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개혁시대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변화를 바라는 목소리는 여전한데, 사회 곳곳에서 답답한 교착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부시정권 등장 이후 점점 꼬이던 남북관계는 금강산관광조차 힘겨워질 정도가 되었고, 의료와 교육, 공공 부문에서 요란하게 추진되던 각종 개혁조치들도 시원함보다는 불만과 갈등을 증폭시킨 듯하다. 이 참에 개혁유죄론을 부르짖으며 권토중래를 노리는 보수세력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이럴수록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다양한 인간, 이질적인 시각 들이 어떻게 공존하면서 더 높은 수준의 공동체를 실현해갈 수 있는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비용을 요구하며, 우리가 겪는 불만은 그 비용의 일부일 수 있다. 북한에 대한 포용도 남북한 공동체의 민주적 공존을 위한 비용인 셈이며, 개혁이 불러일으키는 각종 갈등과 논란 역시 민주주의에 불가피한 현상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삶의 원칙과 방식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다시금 확인하는 작업이 절실하다.

이번호에는 과학기술의 본성에 관한 네 편의 논문을 특집으로 묶었다. 생명복제의 문제, 새만금 개발문제, 핵발전과 인터넷 등은 더이상 피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쟁점들이다. 나아가 사고의 다양성이 과학기술의 논리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는 민주주의의 확산에 결정적인 문제이다. 특집의 글들은 과학기술 자체가 매우 역사적이고 정치경제적임을 보여주면서 민주적 활용과 실천적 개입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필렬 교수의 글은 냉전시대 과학기술이 지녔던 중앙집중성·국가주도성·군산복합성 등이 탈냉전으로 인해 점차 소규모·분산화·민간주도로 변화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네트워크형 과학기술을 중시하면서도 그 통제불가능성에 우려를 표하는 부분이나, 분산고립적 기술발전이 좀더 자유로운 삶을 가능케 할 것이라는 논의는 매우 새롭다. 강신익 교수는 유전자공학을 둘러싼 담론이 생명공학의 경제적 가치를 부각하고, 차별의 이데올로기와 우생학적 결정론을 전파하는 정치경제적 담론 효과를 갖고 있음을 논한다. 그는 유전자·유기체·환경의 복합적 상호연관성을 중시해야 한다고 보는데, 최종덕 교수의 서평과 함께 우리의 잘못된 과학주의를 교정할 좋은 글이다. 엔~스베르거의 글은 과학자들에 의해 주도되는 유토피아적 기술관이 매스컴의 경박한 특성과 맞물리면서 부박함과 오만함을 불러올 수 있음을 지적하는데, 특히 한국언론의 현실과 관련해서 주목을 요한다. 고철환 교수는 새만금 간척사업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과학기술론이 얼마나 정치적인지를 환기한다. 갯벌을 막아 농지를 만들겠다는 주장의 배후에 자연을 마음대로 변형해도 좋다는 개발만능주의, 국가중심적 관학협동체제, 정치인들의 무책임성 등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글은 우리 사회에서도 과학기술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냉정한 비판이 절실함을 말해준다.

좌담은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계기로 터져나온 언론개혁 문제를 진단한다. 최근의 상황은 많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과연 무엇을 어떻게 개혁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토론보다 언론탄압이냐 아니냐라는 정치적 논란으로 잘못 치닫고 있는 느낌이다. 사태가 복잡해 보이고 이런저런 논란이 많을 때일수록 본래의 정신을 확인하는 일이 긴요한데, 이 점에서 특히 좌담의 내용은 유익하다. 참석자들은 언론인의 전문성 미흡과 책임성 부재, 언론기업의 부당한 권력화, 소유구조의 맹점 등 우리 언론의 구조적 문제들을 논의하면서, 새로운 언론문화가 형성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제도개혁과 더불어 끊임없는 자기갱신과 전문성 확보를 위한 주체들의 노력, 다시 말해 ‘사람’의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지적은 비단 언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겠다.

평론과 논단도 흥미있는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김명환 교수는 90년대 문학에 대한 평론을 검토하면서 이론적 작업들이 결국 개별 작품과 작가들에 대한 세심하고도 구체적인 분석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최근 창비무명인이 창비자유게시판에 올린 미당 시에 대한 연재글을 둘러싼 싸이버토론의 의의를 점검한 한기욱 교수의 비평적 정리도 미당론의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다. 이영미씨는 90년대 후반 이후 드라마들이 IMF 경제위기 후 ‘극단적인 약육강식의 생존경쟁 태도와 이런 세상으로부터 난자당한 마음의 상처들’을 반영한 것으로 설명한다. 사소한 것과 자기 욕망에 충실하려는 젊은 세대의 동류의식과 여성적 정체성, 강한 성취동기 등이 우리 시대의 ‘정서적 리얼리티’를 보여준다는 것인데, TV 사극을 평한 손병우 교수의 문화평과 잘 어울린다.

탄생 백주년을 맞은 함석헌의 사상을 일본의 우찌무라 칸조오와 비교 검토한 양현혜 교수의 글은 기독교정신의 한국적 수용의 한 전형에 대한 사상사적 탐색이다. 나라 잃은 조선의 사명을 ‘창조적 수난자’로 개념화했던 함석헌의 사상적 모색이, 종교마저 개발주의와 세속적 성장을 맹신하는 한국사회에서 새롭게 거듭날 가능성은 없을까. 지젝의 사회이론을 통해 슬로베니아 라깡학파의 성격을 조망한 주은우씨의 글도 신선하다. 공산당의 전체주의에 저항했고 이제는 다시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와 서구 자본주의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슬로베니아 지식인의 노력은 오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언제나 그렇듯 창비의 지면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은 창작이 아닐까 싶다. 모처럼 송기숙 선생이 작품을 보내주시어 소설란이 더욱 빛난다. 동족간 살육을 피해보려던 끝에 일어난 사고 탓에 주인공이 평생 간직했던 마음의 상처, 그 죄의식으로부터 문득 벗어나는 환한 결말과 그동안의 오랜 여정이 눈물겹다. 오늘의 농촌 생태를 샌님형 농부와 그 부인을 통해 드러낸 우애령의 소설, 우연한 사고소식을 계기로 과거의 인연과 죽음의 문제에 집착하는 심리를 그린 배수아의 소설도 이번호를 빛내고 있다. 시란 역시 민영 선생을 비롯하여, 서정춘, 신대철 등 여러 시인의 작품들로 알차다. 우리 시의 풍성함이 점점 삭막해져가는 시대상황을 발본적으로 변혁해가는 샘물이 되기를 기원한다.

창비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교육현장의 검토는 이번호에도 계속된다. 신자유주의적 경쟁논리가 획일적인 관료적 논리와 결합됨으로써 양산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7차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정희성 시인의 글을 비롯한 촌평과 서평도 읽을 거리들이 풍부하다. 촌평·서평란을 통해 좋은 책을 소개받을 뿐 아니라 출판계의 흐름과 지적 관심들의 현황을 맛보는 망외의 소득도 기대해봄직하다.

이번호부터 ‘독자의 편지’를 ‘독자의 목소리’로 바꾼다. 이 난을 강화하려는 우리의 요청에 흔쾌히 응해주신 김근태, 은희경 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한다. 창비에 늘 따듯한 격려가 되는 ‘독자의 목소리’들을 받들어 늘 갱신하는 자세로 시대적 소명을 다할 것을 새삼 다짐한다.

인터넷 환경에 좀더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작업으로 창비 웹진이 새로이 단장을 했고, 계간지 전자책도 가을호 출간 직후 써비스를 개시할 예정이다. 정기독자분들께 창간호부터 최근호까지의 계간지를 전자책을 통해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할 예정인데, 여러분의 더욱 적극적인 활용을 바란다. 창비 자유게시판과 관련하여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지만, 진지한 네티즌들의 활동으로 매우 소중한 소통의 장이 되고 있는데, 네티즌 및 독자 여러분의 열정과 치열함이 우리 시대 각성한 민중이 지녀 마땅할 지혜의 확산에 기여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朴明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