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병천 李柄天

1956년 전주 출생. 198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당선. 소설집 『사냥』 『모래내 모래톱』 『홀리데이』, 장편 『저기 저 까마귀떼』 등이 있음. 2000esprit@hanmail.net

 

 

 

개똥의 쓸모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에는 적어도 두 가지 사실이 숨어 있다. 하나는 원래 말하고자 했던 대로 주변에 지천으로 널린 것조차 정작 필요할 때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세상의 이치, 그리고 또하나는 어떤 질병에도 개똥은 결코 약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쓸데가 없다 싶으면 이를 두고 “개방귀 같다”는 속담을 들먹이기도 하거니와 개똥이나 개방귀의 쓸모라고는 전혀 다른 얘기를 하기 위해 그 이름만 잠시 빌려쓰는 경우가 아니면 아예 없는 것이다. 그러니 ‘개’자 항렬이 붙은 족속치고 번듯한 것들이 있을 리도 없다. 개살구, 개떡, 개꿈, 개죽음, 개코망신, 개소리괴소리, 개씨바리, 개좆불, 개뿔, 개다리참봉, 개발코……

내 자신이 개를 싫어한다거나 무서워해서 초장부터 이렇듯 개에 관련된 개소리괴소리를 늘어놓는 것이냐고? 천만에, 그게 아니다. 내 동생의 어릴적 별명이 ‘개터럭’이었던 때문이다. 개터럭도 좀전에 열거한 족속보다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거나 떨어지는 부류는 아니다. 엄동설한에 아무리 추워도 개가죽이나 개털로는 옷을 지어입지 않는 우리 민족이다. 개터럭은 그 개털보다 어감에서부터 질이 더 떨어지는 것이니 말해 무엇하랴. 그것들에 무슨 언감생심 질(質)이란 게 따로 있을 리도 만무하지만.

어린 동생을 처음으로 개터럭, 개털이라고 부른 사람은 할아버지였다. 마을에 엿장수가 나타나자 동생은 엿목판이 가득 실린 리어카를 졸졸 따라다녔다.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이는 엿도 엿이지만 저절로 흥겨운 가락을 내는 듯한 가위에 관심이 쏠린 탓이었다.

“아저씨, 나도 가위질 한번 해보면 안돼요?”

“늬가 엿장수냐?”

“그럼요. 나도 커서 엿장수를 헐 건디.”

그렇게 해서 엿가위를 받아든 동생은 신이 났다. 엿장수를 따라다니면서 어깨 너머로 가위질을 익혔는지 가위를 넘겨받자마자 양손을 손잡이에 찔러넣고 두드려대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었다.

“얘야, 소리도 질러라. 빈 병이나 머리크락, 고무신짝 떨어진 거……”

“둘이 먹다가 셋이 죽어도 모르는 맛난 엿이 왔어요. 에, 할머니 어머니 누님 동생이 머리 빗다가 빠져나온 머리크락도 받고, 깨진 무쇠솥에 우그러진 양은냄비 동지섣달 북풍한설에 짝 잃은 기러기마냥 외톨이로 남은 고무신 한짝도 다 받습니다요. 소가 웃다가 하품허는 소리나 개가 방귀뀌는 소리만 말고 손에 잽히는 것들 어서 들고 엿으로 바꿔 가시오. 깨엿도 있고 콩엿도 있고 꿀엿, 찹쌀엿……”

“늬가 아주 도가 텄구나. 풍월도 그 정도면 됐다.”

지금처럼 녹음기를 육장 틀어대는 시절도 아니어서 엿장수가 목을 좀 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동생은 동생대로 부스러기 엿토막을 당당하게 얻어먹는 재미로 신이 났을 것이다. 그러다가 녀석이 새로운 제안을 했다.

“아저씨, 이 판에는 리어카를 내가 끌게요.”

“늬가 무신 심이 있다고?”

“나도 리어카는 많이 끌어봤어요.”

“거 참! 딴은 그렇구나. 엿장수를 헐람사 리어카도 끌어야겄지.”

비록 자기가 다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맛있는 것들을 한번쯤은 직접 이고 지면서 몸으로 나르고 싶었으리라. 배고픈 시절에는 그랬다. 남의 엿목판을 대신 지고 가기만 하더라도 배가 반쯤은 불렀다.

“리어카는 심으로만 끄는 거이 아니다. 그냥 지 달린 발통으로 저절로 굴러가도록 놔두고 너는 소를 몰드끼 이랴 저랴, 갈 길만 잡아주면 되는 거여.”

“아, 예.”

말인즉슨 그렇다는 것이지 어린애한테는 요령부득의 주문일 수도 있었다. 소든지 리어카든지 그걸 평생 끌어온 사람들끼리 겨우 통할 얘기였는지도 모른다. 동생은 그 말을 듣자마자 그나마 젖 먹던 힘까지 발휘하여 버티던 손목의 힘을 슬쩍 풀어버리고 말았던 모양인데 그 순간 리어카는 정말이지 살아 있는 소처럼 길가를 벗어나더니 냇물 쪽으로 줄달음쳤다.

“저, 저런!”

순식간의 일이었다. 엿장수의 탄식이 채 끝나기도 전에 리어카는 냇가 바위에 부딪혀 뒤집히면서 엿목판을 물속으로 패대기쳤다. 엿 위에 뿌려둔 밀가루가 물에 풀어지면서 금세 하얗게 흘러갔다. 놀라서 흩어졌던 송사리떼가 고물거리며 모여들었다. 밀가루옷이 벗겨진 채 물속에 잠긴 엿가락들은 제 본래 색깔로 돌아와 노랗게 물살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고오, 이걸 어쩐다냐?”

엿장수가 사색이 돼서 목판을 들어올리고 이리저리 튀어나간 엿토막들을 이삭 줍듯 건졌다. 그렇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한번 물에 젖자마자 그 색깔도 색깔이지만 통통하던 엿은 실망스러울 만큼 홀쭉하게 몸피가 줄어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서로 엉겨붙기 시작해서 엿꼴이 영 말이 아니었다.

동생은 그것을 보고 있다가 겁이 났는지 엿장수가 엿토막을 주워모으는 데 열중한 틈을 타서 잽싸게 줄행랑을 놓아버렸다. 누가 보더라도 동생 탓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엿장수가 동생에게 책임추궁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동생이 도망치는 바람에 일이 엉뚱하게 풀리고 말았다.

동네 조무래기들에게 묻고 물어서 우리집을 찾아온 엿장수는 때마침 집안에 있던 할아버지에게 일의 자초지종을 고하고 손자를 너무 야단치지 말아달라고 덧붙였다. 야단치지 말라고 할 것 같으면 애초에 발설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엿장수로서는 손해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대한 처분이 있기를 기대한 모양이었다. 할아버지는 상대의 그런 의중을 미리 간파한 게 틀림없었다. 그분의 눈꼬리가 위로 솟아올랐다.

“머셔? 당신이 머시간디 넘의 손자를 이래라 저래라 허는 거셔? 그것도 엿장시 맘이여?”

“얼씬네, 지가 언지 이래라 저래라 했습니까? 이렇게도 저렇게도 허지 마시라고 말씸디렸지요.”

“그게 말이여 막걸리여, 시방? 그러면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허지 말라는 건 간섭이 아녀?”

“허어, 이거 참!”

“이 작자가 시방 여그가 어디라고 L바닥을 함부로 끌끌 차고 놀리는 거셔, 엉?”

“지가 언지 혀를 찼다는 겁니까? 얼씬네도 솔찮이 부앙부앙 허시네요.”

“머셔, 부앙?”

물속에 처박혔던 리어카처럼, 누군가 한사람은 궤도를 자꾸 이탈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어른들의 다툼이란 늘 그 모양이었다. 엿값 보상문제는 뒷전에 두고 우선은 서로 협상에 유리한 기선을 잡기 위해 말꼬리도 잡아보고 억지도 부려보는 것이다.

이렇듯 자꾸 얽히고 꼬이기만 하는 사태를 해결한 건 할머니였다. 읍내에 나가 새로 들기름을 짜오던 할머니는 얘기의 전말을 듣고 그냥 말없이 웃었다. 할머니의 웃음에도, 그리고 치마폭에도 들기름의 고소한 냄새가 배어났다.

“이리 쪼깨 와보시우. 저 냥반은 원체 승질머리가 급허신 분잉게 상관을 말고.”

“……?”

할머니는 쌀 서너 됫박과 함께 콩도 몇줌을 싸서 엿장수에게 내밀었다. 그러고는 양이 적다는 뜻인지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는 그에게 당신이 방금 짜온 들기름도 병에 덜어주는 것이었다. 엿장수는 몇번씩 허리를 굽실거렸고 할아버지에게도 죽을 죄를 졌다며 거듭 사과를 하고 돌아갔다. 녹아서 엉겨붙은 엿가락들을 고스란히 우리집에 남기고 떠났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날 저녁 밥상머리에는 새로 짠 들기름이 놓여 할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언제나처럼 모두가 밥을 비빌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할아버지가 동생을 불러세웠다.

“개터럭 같은 놈!”

처음에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없었다. 웬 난데없는 개털인지, 엿가락에도 들기름에도 그렇다고 비빔밥에도 얼토당토않은 것이었다.

“차제에 엿값을 다 갚을라먼, 어디든 나갔다가 들어올 때마다 기양 손바닥을 빳빳이 편 채로 집구석에 들어설 생각은 아예 말어라. 밥을 굶길 팅게! 허다 못허먼 땔감으로 쓸 나뭇가쟁이 하나라도 주워들고 와야 쓴다. 알었냐?”

“예.”

할머니가 동생의 손을 잡아 자리에 앉혔다. 뭐가 불만인지 동생은 철푸덕 소리나게 방바닥에 주저앉았고 그 바람에 들기름 냄새가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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