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임현 賃賢

1983년 전남 순천 출생. 201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그 개와 같은 말』, 중편 『당신과 다른 나』 등이 있음.

dasimarvel@naver.com

 

 

 

거의 하나였던 두 세계

 

 

1

 

사실, 그 일에 대해 오명조가 내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나는 멀리서 사태를 관망하는 입장이었고, 대체로 무관했으며, 학교의 입장에서 보자면 나름 난처한 면도 없진 않겠으나 엄연히 피해자가 있는 사안이니만큼 정당한 보상과 그에 따른 책임 있는 사후대책 마련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을 뿐이다.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뭐든 될 대로 되겠지…… 하는 심정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때도 지금도 연재는 나와는 조금 다른 마음인 것 같았다.

여름 계절학기를 얼마 앞두고 예상보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대강 설명해주었을 때, 그러니까 결국 피해학생 쪽에서 변호사를 선임하고 엊그제 학과 사무실로 내용증명이 날아왔더라는 소식을 전했을 때, 연재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가만 쳐다보기만 했었다. 그러고는 이 순간 반드시 해야만 하거나 가장 적당한 말을 찾으려는 사람처럼 조그맣게 입을 움찔거리다가 다시 다물기를 반복했는데, 끝내 거기에 대해 뭐라 하는 말은 없었다. 그 대신 좀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라는 듯이 이번 달에 계획된 경조사비며 자동차 검사비, 각종 공과금과 대출 이자 등에 대해 상세한 지출 목록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괜히 어깨를 움츠리고 머리를 조아린 채 연재의 정확한 셈에 따라 한번씩 고개를 끄덕이면서, 혹시라도 무겁게 한숨을 내쉬지는 않을까, 여기에 더 필요한 무언가가 있다거나 거기에 들어갈 만만치 않은 비용을 들먹이는 거 아닐까……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연재도 편치만은 않아 보였다. 더구나 평소와 달리 그때는 왠지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는데, 결국 뭔가를 고백하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내게 물어왔다.

“당신은 별일 없는 거지?”

“나야 뭐, 괜찮지.”

그러니까 그때는 그랬다는 것이다. 괜한 걱정과 우려에 내심 당당해지기까지 했었다. 무엇보다 당장 처리해야 될 생활비와 공과금에 비하자면 그 일은 뭐, 나와는 전혀 무관했다. 단순히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난 학기 명조가 내 수업을 수강한 적은 있지만 별로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다. 다른 자리에서 건너 듣기로 고창인가 고흥 어디에서 부모님이 복분자 농장을 운영하는데, 학과 행사를 위해 과실주나 건강음료 등을 무료로 제공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걸로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거나 동기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닌 듯했는데, 그런 말을 듣던 당시의 나조차도 대단한 의미를 두고 기억한 것은 아니었다. 본래는 타 대학에서 치기공이든가 치위생인가를 전공하다가 작년에 편입을 했더라는 이력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를 떠올리기는 했으나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나중에 엉뚱한 학생에게 굳이 국문과로 편입한 이유를 물었다가 “제가요? 저는 그런 적이 없는데요?” 어쩐지 억울해하는 반응이 돌아와 당황한 적도 있었으니까.

다만 그로부터 얼마 뒤, 써지지 않는 학회 발표 원고를 앞에 두고 끙끙대던 중에 명조를 생각한 적은 있었다. 기력 회복과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보양식을 검색하다가, 언젠가 누가 오디즙 한 팩을 건네기에 받은 적이 있는데 그게 아마 그 학생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정도였다.

명조에 대해 그나마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학기가 절반쯤 지났을 무렵의 일이었다. 비전임교원을 대상으로 단과대학별 교육 프로그램이 있던 날이었는데, 법정의무교육이었고 그래서 그런가, 다소 민방위훈련 같은 분위기에서 ‘인권’이나 ‘평등’, ‘차별 없는 우리 대학’ 같은 말들이 흘러나왔다. 온라인상으로 개별 수강도 가능했으나 소강당 안에는 아는 얼굴들이 제법 보였다. 언젠가 재임용 계약을 하는 데 이런 자리에 얼굴 한번씩 비추는 게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내 경우엔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신경이 쓰이기는 했으나 뭐, 그렇게 하지 않을 만한 이유도 딱히 없었을 뿐이었다. 새로 부임했다는 인문대학장이 인사차 단상에 올라 “지금 여러분 표정이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아주 똑같군요” 하고 농담을 했을 때도 일부러 더 크게 반응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웃겨서 웃었을 뿐인데 옆에 앉은 누군가가 떨떠름하게 나를 쳐다보았을 땐 그게 뭔가 다른 의도로 보이지는 않았을까, 괜히 마음이 불편해졌다. 더구나 그가 방금 혼자서 중얼거리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되묻고 확인하고 싶었다.

“이런 게 다 폭력이지.”

왠지 그런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바쁘지 않다면, 하고 조건이 붙기는 했으나 교육을 마친 뒤 이어진 식사자리에 몇몇 시간강사들과 함께 참석한 것도 다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평소라면 수업을 마치자마자 배차 시간과 환승 시간을 확인하고, 편도로 두시간이 걸리는 일산까지 어떻게든 서둘러 돌아갈 걱정을 했을 테지만, 그렇다고 딱히 서둘러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전임 교수들이 먼저 예약된 식당에서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더라는 말도 전혀 이유가 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연재에게 전화를 걸었고, 만약 조금이라도 마뜩잖아하거나 당장 출발하라거나 하는 식의 말을 듣게 된다면, 당연히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당연히 괜찮지.”

구차하게 사정을 설명한 것도 아닌데, 연재는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그래도 너무 늦으면 안 되니까 막차 시간을 꼭 확인하라는 말도 덧붙였는데, 막차는 무슨…… 그렇게까지 오래 남아 있을 생각이 내게는 전혀 없었다.

 

예상보다 자리가 길어진 것은 말하자면 괜한 오해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테이블당 하나씩 느타리버섯을 가득 넣은 불고기전골이 올라와 있었고, 그것을 중심으로 둘러앉은 그 자리가 나는 몹시 어색했다. 간단한 인사말과 안부들이 오간 뒤 그것으로 마치 해야 할 일은 이제 다 끝났다는 듯이 몇 사람이 먼저 일어서기도 했다. 그러니까 대부분은 불편해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애버리기에는 누군가에게 또 아쉬울 법도 한 자리라, 굳이 애써서 차려 놓은 모양새였다. 맥주 한잔을 받은 채 나는 적당히 빠져나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행사 진행을 위해 동원된 근로장학생 몇명이 따로 테이블을 잡고 있어서 “너는 네 말을 좀 해. 그렇게 남의 말만 하지 말고” 하는 대화도 좀 엿듣다가, 누군가 내게 말을 걸면 대답하고, 대개는 딱히 누구한테 하는 말이 아닌 말들을 들으면서, 혹시라도 붙잡거나 술을 더 권한다면 그때 댈 만한 핑곗거리를 미리 생각해두고 있었다. 교학처장으로부터 버섯이 콜레스테롤 감소에 좋다거나, 그래서 고기랑 먹으면 궁합이 잘 맞는다는 소리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다른 생각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고개만 끄덕이지 좀 말아요.”

그런데도 정확하게 나를 지목하던 그 낮은 목소리가 나는 꽤 당황스러웠다.

“왜 듣지도 않고 마냥 그렇다고만 하냐고요. 사람 참…… 기분 나쁘게.”

그러고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밖으로 나가버렸다. 무안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상황을 해명하고 싶은 것이 먼저였으나 정작 그 순간의 나는 젓가락을 들어 전골 한움큼을 집기만 했을 뿐이었다. 따라두고 오래 마시지 않은 미지근한 맥주도 한모금 들이켜고 질긴 버섯을 우적우적 씹으면서, 그렇지 버섯은 콜레스테롤을 낮추지, 소화기관에도 좋고 비만이나 고혈압에도 효과가 좋아서 성인병 예방에도 좋다던데…… 근데 그게 뭐, 좋은 것을 좋다고 했을 뿐인데 내가 뭘, 뭘 어쨌다고…… 그런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옆에 앉은 또다른 사람이 내 무릎을 툭툭 두드려주었을 땐, 정말이지 내가 뭔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된 것 같아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그날 연재는 새벽 두시를 넘겨서야 도착한 나를 타박하거나 반드시 그랬어야 할 이유를 따져 묻거나 하지 않았다. 샤워를 다 마칠 때까지도 먼저 잠들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래서 다음 학기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거기서 뭣 좀 들은 게 없느냐고,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았을 텐데도 그러지 않았다. 실은 나도 그게 가장 궁금했으니까. 식당에서 있었던 난처한 일들에 대해서도 나는 말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아마 연재는 그로부터 더 많은 고민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불안해하고 걱정을 하고 좀처럼 해답이 나오지 않는 계산에 빠져들었을 텐데, 대신 우리는 명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나눴을 뿐이다. 계획보다 너무 늦어버린 사정에 대해 설명하다가, 그 자리에 내 수업을 듣던 학생도 하나 있었다고, 막차 시간은 이미 지난 뒤였고 가는 방향이 비슷해서 함께 택시를 탔으나 생각보다 많이 돌아가는 길이었다고. 그러니까 그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명조와 나는 이것저것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명조는 뭐랄까,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빈 국그릇 같은 아이였다.

“말이 뭐 그래. 국그릇이 뭐야, 사람한테.”

그때는 그냥 그것 외에는 별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생긴 것도 뭉툭하고 하는 말도 대체로 진지한 데다가, 딱히 표정이랄 것도 없이 사람을 뚱하게 바라보는 것이 상대방을 괜히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게 무례하다거나 불량하다거나 어떤 다른 감정을 품게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명조가 아무한테나 자기 속엣말을 해버리는 부류라는 생각은 했었다. 그런 솔직함이 나는 조금 어색했을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