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이제니
1972년 부산 출생. 200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아마도 아프리카』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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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그것인 것으로 말하기
오래전 너는 내게 시 한편을 번역해 보내주었다. 언어의 죽음 혹은 언어와 죽음에 관한 시였고 나는 오래도록 그 시를 사랑하여 소리 내어 읽고는 했다. 이후 나는 내가 모르던 그 언어를 익히게 되었고 그 시를 번역하게 되었고 오래전의 내가 그 시를 오독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몇년 뒤 어느날 나는 네가 머물던 도시로 여행을 가게 되었고 너는 기꺼이 나의 동행이 되어주었는데. 이전에 나는 그 도시에 가본 적이 있었지만 어떤 연유로 말하지 않았고 말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 도시는 처음 방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그 도시의 식물원은 처음 가보는 곳이었고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임에도 인공적 구조의 조화로움이 아직 쌓이지 않은 시간의 온기마저도 완벽하게 구현해내고 있었다. 곳곳에는 나무의 이름을 사랑해서 울고 있는 것들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고 정원사는 식물의 낱말을 가로지르며 풀과 잎과 뿌리의 시간을 지켜내려 애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