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거대 스포츠 행사가 남기는 것

 

 

정준영­ 丁俊榮

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 문화평론가. 저서로 『만화보기와 만화읽기』 『텔레비전 보기–––시청에서 비평으로』 등이 있음. junchung@dongduk.ac.kr

 

 

행사는 끝났지만……

 

한해 두 번의 거대 스포츠 행사라는 숨가쁘던 일정이 마침내 마무리되었다. 스산한 가을바람과 함께 ‘Be The Reds’ 티셔츠가 거리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더니, 북한의 핵개발이라는 으스스한 소식에 밀려 ‘북녀 응원단’의 어여쁜 모습에 대한 기억도 급속히 희미해져가고 있다. 언론보도는 발빠르게 대통령선거 이야기로 달려가며, 술자리의 환담에서도 스포츠를 얘기하는 목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는다. 월드컵을 달구었던 자발성의 향연, 통일에의 기대를 부풀게 하던 북녀 미인의 웃음은 이제 한여름밤의 꿈으로 그냥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일까? 앞으로 우리 사회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고스란히 일상을 회복하게 되는 것일까?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몇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가자. 월드컵 직후 사상 최대수준으로 치솟던 프로축구의 관중수가 불과 두달이 지나지 않아 다시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사실 이런 경험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직후에도 이미 겪어본 적이 있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와 관련해 국내 프로축구의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지적되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월드컵 기간중 거리를 메운 수많은 군중들이 축구를 좋아해서 모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월드컵에 대한 열광이 ‘대〜한민국’에 대한 열광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다소의 한정이 필요하다. 불과 석달 후에 벌어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을 성원하는 열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회장소가 부산이었고, 종목이 많아 집중력이 떨어졌으며, 중반 이후 메달 레이스의 박진감이 감소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과거 타국에서 열렸던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을 지켜보며 가슴 졸이던 느낌을 경험할 수 없었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무언가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월드컵이 끝난 후 한동안 그 한달의 흥분을 정리해보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펼쳐진 바 있다. 당장 월드컵의 경제적 효과를 따져보는 손익계산서가 제출되었고,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얘기하는 논의가 흘러나오는가 하면, 월드컵을 정치적으로 이용해보고자 하는 시도까지 엿보였다. 마찬가지로 이번 아시안게임과 관련해서도 남북관계의 변화라든지 통일에 대한 전망이라는 거시적 차원의 논의에서부터 북한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얘기들이 짧게나마 제출되었다. 하지만 두 대회의 의미를 전유하려는 싸움은 여전히 진행중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선거라는 목전의 대사 때문에 잠시 잊혀지고 있지만 앞으로도 월드컵이나 아시안게임의 경험이 끊임없이 환기되어 새로이 의미규정되는 일이 반복되리라는 것이다. 그 결과 두 대회의 의미가 어떤 식으로 정리되고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는 스포츠 경기의 승부만큼이나 예측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대 스포츠 행사의 효과를 논의하기에 앞서 한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일반적으로 스포츠가 독립변수가 되는 사례는 그다지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 말이다. 축구 때문에 전쟁이 벌어진 적이 있고 권투 때문에 북아일랜드 내전이 잠시 휴전에 들어간 적도 있지만 거대 스포츠 행사의 개최에 따른 직접적 경제효과를 제외한다면 대개의 경우 스포츠는 여타 정치·경제·사회적 변수들의 종속변수이거나 기껏해야 매개변수 정도일 뿐이다. 그나마 그런 경제적 효과조차 단기적인 것에 불과할 뿐 장기적인 지속력을 갖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올림픽과 월드컵 등 거대 스포츠 행사의 효과는 각 나라의 사정에 따라 결코 동일한 것이 아니다. 무리한 투자를 감당하지 못해 올림픽 개최 후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몬트리올의 사례는 그중 가장 극단적인 경우이다. 따라서 거대한 참여규모 때문에 우리의 눈이 잠시 흐려진다 하더라도 일부 분야를 제외하면 올해 우리나라에서 개최됐던 대회들 역시 독립변수의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일부 분야에서조차 다른 조건들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그 효과는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스포츠 행사의 효과가 덧없는 것임은 과거 우리 사회가 치러본 바 있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경험에서 이미 확인한 바 있다.

비록 공동개최이지만 월드컵을 개최함으로써 우리나라는 올림픽과 월드컵의 양대 스포츠 행사를 모두 개최한 10개국의 일원이 되었으며, 수도가 아닌 도시에서 아시안게임을 개최한 두번째 국가가 되었다. 거대 스포츠 이벤트를 유치하기 위한 국가간의 경쟁이 치열한만큼 앞으로도 이 숫자는 그리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또 공교롭게도 지난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는 중국에 이어 2위를 기록하였으며, 1988년 올림픽에서는 금메달 12개를 획득하여 세계 4위의 성적을 거둔 바 있다. 그러나 그때의 호성적이 그대로 우리나라의 번영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었다. 80년대 중반 ‘3저 호황’을 등에 업고 번영을 구가하던 우리 경제는 올림픽 이후부터 불황에 빠져들어 고난의 90년대를 보내야 했다. 90년대 중반 한때 반짝한 적도 있지만 곧 IMF 환란을 겪으며 30여년의 경제개발 기간 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한순간에 날려버릴 위기를 경험하기도 했다. 올해 열린 두 대회에서의 호성적이 국운상승의 기운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낙관적인 기대에 들떠 있는 사람들이라면 서울 올림픽에서의 열광이 지난 15년 동안 어떤 식으로 사그라들었는지를 진지하게 참고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스포츠의 세계화

 

스포츠가 종속변수라고 해서 거대 스포츠 행사가 그 주최국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각국의 사정에 따라 영향의 범위와 크기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거대 스포츠 행사는 단순히 그 규모 때문에라도 주최국에 다소의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다. 당장 거대 스포츠 행사를 치르기 위해 건립되는 경기장들은 경제에 대한 영향은 물론 국민들의 체육활동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초래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월드컵은 우리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군중집회를 이끌어내었다는 점에서 그 영향의 강도가 더욱 클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면 이런 거대 스포츠 행사를 치름으로써 우리 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생겨났고 생겨날 것인가? 먼저 스포츠 내적인 부문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와 관련하여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스포츠의 세계화 경향이다. 스포츠를 흔히 세계인의 언어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스포츠의 세계화라는 말이 다소 어색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현대 스포츠의 특성 중 하나는 보편성이고 그것은 세계 어디에서나 동일한 규칙이 적용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장 여러 종목의 운동경기들을 모두 포괄하는 유개념으로서 ‘스포츠’라는 보통명사 자체가 전세계에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단어이다. 단수형을 사용하느냐 복수형을 사용하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나라에서나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얘기하는 세계화란 스포츠 성취에 대한 기대수준 또는 평가의 세계화를 의미한다. 권투와 유도 등 일부 투기종목이나 마라톤 등을 제외한 국제경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