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개혁문화, 이렇게 만들자

 

개혁적 싱크탱크와 시민사회운동

 

 

조희연 曺喜昖

성공회대 교수, 학술단체협의회 상임공동대표. 저서로 『한국의 국가·민주주의·정치변동』 『계급과 빈곤』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국가폭력, 민주주의 투쟁, 그리고 희생』 등이 있음. chohy@mail.skhu.ac.kr

 

홍일표 洪日杓

참여연대 연구팀장,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 iphong@pspd.org

 

 

1. 민주주의 담론 및 실천의 ‘심화’와 ‘확장’의 필요성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현재까지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은 사회개혁의 중요한 추동력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시민사회운동은 다양한 민주주의 이슈들을 중심으로 국회·정당·정치의 민주화, 권력기관의 감시, 반(反)부패, 시민권 및 인권 보장 등 개혁을 추동해왔다. 역설적으로 시민사회운동은 바로 그러한 개혁노력으로 국가와 시장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1 새로운 전환의 길목에 놓이게 되었다. 사실 이는 모든 사회운동의 ‘운명’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스스로의 운동목표를 성취하게 되면, 자신들은 새로운 운동목표의 실현을 위해서 ‘진보’해야 하는 ‘운명’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87년 이후 15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필자는 시민사회운동이 다음의 두 가지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민주주의담론 및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실천’의 ‘심화’과제이다. 시민사회운동의 아래로부터의 개혁압력은 민주주의적 제도의 완비, 민주주의의 제도적 공고화, 후진국적 정치행태의 극복 등에 있어서 상당한 진전을 가져왔으나 이제 제도의 완비나 국가 및 시장의 형식적 합리화를 넘어서서, 권력 자체의 실질적 개혁을 도모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할 싯점에 이르렀다. 이런 점에서 개혁의 질적 도약을 위해서는, 나아가 민주주의적 개혁을 기득권체제 내로 삼투시키기 위해서는 한층 구체적인 전문역량이 필요하게 된다. 민주주의 실천의 심화를 위해 시민사회운동의 ‘전문화’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민주주의담론의 확장 과제이다. 현재까지 시민사회운동의 실천에서 민주주의는 주로 정치사회의 민주화, 정치개혁, 재벌개혁 등으로 표현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단계를 넘어 민주주의가 내포하는 ‘평등성’을 급진적으로 확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생활세계의 민주주의와 글로벌 민주주의로의 급진적 확장이 있다. 사실 근대사회의 역사는 민주주의 원리로서의 ‘1인 1표’주의와 자본주의 원리로서의 ‘1원 1표’주의에서 전자의 평등성을 급진적으로 확장함으로써 후자를 공적(公的)으로 규율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이런 점에서 민주주의가 갖는 평등성을 생활세계 영역에서의 권력관계, 국제 정치경제적 차원에서의 억압관계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화와 사회적 관계영역, 남녀관계 및 각종 兒슈얼리티 구성과정에서의 억압성과 권력관계, 소수자를 둘러싼 각종 지적·지식적 억압체계의 극복을 포함해, 국제적 수준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결과로 나타나는 국내적·국제적 양극화의 문제, 제국주의적 세계화의 문제 등을 급진적으로 이슈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주로 ‘정책역량, 혹은 정책지식역량의 강화를 통한 시민사회운동의 전문화’라는 과제와 관련해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2. 군부, 시장, 시민사회의 선도성?

 

사회발전에서 한 사회부문의 선도성이 소실되고 다른 부분이 선도성을 획득하게 되는 경우를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 부문의 조직적 효율성과 합리성이 다른 부분을 압도하게 되는 경우 부문간의 선도성의 교체를 경험하게 된다. 해방 이후 한국현대사의 변화과정을 보면 각 시기마다 주도집단 내지 선도집단들이 존재했다. 이러한 주도집단들의 변화를 각 사회부문의 조직적 효율성과 합리성을 통해서 파악하면, 한국현대사를 더욱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다.

먼저 50년대까지의 시기는 국가관료집단의 주도성이 강력한 시기였다. 식민지시대에서부터 이어지는 국가관료집단의 조직적 효율성과 합리성이 다른 사회부문을 선도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국가관료집단은 부패와 권력과잉에 늪에 빠지면서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 시기는 곧 61년 이후 군부집단이 주도하는 시기로 대체된다. 그 극우적 성격과 경직성에도 불구하고 군부집단의 조직적 효율성은 당시 관료집단의 조직적 효율성을 능가하고 있었다. 군부권위주의시대는 군부의 조직원리와 효율성을 국가관료제의 기본원리로 설정하고 나아가 사회전반의 기본원리로 강제하고 대입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사회의 군사화’ 경향은, 억압이란 의미에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 상대적으로 다른 부문에 비해‘앞서 있던’ 군부의 조직적 효율성과 합리성을 사회 전반에 강제한다는 의미에서도 파악될 수 있다. 이러한 군부의 조직원리는 다분히 일원적이자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집중하는 성취지향적 성격이 있었는데, 자신의 취약한 정치적 정당성을 만회하기 위해 이러한 군부의 조직원리는 경제성장이라는 목표에 매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이른바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 모델이다.

군부권위주의시대를 통해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그것은 한편으로 성장지향적 군부국가의 지원을 받아 시장부문과 기업부문이 급성장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군부권위주의적 억압에 저항하면서 민중부문을 포함한 시민사회가 급성장한 것이다. 하나는 권력유착적 자본부문의 성장이며 다른 하나는 권력저항적 시민사회의 성장이다. 이 각각은 군부국가의 조직적 효율성과 합리성이 담보하지 못하는 또다른 근대성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를 시장적 합리성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시민적 합리성이라 할 수 있다. 60년대 이후 노동집약적 산업화와 70년대 중화학공업화는 시장과 대기업부문 특히 재벌이 성장하는 계기였다.‘천민성’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부문에서는 근대적인 조직적 효율성과 합리성이 구현되기 시작해 군부국가의 합리성을 능가하게 된다.2 이들 기업부문이 군부국가와의 유착적 동맹관계에 의해 성장했다면, 시민사회는 군부국가의 억압을 뚫고 자생적인 저항적 시민사회를 형성하면서 성장했다. 반독재민주화운동을 통해서 체득한 근대적 시민권과 인권 보장, 민주주의의 원리, 자율의 원리는 군부집단이 갖지 못한 근대적 원리를 이미 구현한 것이었다.

  1. 필자는 국가 혹은 지배의 ‘자유민주주의적 정상화’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독재적 ‘예외’국가가 자본주의적 ‘정상’국가로 변화하는 과정이 된다. 조희연 「국가의 정상화에 대응하는 시민사회운동의 급진화」,『시민과세계』 4호(2003년 하반기) 참조.
  2. 1992년 총선과 대선에서의 국민당의 부상은 이런 의미에서 상징성을 갖는 사건이다. 이는 기업부문이 자신의 조직적 효율성을 무기로 국가의 조직자가 되기 위한 경쟁에 뛰어든 사건이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국민당이 부상한 것은 새롭게 성장한 대기업의 조직적 효율성과 합리성이 군부보다 앞서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아침 여섯시에 출근해서 업무를 시작하는 현대의 조직운영 방식과 오전 열시에 회의를 시작하는 기성 정당의 조직운영의 효율성 차이가 당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