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연수 金衍洙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 소설집 『스무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장편소설 『7번국도』 『꾿빠이, 이상』 등이 있음. larvatus@netian.com

 

 

 

거짓된 마음의 역사

 

 

1888년 3월 13일 샌프란시스코

존경하옵고 친애하는 죠지 워싱턴 브룩스 씨에게

한동안은 바다만 바라보고 지냈습니다. ‘어디를 봐도 끝이 없는 푸른빛, 가벼운 바람과 물결이 이는 소리, 어마어마한 파도’, 월트 휘트먼의 시구처럼 연신 포말을 일으키며 서로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해변과 투쟁을 벌이는 바다를 보며 저는 ‘두려움 없이 운명을 다하는’ 일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동부 보스턴 출신인 제게 바다란 폭이 상당히 넓은 국경선에 불과했습니다. 지난 몇세기에 걸쳐서 수많은 유럽인들이 대서양을 바라보며 상상력을 펼쳤으니 그 결과물이 바로 자유의 제국 미합중국입니다. 대서양은 이제 우리에게 너무나 명백한 바다가 됐습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귀하의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매일 바닷가를 거닐어보니 세상에는 아직 프런티어가 되는 바다도 있다는 걸 알겠습니다. 프런티어란 기회의 땅이 아니겠습니까? 기회의 땅에서는 상상력이 가장 센 자가 승리하는 법입니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선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의 속성을 지켜보면 세상의 모든 프런티어가 거기에 거주하는 생물을 얼마나 강하게 만드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 역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저는 그런 예를 여기서도 발견했습니다. 매년 봄, 사리가 최고조에 달하면 이곳 서부 해안으로는 색줄멸이라는 물고기떼가 파도를 타고, 갈 수 있는 한 가장 먼 해변까지 거슬러올라가 알을 낳는데, 이게 아주 장관입니다. 이 바다 생물은 다음 썰물 때 알이 파도에 쓸려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들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먼 경계선까지 밀고 올라가는 모험을 벌이는 셈입니다. 이런 점에서 색줄멸은 강한 물고기입니다.

미지의 프런티어를 두고 상상할 수 있는 능력에서 보자면 색줄멸보다 조금 더 나은 생물이 바로 중국인들입니다. 이곳에 와서야 저는 중국인들이 샌프란시스코를 금산(金山), 즉 ‘Golden Mountain’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1848년 제임스 마셜이 쌔크러멘토에서 발견한 작은 광물질 덕분입니다. 북극이 나침반의 바늘을 잡아채듯 황금은 인간을 끌어당깁니다. 이것은 만유인력처럼 동양과 서양 모두에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만 해도 8만명에 가까운 중국인들이 ‘아시아의 쓰레기’니 ‘저질 인종’이니 하는 악담을 들어가면서 모여사는데 이게 다 샌프란시스코를 황금의 산이라고 상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최대한 육지 쪽으로 올라와 알을 낳는 물고기들처럼 중국인들도 자신들이 아는 세계의 끝까지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색줄멸보다는 내륙으로 조금 더 들어오긴 했지만, 이교도들의 상상이 뻗어갈 수 있는 범위는 거기까지입니다. 노예선을 떠올리게 하는 화물선 흘수선 아래 3등 객실에서도 꿋꿋이 버티던 중국인들마저 대개 신대륙이 멀찌감치 보일 때쯤이면 황금의 산이 있다는 샌프란시스코가 자신들이 떠나온 고국의 땅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는 크게 낙담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주정부가 중국인들에게는 채광조차 금지시켰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들을 가짜 황금의 산으로 끌어들인 중국 무역상들을 원망할 때까지는 그 실의의 마음을 조금 미뤄두는 게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황인종의 상상력이 물고기보다 조금 더 나아가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니 누굴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황금의 산이란 샌프란시스코의 금융가인 마켓 스트리트의 빌딩군입니다. 그 앞에 데려다놓아도 곡괭이를 어깨에 멘 왜소한 황인종들은 과연 황금의 산은 어디 있는가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겠죠. 자유와 진보와 문명의 빛에 반짝이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황금의 산이라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전의 노예인 이 쿨리(coolie)들은 씨에라네바다 산맥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 철로를 건설할 때도 변변한 항의 한번 못한 것이겠죠. 색줄멸이나 중국인이나 눈이 없긴 매한가지입니다. 상상의 눈 말입니다. 에머슨의 말마따나 ‘성스럽고 고결한 마음’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지 못한다면 그 눈에는 어떤 자유의 영상도 맺히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 세상을 등진 앨런 핑커턴은 어린시절부터 제 영웅이었습니다. 제가 탐정이 된 데는 그의 영향이 큽니다. 고향 보스턴에 있던 그의 탐정사무소에는 “우리는 잠들지 않는다”라는 글귀가 굳은 맹세를 암시하듯 볼드체로 각인돼 있었습니다. 그건 언제나 두눈을 부릅뜨고 지켜본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겉으로 보이는 현상의 내부에 감춰진 본질을 찾아낸다는 뜻이며 황막한 프런티어 속에 숨은 신세계의 질서를 꿰뚫어본다는 뜻입니다. 링컨 대통령의 대리인이자 격렬한 노예제 폐지론자인 핑커턴에게서 저는 현실에 존재하는 황금의 산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감춰진 황금의 산을 봐야만 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마켓 스트리트를 움직이는 것은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우뚝 선 바로 그 황금의 산입니다. 영원한 사랑이나 인간의 꿈, 혹은 자유의 제국 미합중국 등이 이에 비할 수 있습니다.

저를 믿고 이 사건을 의뢰하신 게 대단한 행운이라는 사실을 이제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제가 찾아나서는 것은 단지 귀하의 사랑을 납득하지 못하고 은자의 나라로 숨어든 귀하의 약혼녀만은 아닙니다. 제게는 모든 인간의 소망을 실현시키는 위대한 상상력의 소산인 미합중국을 이방의 땅에서 찾아내겠다는 야망이 있습니다. 그 여인이 있는 곳이 ‘은자의 나라’라고 하셨습니까? 언제나 부릅뜬 마음의 눈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는 자에게 은자의 나라란 없습니다. 단지 문명의 나라와 야만의 나라가 있을 뿐입니다. 상상의 지평을 세상 끝까지 뻗칠 수 있는 자에게는 태평양도 폭이 넓은 국경선에 불과합니다. 아아, 아메리카의 노래가 들려옵니다. 형형색색의 송가가 들려옵니다. 한 여인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미국인은 언제나 상상의 힘으로 두눈을 부릅뜨고 세상 모든 곳을 지켜봅니다. 휘트먼이 적절히 표현한 바와 같이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서쪽을 바라보며 지치는 일 없이 묻고 또 물어 아직 찾아내지 못한 것을 우리 미국인은 끝끝내 찾아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출발이 임박한 상태인데 아직도 두번째 송금분이 오지 않아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보내셨는지 모르지만 혹시 아직 송금하지 않으셨다면 늦어도 3월 하순까지는 이곳 하이버니어 뱅크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행운이 늘 함께하기를.

 

1888년 4월 2일 샌프란시스코

존경하옵고 친애하는 죠지 워싱턴 브룩스 씨에게

예상액에 훨씬 모자라는 액수이긴 하지만, 어쨌든 보내주신 수표는 안전하게 잘 받았습니다. 귀하의 염려만큼 돈을 잃을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 불편을 고려해 나머지 돈을 요꼬하마의 그랜드호텔로 보냈다고 하니, 아무튼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탐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신다면 제 직업적 자긍심에 약간의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 정도는 짐작하시리라 믿습니다. 각설하고 지금까지 조선으로 향하는 배편에 오를 날만 기다리느라 여간 지루하지 않았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다니 벌써부터 온몸이 근질거립니다. 세상을 바꿔놓은 책 『상식』에서 토머스 페인은 미국이 독립할 시기임을 알리기 위해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이제 떠날 시간이다!” 저도 부르짖습니다. “나도 그렇노라!”

미 감리교 선교부 소속으로 여러차례 조선에 선교사를 파견한 경험이 있는 이곳 샌프란시스코의 원로 찰스 H. 파울러 감독에게 이것저것 여쭤본바, 얼마 전까지 태평양 항로를 오가던 정기 기선으로는 뻬이징 호와 오세아닉 호가 있었으나 워낙 허줄했던지라 지금은 그 운항이 정지됐다고 합니다. 현재 수배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선박으로는 캐나디언 퍼씨픽 철도회사 소속의 화물선인 포트 오거스터 호가 있습니다. 3년 전에 건설을 완료한 캐나디언 퍼씨픽 철로 부설공사에 종사했던 쿨리들을 계약대로 본국에 송환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된 배편으로 요꼬하마를 경유, 샹하이에 입항한다고 합니다. 중국인들과 항해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지금으로서는 별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저는 요꼬하마에서 하선해 토오꾜오에 있는 로버트 S. 머클레이 박사를 만나볼 계획입니다. 파울러 감독의 말에 따르면 조선의 사정에 관한한 가장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이라니 은자의 나라에 거주하는 정직한 조너선들, 즉 우리 미국인들의 사정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도움을 얻을 만한 조선인들도 소개받을 작정입니다. 요꼬하마에서는 나가사끼까지 기차로 이동해 거기서 제물포까지 운항하는 일본우편선박회사의 히고마루 호를 타면 된다고 합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요꼬하마까지는 대략 23일, 나가사끼에서 최종 목적지인 제물포까지는 대략 3일이 소요된다고 하니 최소한 27일은 지나야 제가 은자의 나라로 입국할 듯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