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개혁의 고비에서

 

 

지구온난화 탓인지 봄이 왔나 싶더니 어느새 여름으로 곧장 내달리는 모양이다. 계절은 그래도 때를 맞추어 오지만, 정치권의 행보는 어지럽다. 여·야 할 것 없이 할 일은 쌓아둔 채 내년 선거에만 마음이 가 있고, 정작 속도를 내야 할 데서는 주춤거린다. 역사적인 6·15선언이 있은 지 1주년이 가까워오나 한반도 안팎의 사정이 겹치면서, 남북의 행보도 느려지고 북미관계도 부시정권 출범 이후 뒷걸음질을 치는 양상이다.

남북관계는 서둔다고 꼭 능사는 아니겠으나, 정작 남한 내부의 개혁이 난맥상을 보이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사회 전반의 개혁도 그러하거니와, 국가보안법·인권법·여성고용관련법 등 여러 법안의 처리도 미뤄지거나 엉거주춤 처리되고 만다. 개혁의 구호만 요란할 뿐, 방향과 전망은 갈수록 불투명해지면서, 수구세력에 빌미만 주고 있어 답답하다. 얼마 전 자행된 대우자동차 노동자에 대한 불법적인 폭력진압에서도 보듯, 일방의 희생을 강요하는 ‘개혁조치’가 진정한 개혁일 수는 없다.

말머리가 어둡게 잡혔지만, 사태를 비관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긴 호흡으로 보면 민주화의 도정에서나 통일의 과업에서 한 고비는 넘어섰다는 자신감마저 가질 수 있다. 언론개혁이나 성차별적 관행의 타파가 일반시민 사이에서 공감대를 넓혀가는 것도 작은 조짐이 아니거니와, 어찌되었든 여러 법안들이 의제로 오르고 대우자동차 해고자들의 요구가 법원에서 인정된 것도, 남한사회에 개혁의 기반과 폭이 점차 넓어져왔음을 말해준다. 남북문제도 마찬가지다. 부시정권도 매파적 입장으로만 밀고 나가기가 이미 쉽지 않을 정도로 탈냉전의 대세는 깊어졌고, 무엇보다 북한은 그냥 ‘깡패국가’가 아니라 미국의 첨예한 이해가 걸린 한반도 분단체제의 일원이라는 점이 일방적인 강경대응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현재 북미관계의 일시적 교착상태는 오히려 남북의 주체적인 노력의 필요성을 재인식하는 기회도 될 수 있다. 하여간 현정권으로서는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 그럴수록 설령 정권이 바뀌더라도 되물릴 수 없을 개혁의 구조적 기반을 다져놓는다는 생각으로 임해야지, 섣부른 정략적 계산을 앞세우다가는 게도 구럭도 다 놓치기 십상이다. 다시 개혁의 중대한 고비에 서 있다는 생각을 정권은 정권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다잡을 필요가 있겠다.

이번호는 6·15선언 1주년을 앞두고 ‘통일과정과 개혁과제’를 특집으로 삼았다. ‘국민의 정부’의 성과로 손꼽히는 남북관계의 진전을 순조롭게 이어나가기 위해서도 남한 내부의 개혁은 필수적이다. 동시에 민주와 통일의 단계론이나 남한 일국적 발상으로는 내부 개혁마저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는 것이 분단체제론의 한 전언이다. 실제로 이번 특집의 여러 글에서 분단체제와 그 와해가 남북 각자에 어떤 제약과 기회로 작동하는지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커밍스 교수의 논문은 한반도 긴장완화의 조건과 현정세를 한반도·동북아시아·세계체제를 아우르는 거시적인 시각에서 다룬 글로, 역사학자다운 풍부한 세목도 함께 제공한다. 남한 민중이 일궈낸 민주화가 얼마만한 성취인지 다시금 상기시켜주거니와, 미국의 대북전략이라든가 주한미군을 비롯해 미국에 대한 북한의 태도변화를 동북아질서와 연결짓는 대목도 흥미롭다. 북한의 개혁을 다룬 이남주 교수나 남북한 의료체계를 비교한 황상익 교수의 글 역시 계몽적이다. 이교수는 북한의 시장경제 도입의 전망과 한계를 찬찬히 짚으면서 ‘민족경제’식 발상의 필요성을 거론하고 있고, 황상익 교수는 남북 의료체계의 특징을 비교하고 그 통합의 전망까지 조심스럽게 탐구한다. 여기에, 민주화의 발목을 잡아온 수구세력의 행태에 주목하면서 정치와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정해구 교수, 이산가족 상봉을 고리로 하여 기억의 여성화·역사화가 우리 일상에 스며든 분단의 극복에 관건임을 성찰적 어조로 전하는 조은 교수의 글이 가세한다. 한번의 특집으로 남한 개혁의 주요 부문을 다 아우를 수야 없는 일이지만, 이런저런 연유로 경제 분야가 빠진 것은 아무래도 허전하다. 아직도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외국인노동자 문제를 다룬 논단의 설동훈씨 글이 이런 허전함을 덜어주나, 역시 후속 논의를 기약해야겠다.

이번호에는 문학란이 이채롭다.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김수영, 서정주, 고정희 등 타계한 세 시인을 육성으로든 타인의 입을 통해서든 한 자리에서 만날 모처럼의 기회다. 김수영 시인은 빼어난 산문가로도 이미 성가가 높은데, 그간 일반 독자는 물론이고 연구자의 시야에서도 대체로 누락되어 있던 7편의 산문을 발굴해 소개한다. 낡기는커녕 근 40년이 지난 지금도 정곡을 찔리는 신선한 아픔마저 주는 시평들이 경이롭고, 외국의 작가와 작품에 대한 통찰도 대목대목 빛난다. 또 얼마 전 작고한 미당 서정주 시인이 우리 시사에 남긴 무거운 족적을 자리매김하는 난감한 작업에, 고인과 심상치 않은 인연을 맺었던 고은 시인이 나서주었다. 미당의 문학적 궤적과 정치적 행보를 함께 살피는 이번 글은, ‘시인’과 ‘인간’, 예찬과 비난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소중한 한걸음이 될 것이다. 어언 10주기를 맞은 고정희 시인의 시세계를 정리한 나희덕 시인의 찬찬한 글과 함께, 고인들을 의미있게 추모하는 자리가 되었기를 바란다.

시란은 김지하 시인의 신작 7편을 전하는 기쁨은 물론이고, 이형기 시인의 원로다운 여백에서 신예의 패기까지 다채롭다. 소설란은 젊은 작가들로 꾸몄다. 해학적인 필치는 여전한 대로 가볍지 않은 여운을 남기는 성석제씨의 작품도 그렇고, 오랜만에 신작을 보내준 공지영씨와 천운영, 김종은 두 신진작가가 소외되고 밀려난 삶에 제가끔 개성있는 시선으로 육박해 들어간다. 또한 서평·촌평란의 문학관련 글들이 최근작 점검의 빈 공간을 채워주었다.

그외 비트겐슈타인 50주기에 그의 철학을 통념과는 달리 새롭게 읽어낸 이영철 교수의 논단도 유익하고, 설준규 교수의 맛깔스런 영화평, 한국영화 붐과 관련하여 주요 국제영화제를 자상히 소개한 허문영씨의 글, 그리고 알차게 꾸며진 촌평란도 이번호를 풍성하게 해주는 읽을거리다. 서평·촌평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독자의 편지를 앞으로 배치한 것이 독자들의 참여를 중시하는 뜻에서임은 지난호에도 말씀드린 바지만, 창비는 독자와의 소통을 확대하고 성원에 보답도 할 겸 두 가지 사업을 진행중이다. 웹매거진 창간을 포함하여 창비 홈페이지(www.changbi.com) 쇄신작업을 5월중으로 마무리지을 것이며, 8월쯤에는 창간호부터 그간 나온 『창작과비평』을 전자책으로 만들어 정기독자들께서 무상으로 볼 수 있게 할 예정이다. 또한 새롭게 만든 잡지 총목차·총색인도 곧 보실 수 있을 것이다.

독자 여러분과 만나는 길이 종이책 안팎으로 넓어지고 있음에 주목하며, 창비는 온라인의 활성화와 오프라인과의 넘나듦에 계속 깊은 관심과 공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번 독자편지란에도 온라인에서 퍼온 글이 실렸지만, 디지털창비 자유게시판에도 교육문제를 비롯해 지난호 잡지에 대한 깊이있는 논의들이 올랐다. 창비 자유게시판은 네티즌 여러분의 적극적인 활동에 힘입어 어느덧 문학·문화계의 중요한 언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싸이버세상의 함정과 폐해 또한 엄연하다. 이에 대해 질책하는 말씀도 많고, 그렇지는 않더라도 현재 자유게시판이 심한 몸살에 시달리고 있다는 데는 들러본 대다수 네티즌들이 공감하는 듯하다. 창비로서도 좀더 책임있는 운영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그러나 이 또한 네티즌의 자발적 동의와 성원 없이는 성사될 수 없으며, 바로 이것이 이 공간의 특장이다. 익명·실명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새로운 공론장인 자유게시판을 알차게 일구어가는 일은 넓은 의미의 ‘언론개혁’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중요한 사업에 여러분의 활발한 참여와 지원을 부탁드린다.

[김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