 수도 있다. 『리얼리티 재장전』은 그가 한국문학의 현장에서 찾고 확인한 소중한 깃발 신호일 테지만, 열여덟해의 시간을 담은 첫 평론집이 그 ‘재장전’의 성실한 수행(遂行)이라는 점도 감동적으로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