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검은 아테나 여신

오늘의 미국과 고대 그리스

 

 

김경현 金炅賢

고려대 서양사학과 교수. 공저로 『서양고대사 강의』 『서양사 강의』 등이 있고, 최근 논문으로 「아우구스투스 시대 문학과 조형물에 나타난 로물루스 왕의 이미지」 「고대 로마의 동성애」 「로마제국과 다문화주의」 등이 있음. cicero@korea.ac.kr

 

 

1. 『검은 아테나 여신』의 무대

 

1980년대 이래 미국은 소위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의 홍역을 치르고 있다. 아니, 문화혁명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다수자인 백인남성이 이룩한 주류문화에 동화나 소외의 양자택일을 강요받아온, 소수민족·여성·동성애자 등 다양한 소수자집단이 반란하고 있는 것이다. 반란 목표는 잃어버린 정체성의 회복이며, 그것은 결국 소수집단마다 고유한 문화를 인정받는 것을 뜻한다. 다양한 것들을 하나로 녹여내는 ‘용광로’는 이제 그들이 원하는 미국사회의 이미지가 아니다. 그들은 갖은 야채를 그냥 섞어놓은 ‘쌜러드 그릇’ 같은 다문화적 사회를 꿈꾼다. 다문화주의자들은 동화와 통합 대신 차이·다양성·다원주의의 가치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학은 다문화주의운동의 주요 거점이었다. ‘진보’ 성향이 강한 그곳이야말로 그 반문화주의운동에 최적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대학내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이 주요 표적이 되었다. 입학, 교수임용, 재정배정과 같은 대학행정 일반에서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의 시정(혹은 보상)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캠퍼스의 다문화주의운동은 결국 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의 가장 핵심적 기능, 즉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쟁점화하기에 이르렀다. 현행 교과과정은 오직 백인·남성 문화만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과과정 투쟁의 주도세력은 흑인교수와 학생조직이었다. 그들은 유럽중심주의적인 백인문화 일변도의 교육내용, 특히 인문학(그중에서도 역사) 및 사회학 분야의 교과과정을 거부하고, 그 속에 흑인문화도 반영해줄 것을 요구했다.1

그 무렵 흑인 다문화주의운동이 제시하는 흑인문화에는 일견 다소 특이한 면이 있었다. 미국 흑인(Afro-Americans)의 역사와 문화에 못지않게 그 뿌리인 아프리카의 역사와 문화가 강조된 것이다. 사실 그 사정은 이해할 만하다. 노예제와 인종차별의 어두운 기억으로 점철된, 그리고 좋게 보아도 기껏 주류문화에의 성공적 동화라는 의미밖에 찾을 수 없는 미국 흑인의 역사는, 정체성 회복에 그리 유익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흑인 다문화주의자들은 인종적 자긍심을 줄 수 있는 자료를 찾아 아프리카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아프리카중심주의’(Afrocentrism)는 흑인 다문화주의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고대 이집트문명은 ‘아프리카의 영광스러운 과거’로의 여행에서 가장 명백한 목적지 중의 하나였다. 그 여행을 위해 아프리카중심주의는 그동안 미처 가치를 깨닫지 못했던 소중한 안내서들을 재발견했다. 이미 한 세대 이전에 나온 그 출판물들은 몇가지 공통된 메씨지를 담고 있었다. 고도의 문명을 이룬 이집트는 아프리카의 일부이며, 무엇보다 흑인문화라는 점, 고대 그리스문명은 그 전역사를 통해 이집트에서 배웠다는 점 등이었다. 한 흑인저자는 『훔쳐간 유산』(Stolen Legacy)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에서 고대 그리스의 발명이라고 알려진 철학과 과학이 사실 이집트에서 유래한 것임을 주장했다.2 물론 이런 내용의 아프리카 고대사가 당장 대학의 교과내용에 공식으로 편입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철학 및 역사과목의 강의실 안팎에서, 그 ‘사실’에 대해 부인하거나 침묵하는 백인교수와 흑인학생 사이에 종종 갈등이 일어나곤 했다.3

다문화주의로 인한 이 ‘학원혁명’의 와중에 고전학은 대체로 ‘전문화’의 안전과 평온을 지키고 있었다. 백인의 전유물 같은 그 분야에서 소수집단의 문화적 도전이란 고작 페미니즘에 한정된 것이었다. 그런데 고전학에서 여성연구자의 성비가 비교적 높은 점, 그리고 연구주제와 방법에 있어서 성(gender)문제의 대두는 어차피 세계적인 추세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그 도전과의 타협은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흑인 아프리카중심주의가 제기한 그리스문명의 기원에 대한 주장에 고전학자들은 거의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터무니없는 얘기로 치부되어버렸을 뿐이다. 하지만 버널(Martin Bernal)의 『검은 아테나 여신』(Black Athena)이 출간되면서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버널이 다문화주의운동의 주연급 지식인으로 부각되는 것과 때를 같이해, 미국 고전학계는 다문화주의의 소용돌이 속에 아주 깊숙이 휘말리게 되었기 때문이다.4

적어도 대중적이란 점에서 버널이 거둔 성공은, 몇가지 요인들의 적절한 타이밍이 가져온 상승효과 덕분이었다. 우선 그는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문명에 대해 흑인 아프리카중심주의자들과 비슷한 주장을 한 최초의 백인학자였다. ‘검은 아테나 여신’이란 제목을 선택한 것은 특히 흑인독자층을 겨냥한 일종의 상술이었다. 그는 비록 중국학 전문가였지만, 아이비 리그(코넬대학)의 정교수이며, 무엇보다 그의 주장은 고전학의 연구성과를 풍부히 활용한 꽤 전문적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당연히 아프리카중심주의자들과 흑인사회로부터 상당한 반향이 있었다. 둘째, 그의 책 두 권이 출간된 시기는, 다문화주의운동이 마침내 대학의 담장을 넘어 초·중등 교과과정의 개정운동으로까지 번지고 있을 때였다. 버널의 책은 분명 그 운동에 플러스 요인이었다.5 고전학은 이 학문외적 상황 외에 학문적인 이유에서도 『검은 아테나 여신』에 적극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버널은 고전학이 백인(유럽인) 중심의 인종주의 학문이며, 그래서 이집트를 비롯한 비유럽세계가 그리스문명에 크게 기여한 역사적 사실을 은폐해왔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의 책 1권이 나온 2년 뒤부터 고전학 및 고대사 관련학계는 버널을 초대해 토론회를 가졌고, 그의 책에 대한 전문가의 비평이 봇물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문화주의의 상품가치에 예민하던 대중매체가 캠퍼스와

  1. Dinesh D’Souza, Illiberal Education: the Politics of Race and Sex on Campus, Free Press 1991; Nathan Glazer, We are All Multiculturalists Now, Havard Univ. Press 1997, 1〜3장 참조.
  2. 아프리카중심주의의 주요문헌으로는 William E.B. Du Bois, The World and Africa, New York: Viking 1947; George G.M. James, Stolen Legacy, Philosophical Library 1954; Cheikh Anta Diop, The African Origin of Civilization: Myth or Reality, Lawrence Hill & Co 1974(1967년에 출간된 프랑스어판의 번역)가 있다.
  3. 이에 대해서는 아프리카중심주의의 기원과 현황을 분석한 Stephen Howe, Afrocentrism, Mythical Pasts and Imagined Homes, Verso Books 1998, 그리고 아프리카중심주의의 이집트문명에 대한 주장들을 비판한 Mary Lefkowitz, Not Out of Africa: How Afrocentrism Became an Excuse to Teach Myth as History, Basic Books 1996 참조.
  4. 고전학과 다문화주의에 관련된 참고문헌, 특히 로마제국과 다문화주의의 연관에 대한 미국 고전학계의 논의에 대한 비판적 해설을 위해서는 『역사와 문화』 7호에 게재될 필자의 논문 「로마제국과 다문화주의」 참조.
  5. Arthur M. Schlesinger Jr., The Disuniting of Aamerica: Reflection on a Multicultural Society, W.W. Norton & Company 1991, 3장(The Battle of the Schools)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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