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윤성희 尹成姬

1973년 경기도 수원에서 출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이 있음. hitchike@hanmail.net

 

 

 

거기, 당신?

 

 

창이, 가늘게, 흔들렸다. 그녀는 창에 손바닥을 대고, 가만히 숨을 멈추었다. 떨림이 혈관을 타고 심장까지 전해졌다. 15층까지 올라오는 동안 바람은 약간 신경질적이 되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바람이라면, 나뭇가지는 나뭇잎에 상처를 내지 않도록 가만가만 흔들릴 것이고, 구름은 둥근 달을 일그러뜨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움직일 것이다. 그녀는 베란다에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녀의 예감이 맞다면 아랫동네 어느 골목에서 곧 연기가 피어오를 것이다. 지난 한달 내내 동네를 공포에 젖게 만들었던 방화범이 오늘 같은 날을 지나치진 않을 것임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버스정류장의 쓰레기통에 불을 질렀을 때도, 의류 재활용품을 모아두는 상자에 불을 질렀을 때도, 모두 오늘처럼 가만한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베란다에 앉아서, 그녀는 어느 봄날을 떠올렸다. 주인집에서 처음으로 텔레비전을 산 날이었다. 마루는 이내 사람들로 꽉찼다. 동네에서 제법 큰 집에 속했던 까닭에 부녀회원들은 한달에 한번씩 그 집 마루에 모여 국수를 비벼 먹었다. 주인집 남자는 퇴근 후 가볍게 시작한 술자리가 뜻하지 않게 2차 3차로 이어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자기 집으로 사람들을 몰고 왔다. 중학생인 큰아들은 만우절날 선생님들의 슬리퍼에 본드를 칠했다가 일주일 정학을 맞기도 했는데, 늘 몰려다니는 다섯 명의 친구들과 장난을 계획한 것도 그 마루에서였다. 하지만 마루에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적은 없었다. 누군가 안방 미닫이문을 떼어내 마루를 넓혔다. 지붕 위에서 안테나를 설치하던 주인집 남자의 막내동생이 소리를 질렀다. 형, 잘 나와? 잘 나와! 마루에 있는 사람들이 동시에 대답을 했다. 뉴스에서는 사라예보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의 결승전을 보여주었다. 한국은 한 경기를 내주고 두 경기를 이긴 상태였다. 단체전의 네번째 시합이 시작되었다. 첫 세트는 21:10, 두번째 세트는 21:23. 세트스코어 1 대 1이었다. 이에리사 선수가 날카로운 써브를 날렸고 오제끼 유끼에 선수가 잽싸게 받아쳤다. 두 선수는 한동안 탁구공을 주고받았다. 두 선수가 공을 주고받을 때마다 어머니의 머릿속에서도 2.5그램의 탁구공이 통통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평생 따라다닌 편두통이 시작된 것은 이때였다. 이에리사 선수가 득점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어머니는 까닭없이 눈물을 흘렸지만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들키기 싫어 눈물을 안으로 삼켰다. 결혼을 하기 전에 어머니는 가슴속에 눈물주머니를 하나 감추어두었다. 어머니가 눈물을 안으로 삼키자 눈물주머니가 곧 터질 듯 부풀어올랐다. 그녀는 숨이 막혔다. 그래서 왼발로 어머니의 배를 걷어찼다. 그러고는 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여 박수를 치고 있는 마루로, 세상으로 나왔다. 어머니의 뱃속에 있은 지 여덟달 만이었다. 그녀가 울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눈물을 멈추었다. 어머니의 머릿속은 옛 기억들로 마구 뒤엉키기 시작했고 그녀의 머릿속은 박하향이 뿌려진 것처럼 환해졌다. 환해진 머릿속에는 어머니의 뱃속에 있었던 여덟달 동안의 기억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마침내 동쪽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그녀는 창문을 열고는 목을 길게 빼서 연기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연기는 가늘었다. 방화범은 언제나 작은 불을 질렀다. 집을 태우거나 승용차를 태우는 일은 하지 않았다. 착한 사람일 거야. 그녀는 연기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바람이 거친 날 불을 지르지 않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방화범은 바람이 불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곧 연기가 사그라들었다. 바람은 꺼져가는 불에게 이렇게 속삭일 것이다. 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생각해봐. 그러면 불은 채 타지 않은 것들을 마저 태우기 위해 마지막 힘을 다할 것이다. 불이 꺼지면 방화범은 어두운 골목길을 헤매고 헤맨 다음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처럼 노곤한 잠을 자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자리에 누웠다.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그는 짓다 만 건물 앞에 자전거를 세웠다. 작년 겨울 첫눈이 오는 날, 공사는 중단되었다. 그는 몇달 동안 만나오던 여자에게 이런 농담을 했다. 건물이 다 지어지면 전망 좋은 사무실을 하나 줄게. 하고 싶은 거 해. 모든 게 다 괜찮았다. 그는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다 지어졌다면 근처에서 가장 근사한 건물이 되었을 것이다. 첫눈이 오던 날 밤, 스물두살 때부터 같이 동업을 해오던 김사장과는 통화가 되지 않았다. 그는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사무실에는 상고를 졸업한 지 일년도 안된 여직원이 퉁퉁 부은 눈으로 앉아 있었다.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그냥 김사장이 시켰을 뿐이라고. 일주일 만에 전화를 받은 사람은 그 새끼 미국으로 날랐어,라는 말만 전해주었다. 그가 갚아야 할 빚은 그가 죽었을 때 탈 수 있는 보험금의 몇배나 되었다. 그는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종아리는 마라톤 선수들처럼 단단했다. 코스는 항상 똑같았다. 고등학교 때 늘 탔던 45번 버스의 노선을 따라 밤길을 달렸다. 고등학교 때 그의 일상은 45번 버스 노선 안에 있었다.

자전거를 타면, 그의 머릿속에는 늘 똑같은 영상이 떠올랐다. 체육시간이었다. 새로 부임한 체육선생은 마라톤 선수였다고, 전국체전에서 은메달을 딴 적도 있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런 의미에서 운동장 열 바퀴. 자, 뛴다. 처음 한 바퀴를 뛰자 등에서 땀이 흘렀다. 끈끈함이 기분 나쁘지만은 않았다. 세 바퀴를 뛰자, 너도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혼자 살 수 있겠지? 나는 니 아버질 찾아간다,라는 쪽지만을 남기고 사라진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속력을 냈다. 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칠 때마다 어머니의 눈 코 입이 뭉그러졌다. 그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한참을 달리다 옆을 보니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반 아이들은 배구장에서 배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다리는 멈춰지질 않았다. 여섯살 때, 그는 잔디 깔린 마당이 있는 이층집으로 이사를 왔다. 그 집은 아버지가 십오년을 일했던 신발가게의 사장이 살던 집이었다. 신발가게 사장은 부인이 죽자 재산을 정리해 미국으로 떠났다. 아버지는 이층집을 물려받았다. 그게 퇴직금이었다. 이삿짐을 다 나르고 아버지는 거실 한가운데 가족사진을 걸었다. 그때 집이 흔들렸다. 지진이었다. 그는 소파에 얼굴을 묻었다. 액자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나뭇결 무늬의 마룻바닥에 흠집을 냈다. 달리면 달릴수록 그는 자꾸 어려졌다. 새 집으로 이사를 하자 아버지에게는 서재가 생겼다. 아버지는 한번 서재에 들어가면 며칠이고 밖에 나오질 않았다.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재주라곤 사람들의 발을 보고 싸이즈를 맞추는 게 전부였다. 이젠 사람들의 발을 내려다보는 게 지겨워. 아버지는 말했다. 자신의 신체 중에서 발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했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에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미국으로 떠났다. 신발가게 사장이 그곳에서 공장을 차렸다고, 그래서 믿을 만한 공장장이 필요하다고 편지를 보내왔다. 종이 쳤는지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갔다. 인마! 체육시간 끝났어. 체육선생이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는 달리기를 멈추었다. 그후 체육시간이 되면 그는 달리기만 했다.

그는 45번 버스의 종점에 도착했다. 버스정류장에 자전거를 두고 그는 걷기 시작했다. 가파른 언덕 때문에 자전거로 오르긴 벅찬 동네였다. 언덕 꼭대기에는 고층아파트가 동네를 굽어보고 있었다. 피아노 학원을 끼고 뒷길로 들어서니 가로등도 없는 후미진 골목길이 나왔다. 전봇대 아래에 라면박스가 놓여 있었다. 그는 성냥을 꺼내 불을 피웠다. 박스가 젖었는지 불은 이내 꺼졌다. 그는 라이터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걸었다. 조금 추워지기 시작했다. 성냥은 한 개비밖에 남질 않았다. 대문 앞에 화분이 버려져 있는 게 보였다. 화분 안에는 뿌리가 드러난 화초가 들어 있었다. 나무는 병에 걸렸는지 잎이 하/다. 그는 우체통에서 편지를 꺼내 거기에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나뭇가지에 불을 옮겼다. 나뭇가지가 타면서 매운 연기가 났다. 연기가 눈에 들어가서 그는 눈물을 약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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