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2000년대 한국문학이 읽은 시대적 징후

 

거미의 집짓기와 소화법

통일과정의 소설적 표현

 

 

황광수 黃光穗

문학평론가. 국민대 문예창작대학원 겸임교수. 주요 저서로 『삶과 역사적 진실』 『길 찾기, 길 만들기』 『소설과 진실』 등이 있음. clhwks@dreamwiz.com

 

 

1. 존재론적 난제들

 

“남북관계와 분단문제를 소재로 하는 작품을 중심으로 ‘6·15시대’의 의미를”논하라는 게 원고청탁자의 요청이었는데, 텍스트들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6·15시대의 ‘통일’주제 소설들을 논하는 쪽으로 기억이 굴절되어버렸다. 이것은 사실의 층위와 희망의 층위를 뒤섞어버린 나 자신의 의식상의 오류임에는 틀림없지만, 남북관계는 ‘분단’이라는 왜곡된 역사적 현실 위에 놓여 있기에 ‘통일’이라는 풀림의 과정을 거쳐야 할 관계로 여기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이 두 차원 사이에는 건너뛰기 어려운 간극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희석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분단—통일’문제를 창작의 모티프로 삼는 작가들은 다양한 형태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존재론적 난제들, 다시 말해 분단으로 인한 심원한 간극과 견고한 체제의 틀을 메우고 녹여야 하는 이중의 난제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

‘통일’을 염두에 두고 깊이 들여다보면,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공간에도 ‘분단체제’라는 이름의 강력한 전류가 흐르고 있다. 국내외의 정치적 차원은 말할 것도 없고 개인의 생활영역과 의식 속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도 통일을 불가능한 꿈으로 여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뿐만 아니라 통일을 일회적 사건이나 목표가 아닌 점진적 과정으로 이해하는 지식인들도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금 ‘통일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작가들에게 반드시 유리한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살폈듯이 난제는 여전한데, 독자들의 눈높이는 턱없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통일에 관한 소설 쓰기는 모티프의 발견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민족’을 내세우는 것은 그것을 상상의 공동체 또는 폭력으로 치닫게 될 숙명을 안고 있는 혈연적 집단주의 정도로 여기는 지식인들의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어려움은 표현층위에 도사리고 있다. 통일 주제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경험과 현실에 관련되는 것인만큼 그 표현이 사실을 드러내는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큰데, 그 대상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간극과 차이들, 그리고 일상에서는 포착되기 어려운 분단체제의 미세한 변화를 동반하는 동적인 과정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주제의 글쓰기는 희박한 존재성 위에 아슬아슬하게 발을 걸치고 모순에 찬 현상—간극과 틀—에 도전하는 모험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이 주제의 소설 창작은 허공에 거점을 마련하고 먹이의 딱딱한 껍질에 소화액을 주입하는 거미의 집짓기와 소화법(消化法)에 비유될 수도 있을 듯하다. 근래에 발표된 작품들 속에 헛것들(귀신이나 비현실적 환상)의 등장이 부쩍 잦아지고 있는 현상도 이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2. 사실과 진실의 변증법

 

‘분단—통일’은 우리 작가들이 줄기차게 매달려온 주제이다. 이 주제의 작품들은 대부분이 역사적 사실의 확인 자체가 큰 의미를 띨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산물이지만, 민주화의 진행과 더불어 작가들은 숨겨진 사실을 들추어내는 것만으로는 제 몫을 다할 수 없는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주제는 90년대 중후반 이후 ‘북한사람과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소재의 발굴을 통해 가까스로 명맥을 이어왔을 뿐이다. 6·15 이후 이러한 변화는 일종의 경향성을 띠며 양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소설들이 그려내는 북한의 현실은 아직은 파편적·표피적인 데 비해 체제에 대한 비판의식은 전보다 뚜렷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경향에는 남쪽의 억압적인 현실과 인권유린을 비판했던 작가들이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왜 입을 다물고 있는가 하는 강력한 항의가 깃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후명(尹厚明)의 『삼국유사 읽는 호텔』(랜덤하우스중앙 2005)도 그러한 경향성을 띠고 있다. 북한방문단의 일원인 ‘나’는 북한주민의 삶의 모습이나 행위에서 낯섦과 이질감을 느끼거나 간간이 사회주의적 이상을 회의하는 상념에 빠져든다. ‘나’는 결국 북한을 ‘이상한 나라’로, 호텔을 ‘수용소’처럼 느끼며 『삼국유사』 읽기에 빠져듦으로써 그곳의 현실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린다. 그의 읽기는, 독서는“텍스트를 다시 쓰는 것”이라는 바르뜨의 주장을 실감케 할 만큼 사유의 풍요로움을 보여준다. 삼국시대의 신화와 종교와 문학이 심오한 미의식을 띠고 되살아난다. 그래서 먼 과거의 삶의 모습들은 그 자신의 충만한 존재감을 위해 탐색·탐미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러한 읽기에서 드러나는 그의 미의식은 사회주의적 이상이 남겨놓은 ‘남루’한 모습들을 더욱 초라해 보이게 만든다.

전성태(全成太)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문학수첩』 2005년 가을호)은 한폭의 눈 시린 풍경을 통해 북한주민들의 굶주림을 전경에 내세우고 있다. 이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객관적인 시각은 외딴 오두막에서 안내인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비참한 모습과 긴장된 상황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다섯살 난 여자아이까지 포함하여 여섯 사람으로 이루어진 이 집단 속에 외부에 대한 정보가 흘러들 수 있는 통로는 오십대 중국교포 한 사람뿐이다. 그는 북한과 미국의 극한 대치상태를 두고 북한은 지금 미국과 두번째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말한다. 아이의 아버지는“미국이 정말 우리를 칠까요?”하고 묻는다. 이 짤막한 대화는 지금 북한의 처지가 그들만의 책임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암시하고는 있지만, 이 작품은 가혹한 굶주림의 현실—애장터에 묻힌 아이들의 시체까지 먹으려고 도굴한다는—을 우리 눈앞에 바싹 당겨놓고 있다. 이처럼 사실성을 드러내는 데 촛점을 맞추고 있는 이 작품을 논하는 자리에서 방민호(方珉昊)는“필자는 지금 우리가 북한체제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북한주민들의 인권과 생활의 권리를 옹호해나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반도를 살아가는 문학인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하면서“문학인은 어떤 어려운 조건 아래서도 언제나 인권과 생명의 본의를 버리지 않는 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요청을 덧붙이고 있다.(「공동체주의의 ‘국경’을 넘는 일」, 『실천문학』 2006년 봄호, 348면)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작품에 내재된 시각이 사실의 배후와 맥락, 즉 ‘사실의 사실’로서의 진실에 가닿아야 한다는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인권보다 중요한 것은 없지만, 역사에 작용하는 복수(複數)의 힘들에 대한 폭넓은 고찰도 인권의 중요성을 실천적으로 인식하고 해결해가기 위한 전제가 된다. 그리고 남과 북의 역사를 동일한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내부의 비판을 통한 반성이 우선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상대방의 자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면서 교류와 화해의 조건들을 쌓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내부비판’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김원일(金源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